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드니 하버 브리지 (사진=이지현 전 편집장.)
     

   코로나로 인해 중단된 해외 취재가 3년 만에 재개됐다. 대상 국가로 선정된 곳은 오세아니아 대륙의 호주로, 9일부터 19일까지 멜버른과 시드니에 머물렀다. 출국 전까지는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컸다. 동국대학원신문의 첫 해외 취재였기 때문에 기대나 설렘보다는 불안이 더 컸던 것 같다. 10시간이 넘는 오랜 비행 끝에 도착한 호주의 계절은 여름이었다. 최고 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날씨였다. 자외선이 강했지만 습하지 않아서 산뜻했다. 두꺼운 외투가 아닌 가벼운 셔츠 차림으로 다닐 수 있어 몸이 가벼웠다. 공항 안에는 크리스마스 장식과 트리가 남아 있어 남반구의 연말 분위기를 얼핏 느낄 수 있었다. 14일까지는 멜버른에서, 그 이후에는 시드니로 이동해 워킹홀리데이 제도와 호주에서의 실제 생활 및 문화에 대해 취재했다.

   취재를 하는 10일 동안 여러 대중교통을 타고 다녔는데,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각 도시 별로 교통 체계가 어떻게 다른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전용 레일을 따라 주행하는 일반적인 트램과는 달리 멜버른의 트램은 레일을 독립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일반 차량과 주행 도로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구글 맵을 통해 제공되는 도착 예정 정보가 맞지 않는 경우가 잦았다. 초 단위로 바뀌는 도로 상황에 비해 운행에는 큰 혼선이 없어 보였는데, 멜버른의 도로교통법을 찾아보니 트램 통행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있었다. 트램을 추월하거나 진로를 방해할 경우, 높은 범칙금과 함께 엄격한 처벌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흥미로웠던 건 시티 내 일정 구간에 한해 트램이 무료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프리 트램 존에 해당하는 구간에서는 교통 카드를 태그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트램이나 지하철처럼 독립된 레일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느릴 수는 있지만 그 대신 도시 구석구석을 더 잘 둘러볼 수 있다. 덕분에 멜버른의 풍경을 오랫동안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시드니의 경우 트램 대신 시티 레일이 발달되어 있었다. 페리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나폴리, 리우데자이네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 도시로 꼽히는 만큼 페리를 일반적인 교통수단으로 인식하는 듯했다. 시드니에서는 시티 레일, 페리, 라이트 레일, 버스를 모두 이용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시드니에서 가장 큰 선착장인 서큘러 키에서 조금만 걸어가다 보니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가 보였다. 하버 브리지는 1920년대 경제 대공황 타개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시드니의 남부와 북부를 잇는다. 아치형 철제 구조물인 하버 브리지 정상에는 호주 국기와 함께 또 하나의 깃발이 나란히 게양되어 있었는데,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원주민 깃발이라고 했다. 원주민 깃발은 1971년에 고안된 이후 1995년이 되어서야 정식으로 승인될 수 있었는데, 정치적인 논란으로 인해 특정 장소에 게양되지는 못했다. 특별한 날에만 한시적으로 게양되던 원주민 깃발은 작년 연말부터 하버 브리지에 영구 게양하기로 했는데, 좋은 시기에 취재를 할 수 있어 운이 좋았다.

   현재 호주 정부는 백호주의를 공식적으로 폐지하고 다양한 문화의 유입과 확산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는데, 다문화 사회를 국가 정체성으로 삼은 나라인 만큼 다양한 메뉴를 접할 수 있었다. 호주의 전통 음식점보다는 태국, 베트남, 중국, 프랑스, 인도 등 각국의 음식점이 더 많았다. 우리 역시 한인 타운에 가지 않았는데도 김밥, 마라탕, 삼겹살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었다. 음식으로 인한 고충이 없어 편하긴 했지만, 동시에 호주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특별한 메뉴나 전통 음식은 많이 접하지 못해 아쉽기도 했다.

   당연하겠지만, 취재 준비를 하며 숙지하게 된 정보와 실질적인 환경에 놓인 채 직접 경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사전 자료로 접했을 때보다 더 강하게 다가왔다. 인터뷰 전후, 카메라 없이 조금 더 편안한 대화를 나눴던 시간도 귀한 경험이었다. 각자의 삶에 대해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주고받으며 양방향의 소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고민이 끈기와 고집 중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잘 생각해 보라는 의외의 답변도 기억에 남는다. 현실적이면서도 애정이 담긴 조언이었다. 아는 것과 보는 것, 그리고 겪는 것의 층위가 모두 다를 수밖에 없음을 다시금 체감했다.

   좋았던 순간을 꼽자면 수도 없이 많다. 야라강을 보며 가만히 앉아있던 것, 벨그레이브역에서 레이크사이드역까지 가는 기차 안에서 단데농 산맥, 숲, 협곡을 봤던 것, 페리를 타고 왓슨스 베이에 갔던 것, 시드니 천문대에서 선셋을 보고 오페라 하우스까지 걸어갔던 것, 저녁마다 목적 없이 계속 걸었던 것, 그리고 무엇보다 10월 말부터 준비했던 취재를 무사히 잘 마무리한 것. 돌이켜 보면 대단한 무언가를 했던 순간이 아닌 사소한 순간이다. 호주에서는 단순한 고민만 하는 것이 가능했고, 그 결정에 따른 해소 역시 단기적으로 끝났다. 그때그때마다 소화될 수 있는 물음표만 안게 되다 보니 내가 가지고 있던 무게가 덜어졌다. 다시 돌아가야 할 일상이 더 이상 짐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기존의 루틴을 다시 해낼 힘을 얻기도 했다. 덕분에 강박적으로 쥐고 있던 것에 대해 느슨해지고 유연해질 수 있었다.

   지나고 나서 곱씹을수록 더 명료해지는 것이 있다. 이번 해외 취재가 나에게 그랬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호주에서 느꼈던 현장감은 단순한 해방감이 아니라 낯섦을 즐길 줄 알게 된 스스로에게 느낀 새로움, 스스로에 대한 현장감이기도 하다. 누구든 문장으로 표현되지 않는 어떠한 종류의 울렁거림이 있을 것이다. 호주에서의 여러 접촉이 내 안에 어떻게 남아있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울렁거림 이후에 파생되는 새로운 결이 내 테두리를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세운 경계를 흐리게 만드는 방식으로 말이다. 모든 것들이 막연하게 다가올 때마다, 아마도 나는 익숙하지 않은 촬영 장비를 들고 두리번거리며 걸었던 10일 간의 여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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