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다음 영화
△ 사진= 다음 영화

  “그 거짓말은 진실이야.” 마히토를 탑 안으로 안내한 왜가리가 마히토에게 건네는 대사다. 언뜻 보기에 말장난 같은 이 대사로부터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의 한 작동 방식이 엿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목에서 비슷한 시기 개봉한 홍상수의 <우리의 하루>를 떠올렸다. 삶이란 무엇입니까? 진리란 무엇입니까? 질문하는 상국에게 시인 홍의주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건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살아있는 이상, 삶 안에 우리가 포함되어있는 이상 삶과 진리 같은 건 (알고자 하지만) 영영 알 수 없는 대상이 된다. 삶의 끝에 죽음이 있다는 사실만이 흔들리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다. 그 사실 앞에서 흔들리는 것은 인간이다. “그 거짓말은 진실이야.” 왜가리의 이 대사가 품고 있는 모순이 우리가 속해있는 세계와 닮아있다. 거짓과 진실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안에서 뒤섞인 채 혼재한다. 삶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주체인 ‘나’의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82년이라는 세월을 통과한 이만이 던질 수 있는 묵직한 질문을 그 제목으로 삼고 있다. 자신이 지나온 삶을 복기하며 감독은 영화를 보는 우리에게 질문한다. 정답을 상정하고 있는 질문이 아니라 질문 자체가 우리의 지난 삶을 환기시키며 삶의 정답 없음을 내포한다. 

  영화는 서로 다른, 그러나 닮아있는 두 세계를 통과하는 마히토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새엄마인 나츠코를 찾기 위해, 그리고 죽은 엄마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정말인지 확인하기 위해 탑 안으로 들어온 마히토는 탑 안에서 이곳의 세계가 현실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현실에서라면 겪을 수 없었을 여러 일들을 겪게 된다. 죽고 없는 엄마, 다시 말해 영원히 ‘대면’이 불가능한 엄마(의 과거)와 탑 안에서 조우하게 되는 것이 그 일들 중 하나다. 마히토는 어린 시절의 엄마 히미와 만나 동행한다. 

  탑은 서로 다른 시간을 품고 있다. 어린 시절의 엄마 히미와 젊은 시절의 할머니 키리코, 탑 속의 세계를 건설한 큰할아버지의 시간과 마히토의 시간이 탑 안에서 함께 흘러간다. 마히토와 함께 탑 안으로 들어온 할머니 키리코는 탑 안에서 젊은 시절의 씩씩한 모습으로 마히토 앞에 나타난다. 서로 다른 시간선에 있는 이들이 하나의 공간에서 다시 마주하게 된다는 이 설정은 멀티버스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 설정으로부터 다른 시간에 있는 이들을 데려와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게 한다거나 현실과 이세계를 산만하게 섞어두거나 하지 않는다. 이는 영화의 후반부, 탑 속의 세계가 파괴되고 마히토와 히미가 서로 다른 시간선의 문을 열며 나누는 대사에서도 드러난다. 마히토는 히미에게 그 문을 열면 불에 타 죽을 거라고 말하지만 히미는 그래도 가야 한다고, 가서 널 낳아야 한다고 말하며 문고리를 잡아 돌린다. 삶의 결말을 알고 있음에도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 히미의 이 선택이 중요하다. 마히토와 나츠코, 히미와 키리코는 그렇게 다시 서로가 있던 시간으로 돌아간다. 그들 중 누구도 세계의 규칙을 위반하지 않는다. 영화는 현실 세계에 균열을 가하거나 그것을 비트는 방식을 취하는 대신 세계의 규칙을 따르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며 세계가 인간보다 크다는 당연하고도 단순한 사실을 역설한다. 

  앵무대장으로 인해 이세계가 단숨에 파괴되기 전, 큰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 이곳의 세계를 지속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는 마히토에게 서로 죽고 죽이는 저곳으로 다시 돌아갈 거냐고 묻는다. 그는 선의를 지닌 마히토가 세계를 다시 건설해주기를 바라지만, 마히토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 스스로 머리에 낸 상처의 흔적을 보여주며 이것이 바로 자신의 악의라고 대답한다. 삶의 끝에 더욱 가까이 선 노인이 된 하야오와 소년이었던 하야오가 서로를 마주 보는 것처럼 보이는 이 장면이 감동적인 이유는 이미 많은 시간을 살아온 이가 세계는 선의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음을 깨닫고, 그럼에도 선의만으로 구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후대를 이어주길 바라는 큰할아버지의 말에는 내가 없어도 세계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자신이 꿈꿔온 세계가 계속해서 호흡을 이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어있다. “세계는 생명체야.” 마히토에게 건네어진 큰할아버지의 말을 상기해본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계는 어떤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살아가는 동안은 내내 알 수 없을 삶에 관하여 질문하는 영화다. 내가 없어도 살아 숨 쉬는 세계 안에서 중요한 것은 다만 우리가 ‘어떻게’ 살아 숨 쉴 것인가다. 비극이 예정되어있더라도 다시 그 비극 안으로 돌아가는 히미처럼. 악의를 가진 채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마히토처럼. 언제나 나보다 큰 세계의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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