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의 코

 

  눈이 펑펑 내리는 날이면 그네를 타다가 뛰어내려 봐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어

 

  허공에서 발을 마구 구른다

  고개를 들면 인사말이 내려와 어깨 위로 쌓인다

  그네가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서면 공터의 용도가 달라진다

 

  이제 반경 오십 미터에서 눈보라가 치지 않는다

  나는 아직 허공에 있으므로

  몸이 공기를 늦추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그네의 줄을 놓쳤을 때

  얕게 돋아나는 소름

 

  놓치는 순간

  머릿속에서 줄넘기를 하는 여자애가 독백을 시작한다

  다음 날 아침에 새학기가 시작돼 그러니까 다른 곳은 꼭 필요해 내게 익숙한 곳 변하지 않는 곳으로 가기 위해 그네를 타고 허공 위로 오른다 나를 버리고

  동시에 껴안으면서

 

  여자애는 무한대로 줄을 넘고 있다

  하나 둘 하나 둘에 갇히는 사이

 

  밤에는 일기를 몰아 썼다 지나간 미래에서 가장 재미있던 일화는 혼자 동물원에 다녀왔던 일

  호랑이 우리 안쪽에 잠시 손을 넣었다

  모두가 용감하다며 나를 우러러 봤지

 

  그러나 내일 아침에는 배정된 반이 있는 4층으로 가야 한다 겨울방학 동안 잠잠하던 책상 위에 이름을 새기고 칼날로 다른 아이의 낙서를 지운 다음......

  그런 생각 속에서 다른 곳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다른 곳은 잘 아는 곳

  이미 가본 적 있는 곳

 

  이곳의 동물원에서는 우리에 끼인 손이 빠지지 않는다 당황해 손을 마구 휘저었지만 호랑이는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익숙한 얼굴의 어른과 어린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각자 다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있다 나를 구경하기 위해

 

  인간의 울음과 웃음

  동물의 짖음과 고음이 뒤섞여

  설명할 수 없음

 

  손에 닿아오는 건 호랑이의 부드러운 털이나 송곳니 대신

  코끼리의 코와 귀

  그것을 쓰다듬으며

  호흡과 음성을 이해하게 된다

 

  인파 속에서 나는

  랜드마크 혹은 조형물이 되어가는 것 같아

 

  코끼리를 이해하며

  오후 세 시에 코끼리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을 연인을 상상한다

 

  세계는 철창에 갇힌다

  모두의 머리 위로 눈이 쌓인다

 

  교실 창가에서 운동장을 바라보면

  줄넘기를 하는 여자애는 없고

 

  새로운 반의 새로운 책상에는

  코끼리 모양의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참 잘했다고 한다

 

 

  신원경 시인

  <시인 소개>

  2023년 문학과사회 신인상 시 부문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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