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다음 영화
     

   때로 감정은 물리적인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더 웨일>은 복합적인 감정의 실타래를 구체적인 공간, 행위, 대화로 풀어헤쳐 인간이 직면하고 있는 세계의 압력과 극복을 보여준다.

   영화 <더 웨일>은 사무엘 D. 헌터의 희곡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주연 찰리역을 맡은 브랜던 프레이저는 2023년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브랜던 프레이저의 여러 감정으로 얼룩진 얼굴은 영화의 또 다른 미장센으로 중요한 요소다. 이 영화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자기 파괴와 자기 구원의 방식에 있다.

   영화는 찰리가 화상 캠을 끄고 글쓰기 수업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글쓰기 강사로 일하는 찰리는 연인을 잃고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먹는 것을 통제하지 않았던 찰리는 결국 비만으로 울혈성 심부전에 걸리고 죽을 고비에 들어선다. 그의 절친한 친구 리즈는 찰리에게 병원을 권하지만, 찰리는 끝내 거부하고 이혼했던 전처의 사이에서 낳은 딸인 엘리에게 연락해 집으로 찾아오게 한다. 엘리에게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다고 말하지만, 엘리는 과거에 자신을 버린 찰리를 미워해 거부한다. 찰리는 자신의 전 재산을 다 주겠다는 말과 함께 엘리의 에세이를 요청한다.

   희곡에서 출발한 이 작품은 공간적 요소가 극히 제한적이다. 모든 서사는 찰리의 집에서 펼쳐지며 이런 공간의 제약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찰리의 생활공간을 면밀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공간은 찰리가 잠을 자는 방, 화장실, 글을 쓰고 강의를 하는 거실이다. 이 중 주목해야할 부분은 찰리 연인의 방이다. 영화 중반부 이전까지 이 방은 잠겨 있다. 이 잠긴 상태는 찰리의 심리적 상태를 나타내는데 그동안 그가 죽은 연인과의 기억을 제대로 직면할 수 없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영화 중반부에 들어서, 선교사 청년의 도움으로 이 방문이 열리고 온갖 것으로 어지러운 다른 방과 달리 이 방은 그 어떤 흐트러짐도 없이 말끔하게 정돈돼 있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선반에 빨간색 표지의 성경 책이 표지판처럼 세워져 있다. 마치 성역의 표시처럼. 방의 깨끗한 상태는 찰리에게 사랑의 순간들이 어떤 것도 오염시킬 수 없는 부분임을 상징한다.

   영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사랑의 기억을 이중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에 있다. 찰리는 사랑의 기억으로 자신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기 구원을 이루어내기도 한다.

   자기 파괴는 먹는 행위로 드러난다. 찰리는 음식의 맛을 즐기거나 음미하지 않고 그저 기계적으로 씹고 삼키는데 영화에서 음식을 일반적인 목적인 생존이 아닌 자기 파괴, 징벌적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친구인 리즈가 죽을 고비에 이를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을 때도 찰리는 먹는 행위를 중단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미트볼 샌드위치가 목에 걸려 질식할 뻔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도 찰리는 다시 그 샌드위치를 집어 든다. 이 징벌적 성격의 행위는 전 연인의 거식증과 우울증, 죽음을 자신의 사랑으로 구원하지 못했다는 죄의식에서 비롯된다. 먹는 행위로 죽음을 고하는 것이 자신에게 내리는 단죄인 셈이다.

   반대로 사랑을 통한 자기 구원의 모습은 글을 대하는 찰리의 방식과 엘리와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찰리는 솔직한 글을 쓰라고 학생들에게 말하고 어린 엘리가 쓴 모비딕 에세이가 솔직하다는 이유로 훌륭한 글이라고 평가한다. 찰리가 호흡 곤란이 올 때마다 엘리가 쓴 감상문의 문장들을 읊조리는데 이 읊조림 또한 영화에서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문장들을 주문처럼 외우는 찰리의 모습은 마치 주기도문을 외우는 모습을 연상한다. 이 장면은 ‘구원’이라는 기독교 중심적인 세계관을 비틀어 보여준 것으로 앞서 언급한 자기 구원에 맞닿아 있다. 또, 찰리는 엇나가는 엘리에게 긍정적인 말을 하는데 생의 생동감, 활기는 사랑의 순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사랑을 통한 구원이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방향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보조 기구 없이 걸을 수 없었던 찰리는 딸인 엘리에게 긍정과 사랑의 말을 쏟아내며 스스로 일어난다. 마치 모비딕에 등장하는 거대한 고래를 닮은 모습으로 엘리에게 걸어간다.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장면은 어린 엘리와 바다를 직면하고 있는 찰리의 모습으로 엘리가 과거를 복기할 수 있게 됐음을 암시하고 찰리의 직면은 결국, 자기 구원뿐만 아니라 타인의 구원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영화에서 등장했던 허먼 벨빌의 소설 <모비 딕>은 인간의 분노와 욕망을 통해 주류 문명인 기독교 사회의 평면적인 믿음과 만연한 탐욕을 드러냈다면, 영화 <더 웨일>은 인간의 사랑을 통해 기존의 세계와 관계 맺기에 물음을 던지는 영화이다. 자기 파괴와 죄책감의 무게로 짓눌리는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받아들여짐의 순간이고 결국 사랑의 기억이라는 것을 영화는 말하고 있다. 구원은 구하는 것이 아니다. 구원은 자기 자신에게로, 어떤 순간으로 행하는 것이다. 온 세계의 중력을 무릅쓰고 일어선 찰리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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