주머니 속의 밤 이 깊이는 내가 만들었어요손을 넣으면 만져집니다 그게 꼭 안전하다는 건 아니지만 굴을 파듯이 벌레처럼 머리를 들이밀고먹어 치워야 생겨나는 틈으로 곧 배설물이 쌓이고 몸이 꽉 끼게 될 그 틈을 깊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만들었습니다 가져다 붙이고구입도 해봤고요 그건 누가 버리고 간 거지만 이 주머니 속에 깊은밤이 있다는 듯이 어젯밤의 인기 글은실제로 가난한 사람을 본 적 있어?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이 댓글을 너무 많이 다는 바람에다 읽지도 못하고 삭제돼 버렸지만다들 실제로 어딘가에 누워서 주머니에 손을 넣고밤이 여기 있다
연애 예능, 아니, 정확히 말해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름’이란 무엇일까? 이 글에서 다루려고 하는 과 , 의 출연자들은 ‘결혼’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결혼’을 하기 위해 ‘애정촌’, ‘솔로나라’, ‘커플팰리스’에 들어가는 순간 이름을 잃는다.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반인 출연자들은 왜 이름을 잃게 되는 것일까? 의 출연자들은 ‘애정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입장하면서부터 그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박탈당하고 1호, 2호, 3호…로 불리기 시작한다.
미술 교과서의 한 지면을 차지하고 있던 비디오 아트. 서울시립미술관 로비의 한쪽 벽면을 장식하는 비디오 아트.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도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그 현란함 때문일까 혹은 친숙함과 이질성의 공존 때문일까 왠지 눈길이 머물곤 했다. 지금껏 백남준은 나에게 TV가 아직 브라운관이던 과거 시절 아티스트로 존재해 왔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인해 알게 된 그의 작품세계는 과거의 작품이지만, 오히려 동시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분명히 존재했다. 요즘 나는 매주 백남준아트센터를 방문하고, 백남준에 대해 생각한다. 한 달 전
오컬트 장르의 영화가 가지는 미학은 미지(未知)에 있다. 영화 가 만들어내는 오싹함과 두려움이 악마라는 영적인 존재의 등장에서 기인하듯이 말이다. 의 악마는 소녀들의 몸 안으로 들어가 몸을 변형시키고, 상처입힌다. 엑소시스트의 엑소시즘은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가 육체성을 탐하려고 한 영적 존재를 바깥으로 꺼내놓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영적인 존재는 인간의 몸을 빌리려 하고 인간의 몸을 통해 자신의 ‘있음’을 드러내려 한다. 죽은 자의 넋, 귀신, 혼이 원하는 것은 그 자신이 ‘현실’의 세계에 아직도 ‘존재
‘뉴웨이브 채색연구회’(문화예술대학원 불교예술문화학과 민화전공 9기 이혜진(고요),11기(서정연, 김기영))가 2024년 상반기 국회아트갤러리의 전시 추천에 선정돼, 2월 1일~14일 기간 동안 연구회 두 번째 전시회 '오늘의 유니버스'를 개최한다.이번 전시의 주제인 '오늘의 유니버스'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같거나 다른 관점’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풀어냄으로써 예술가들의 해석과 표현을 살펴볼 수 있도록 기획됐다.3인의 참여 작가 중, 서정연 작가는 자신만의 이상향을 쫓고 있는 현대인들의 내면을 동양의 대표적 이상
지난달 5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전시 공간 SeMA 창고에서 주슬아 작가의 전시 《노멜의 추적일지》가 진행됐다. 전시 《노멜의 추적일지》는 레몬을 구성하고 있는 ‘단서’가 사라져버린 어느 날을 기점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레몬을 구성하고 있는 단서란 무엇일까? 당장 눈앞에 레몬 한 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내가 떠올린 레몬 한 알의 이미지는 아마도 거의 모두의 머릿속에 그려졌을 바로 ‘그’ 레몬의 형상을 하고 있다. 노랗고, 껍질 표면이 오돌토돌하며, 중간 부분이 가장 도톰하고 양 끝으로 갈수
그날도 무리하게 걸었다. 그것은 무의식적인 행동이었다. 걷기에 대해 곱씹게 됐던 곳은 방콕의 Hua Lamphong(หัวลำโพง)역에서 구석진 카페를 찾아갈 무렵이었다. 더위가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 나라에서 20분 거리는 한국에서의 20분과 다른 차원이었다. 그래서인지 태국에는 지하철이나 지상철 노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발달해 있었다. 오토바이 택시나 썽태우, 툭툭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 편의를 모두 등진 채, 뙤약볕 아래의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을
“그 거짓말은 진실이야.” 마히토를 탑 안으로 안내한 왜가리가 마히토에게 건네는 대사다. 언뜻 보기에 말장난 같은 이 대사로부터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의 한 작동 방식이 엿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목에서 비슷한 시기 개봉한 홍상수의 를 떠올렸다. 삶이란 무엇입니까? 진리란 무엇입니까? 질문하는 상국에게 시인 홍의주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건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살아있는 이상, 삶 안에 우리가 포함되어있는 이상 삶과 진리 같은 건 (알고자 하지만) 영영 알 수 없는 대상이 된다. 삶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사실만
코끼리의 코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그네를 타다가 뛰어내려 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어 허공에서 발을 마구 구른다 고개를 들면 인사말이 내려와 어깨 위로 쌓인다 그네가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면 공터의 용도가 달라진다 이제 반경 오십 미터에서 눈보라가 치지 않는다 나는 아직 허공에 있으므로 몸이 공기를 늦추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네의 줄을 놓쳤을 때 얕게 돋아나는 소름 놓치는 순간 머릿속에서 줄넘기를 하는 여자애가 독백을 시작한다 다음 날 아침에 새학기가 시작돼 그러니까 다른 곳은 꼭 필요해 내게 익숙한 곳 변하지 않는 곳으로
나는 붙잡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마포구의 붓카케우동 전문점 에서는 인원 수에 맞게 메뉴를 시킬 경우 면을 얼마든지 리필해준다 배가 불렀지만 세 번째 리필을 시켰고 결국 다 먹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들자 집에 싸가서 간장을 뿌려 먹으면 끝까지 즐기고 활용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 또한 들었다 점원이 비닐봉지를 든 내 손목을 붙잡았고 나는 붙잡을 수 있는 게 없는 상황이었다 안이 너무 더워서 밖에서 먹으려는 거예요, 그러자 점원, 문을 활짝 열어주며, 그럼 이 앞에서 드셔보시라고 좋지…… 그런데 마을버스 정거장 이름은 누가
예능 의 가장 큰 포맷은 무작위성에 있다. 출연자들이 놓여질 환경과 다음 행동은 동전 던지기로 모두 결정된다. 이 동전 던지기는 무수히 많은 선택지가 있는 현대 사회에서 과연 인간의 선택이 과연 주체적일 수 있는가?에 관한 물음을 던진다. 뿐만 아니라 개인적 선택의 총체성을 상징하는 환경은 정말 스스로 불러온 재앙인지, 사회적으로 약속된 무의식적인 선택으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상황 자체가 태어날 때 그저 펼쳐진 것인지에 관해 사유하게 한다. 특히 홍김동전 15, 16화의 수저게임은 고정된 상황에서 시작된 무작위와 행동
동생과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동생도 나도 한국 바깥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처음이었다. 당연하고 익숙한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일본으로의 여행을 결정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낯선 도시에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주문을 하고 음식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나는 내 몸에 달라붙어 있는 오래된 질서, 내가 내 몸에 기입한 그 질서로부터 얼마간은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오랜 시간 나를 운용해 온 질서와 규칙을 따르지 않고. 걷고 먹고 마시고 눕고 잠을 자는 이 모든 일상적인 행위들을 익숙한 공간 바깥에서 제멋대로
이 영화는 가장 편안한 장소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펼쳐지는 공포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한정된 장소인 부부의 “집”에서 벌어지고 그들은 서로를 치열하게 대치하고 대면한다. 공포를 비롯하는 상대방에게서 도망가는 법이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미스터리 오컬트 영화지만, 이 점에서 보면 절절한 로맨스 영화기도 한 셈이다. 영화는 여러 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구성은 다소 천연덕스럽다. 공포 장르에서 묘사할 수 있는 끔찍한 모습을 수진의 반응으로만 대체하고 간단히 지나가 버린다. 수진의 반려견이 죽는 사고로 수진이 얼마나 불안
영화를 ‘본다’는 것은 무엇일까. 로이 앤더슨의 영화는 통상적으로 말하는 영화 ‘보기’에 관해, 정확히는 ‘본다’라는 용어에 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흔히 ‘영화를 본다’고 이야기 할 때 사용하는 ‘본다’라는 용어는 얼마간의 해석적 행위와 의미화 작업을 전제로 한다. 다시 말해 ‘영화를 본다’라는 말은 표층적으로 드러난 장면 아래에 깔려있는 암시적인 의미들, 영화가 어느 정도 요구하는 코드를 따라 장면 장면을 감상해 나가는 해석 층위의 ‘보기’를 요구하는 측면이 있다. 이때의 보기가 감상에 가깝다면 의
사랑받고 싶어. |토요일 점심, 카페 야외 테라스에는 공석이 없었다. 나는 방금 전 마음의 목소리에 관해 생각했다. 연인들이 주변에 옹기종기 앉아 있어서 영향을 받은 걸까. 테라스 창문이 완전히 젖혀져 밖과 안의 경계가 없었고 정확히 그 근처에 앉아 있던 나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사방에 소음으로 Cigarette After Sex의 음악이 흐릿하게 들렸다. 어수선한 그 분위기에 취했는지 덩달아 힘이 빠졌다.내가 힘이 빠지는 이유에는 분명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오늘 아침 엄마에게 걸려 온 전화 한 통도 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리움미술관은 개관 이후 처음으로 도자기를 주제로 한 기획전을 마련했다.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은 조선백자 185점을 장식기법과 생산지에 따라 ▲절정, 조선백자 ▲청화백자 ▲철화·동화백자 ▲순백자의 4부로 구분해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백자에 조선 사람들이 이상적 인간상으로 여긴 군자의 풍모가 담겨있다는 해석을 더했다. 전시품에 맞게 진열장을 새로 제작한 데다 동선이 비교적 자유로워 여러 각도에서 전시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국내 8개 기관과 개인 소장품은 물론, 도쿄국립박물관, 이데미츠미술관, 오사카시립동양
처음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회를 알게된 것은 인스타그램 쇼츠 영상을 통해서였다. 그 게시물에는 “기괴한”, “핫한”과 같은 단어가 거듭 언급돼 있었는데 쇼츠 영상을 보니 그럴 법했다. 그 영상 속에서 세발 자전거를 탄 인형이 정숙한 전시회장을 마구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는 장난기가 넘친다. 전시회라고 했을 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고요하고도 차분한 전시회장, 사각의 프레임의 작품, 그것을 골몰하게 바라보는 감상자, 작품과 작품 사이의 직선적인 동선 등을 지키지 않은 전시 방식은 소위 말해 전위적이다
아몰퍼스 도서관을 하나 상상한다. 이 도서관은 지금 내가 앉아있는 도서관 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믿지 않으면 도서관을 상상할 필요가 없지. 지금 내가 앉아있는 도서관이 더 중요하다면. 내가 도서관을 상상하는 대신 도서관에 꽂혀있는 책을 펼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그러나 지금 나는 내 상상 속 도서관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앉아있던 도서관에 불 질렀다면. 방화범 되었다면.그럼 벌 받아야지.그래서 벌 받았다. 감옥에서.벌 받으면서, 상상 속 도서관에서 도서관 하나를 다시 상상했다.*시간이 흐르고 감옥에서 석방된 뒤,나는 도서관에 불
코로나로 인해 중단된 해외 취재가 3년 만에 재개됐다. 대상 국가로 선정된 곳은 오세아니아 대륙의 호주로, 9일부터 19일까지 멜버른과 시드니에 머물렀다. 출국 전까지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컸다. 동국대학원신문의 첫 해외 취재였기 때문에 기대나 설렘보다는 불안이 더 컸던 것 같다. 10시간이 넘는 오랜 비행 끝에 도착한 호주의 계절은 여름이었다.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씨였다. 자외선이 강했지만 습하지 않아서 산뜻했다. 두꺼운 외투가 아닌 가벼운 셔츠 차림으로 다닐 수 있어 몸이 가벼웠다. 공항 안에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트리
때로 감정은 물리적인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은 복합적인 감정의 실타래를 구체적인 공간, 행위, 대화로 풀어헤쳐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세계의 압력과 극복을 보여준다. 영화 은 사무엘 D. 헌터의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주연 찰리역을 맡은 브랜던 프레이저는 2023년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브랜던 프레이저의 여러 감정으로 얼룩진 얼굴은 영화의 또 다른 미장센으로 중요한 요소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자기 파괴와 자기 구원의 방식에 있다. 영화는 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