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신하연 편집위원
△ 사진= 신하연 편집위원

  미술 교과서의 한 지면을 차지하고 있던 비디오 아트. 서울시립미술관 로비의 한쪽 벽면을 장식하는 비디오 아트.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에도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그 현란함 때문일까 혹은 친숙함과 이질성의 공존 때문일까 왠지 눈길이 머물곤 했다. 지금껏 백남준은 나에게 TV가 아직 브라운관이던 과거 시절 아티스트로 존재해 왔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인해 알게 된 그의 작품세계는 과거의 작품이지만, 오히려 동시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분명히 존재했다.

  요즘 나는 매주 백남준아트센터를 방문하고, 백남준에 대해 생각한다. 한 달 전 부산에서 올라온 친구가 나에게 백남준 아트센터에 가보자고 권유했다. 비록 우리 동네에 있지만 지금껏 가보지 못했는데, 부산에서 온 친구 덕분에 가게 된 것이다.

  여행객이 된 듯한 설렘을 안고 방문한 백남준아트센터는 기대 이상의 만족을 주었다. 무료 전시임에도 전문성이 느껴지는 도슨트 덕에 밀도 있는 관람을 할 수 있었다. 그저 공간을 배회하며 비디오 아트가 주는 시각적 즐거움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만족은 했을 것이다. 그러나 도슨트와 함께한 덕분에 전시 자체가 하나의 스토리텔링이 있는 시간이 되었고, 마치 단편영화 한편을 본 듯한 기분이었다.

  우연일지 인연일지 마침 도슨트 교육 프로그램 신청 기간이었고, 지원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백남준’도 ‘도슨트’도 없었던 삶인데, 단 한 번의 방문이 날 매주 같은 장소로 오게 만든 것이다.

  본 교육의 수강 경험은 여러모로 내 기분을 환기시켜주었다. 우선 수강생의 규모와 다양성이다. 이번 프로그램엔 78명의 교육생이 참여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백남준의 작품세계와 도슨트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부터 연세가 지긋이 있으신 분들까지 그 구성도 다양했다. 예술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로 모인 사람들이었고, 그래서인지 서로를 00 님으로 부르며 수평적인 관계의 소통이 이뤄졌다. 나이로 호칭 정리를 하며 관계를 시작하는 수직적인 우리나라 문화에서 이렇게 다양한 세대가 평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될까.

  교육생들의 직업도 다양했다. 몇 년 전까지 교직에 계셨던 분, 평일엔 회사원이고 주말엔 도슨트를 도전 중이신 분, 궁궐 해설가로 활동 중이신 분… 다양하면서 화려한 배경을 듣고 있자니, 내가 과연 도슨트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속 의구심이 살짝 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불안은 금세 사그라들고, 본 교육과정으로 인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이 순간 자체가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백남준이 활동을 시작했던 1960년대는 프랑스 68혁명을 비롯해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문화 예술적으로 많은 움직임이 있던 때이다. 예술이 정치적인 이야기에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서구사회를 주 무대로 활동하던 백남준도 그 영향의 상호관계 안에 있었다. 20세기 초 마르셀 뒤샹의 <샘>에서 제기했던 질문인 기성품이 과연 예술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담론을 넘어서, 백남준은 소프트웨어적인 부분으로 그 담론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직접 비디오라는 매체를 이용해 자신의 예술을 표현한 것이다.

  “소통”과 “참여”는 백남준 작품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어이다. 작년 개봉한 백남준 다큐멘터리 영화의 제목으로도 쓰였던 <달은 가장 오래된 TV>(1965)는 소통 관점에서의 달을 조명한다. TV가 없던 시절 지구의 유일한 위성인 달을 바라보며 이미지를 투영하고 이야기를 상상하며 소통하던 모습을 TV 시청에 빗댄 것이다. 또한 <랜덤 액세스>(1963)는 테이프를 풀어내 벽면에 붙여 놓고, 관람객이 원하는 테이프 부분을 훑어 녹음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참여를 이끌어낸 작품이다. 이렇듯 그의 전시는 일방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이 주체로서 참여하고 소통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도슨트 교육생들이 그로 인해 모여 소통을 하는 이 모습이야말로 그가 예술을 통해 이루고자 한 세상의 모습 아닐까. 백남준이 아니었다면, 서로 옷깃도 스치지 못했을 인연들이 그의 예술로 소통과 참여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백남준 아트센터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해 있으며, 2006년 개관한 이래로 전시, 아카이브, 국제예술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3월 21일부터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 40주년 특별전 <일어나 2024년이야!>와 <빅브라더 블록체인>을 새로 전시 중에 있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