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몰퍼스

도서관을 하나 상상한다. 이 도서관은 지금 내가 앉아있는 도서관 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믿지 않으면 도서관을 상상할 필요가 없지. 지금 내가 앉아있는 도서관이 더 중요하다면. 내가 도서관을 상상하는 대신 도서관에 꽂혀있는 책을 펼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그러나 지금 나는 내 상상 속 도서관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앉아있던 도서관에 불 질렀다면. 방화범 되었다면.

그럼 벌 받아야지.

그래서 벌 받았다. 감옥에서.벌 받으면서, 상상 속 도서관에서 도서관 하나를 다시 상상했다.

*

시간이 흐르고 감옥에서 석방된 뒤,

나는 도서관에 불을 지른 전과가 있는 사람. 내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노래하네. 전과자는 믿을 수 없어. 믿을 수 없으니 상상할 수 없어. 상상할 수 없으니 함께할 수 없어. 나는 사람들이 함께하고 싶지 않은 사람. 그러나 여전히 상상할 수 있었네. 내 상상 속 도서관에 앉아 책 태우는 

아이를

한 명 상상한다. 이 아이는 내가 상상하는 도서관 보다 중요하다. 이렇게 믿지 않아도 이 아이는 상상할 수 있지. 상상하지 않아도 함께일 수 있지. 함께이지 않아도 믿을 수 있다는 걸 내가 이 아이를 만나기도 전에 알았다면. 그래서 내가 너를 낳았다면. 그게 네게 상처가 됐다면,

그럼 벌 받아야지.

그래서 벌 받았다. 네 옆에서.너를 끌어안으면서. 그 무엇도 상상하지 않으면서.

라고  

나는 중얼거렸다. 도서관 속에서.

<시인 소개>

2023년 제17회 쿨투라 신인상 시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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