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예능, 아니, 정확히 말해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이름’이란 무엇일까? 이 글에서 다루려고 하는 <짝>과 <나는 SOLO>, <커플팰리스>의 출연자들은 ‘결혼’을 목적으로 한다. 그리고 ‘결혼’을 하기 위해 ‘애정촌’, ‘솔로나라’, ‘커플팰리스’에 들어가는 순간 이름을 잃는다.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반인 출연자들은 왜 이름을 잃게 되는 것일까?

  <짝>의 출연자들은 ‘애정촌’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입장하면서부터 그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박탈당하고 1호, 2호, 3호…로 불리기 시작한다. <나는 SOLO>도 마찬가지다. ‘솔로나라’라고 불리는 세계관 안으로 들어서면서 출연자들은 영철, 영호, 옥순과 같은 제2의 이름을 부여받는다. 기수가 바뀌어도 이름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니까, 19기까지 진행된 현재 ‘솔로나라’에는 총 19명의 영호와 순자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들은 최종 선택의 순간에 마침내 자신의 ‘진짜’ 이름을 공개한다. 그것도 모두에게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단 한 사람에게만 공개하는 것이다. 귓속말로 이름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시청자는 출연자의 이름을 듣지 못한다. 자신이 선택한 단 한 사람에게만 은밀하게 자신의 ‘진짜’ 이름을 전달하는 이런 방식의 연출은 개인의 고유한 ‘이름’이 실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의 의미를 전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SOLO>에서 사용되는 이름들은 나름대로 그 역사가 있다. 영자는 영자만의 캐릭터가 있고 광수는 광수만의 캐릭터가 있는 것이다. 이전 기수의 광수가 만들어 놓은 ‘광수다움’이 다음 기수의 광수에게 적용된다. 출연자는 그 이름에 이미 흔적으로 달라붙어 있는 의미를 입고 자기 자신을 소개한다. <나는 SOLO>의 독특한 지점이 여기에 있다. 완전히 ‘익명화’되는 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캐릭터의 일부가 흔적으로 남아 덧입혀지는 방식 말이다. 이들은 익명화되는 것을 넘어서서 어느 정도는 ‘그’ 캐릭터가 되기를 요청당한다. 또는 편집으로 그렇게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것은 이들 하나하나의 캐릭터가 주어진 ‘이름’과는 상관없이 고유하고 특수해서, 인물들이 ‘광수’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서 보편성을 획득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특수해진다는 사실이다. ‘광수’라는 캐릭터의 성격은 기수가 이어짐에 따라 갱신되고 생성된다. 익명화를 위한 ‘기호’는 기호로 존재할 뿐이며 방송이 조명하는 것은 그러한 기호 아래서 돌출되는 인물들의 모습이다. 

  엠넷에서 올해 1월부터 방영하기 시작한 <커플팰리스>의 경우에는 그 익명화 작업의 방식이 다른 프로그램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노골적이다. “초고속 고효율로 완벽한 결혼 상대를 찾는 싱글남녀 100인의 커플 매칭 서바이벌”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방영을 시작한 이 프로그램은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이 마치 마트에서 진열된 물건을 고르고 소비하는 쇼핑 행위와 다름없다는 생각을 숨길 의지도 없는 듯 내비친다. <짝>과 마찬가지로 번호로 호명되는 출연자들은 등장과 동시에 ‘스펙’을 공개하게 되어있다. 처음에는 실루엣으로만 등장하다가 결혼 ‘조건’을 공개하기 시작하고, 이후 MC가 ‘외모와 스펙 공개 타임’을 선언하면 막이 걷힌 뒤 출연자의 ‘스펙’과 ‘외모’가 드러난다. 실루엣이 공개된 그 순간부터 평가가 시작된다. 버튼을 누르면 출연자의 머리 위로 숫자가 올라가는데, 그 숫자가 바로 그 출연자를 향한 호감의 정도를 나타낸다.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서로 매칭이 되어야만 ‘커플팰리스’라는 공간으로의 입장이 가능해진다. ‘팰리스’에 입장하고 난 뒤에야 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이름표를 받는다. 서로가 서로의 ‘진짜’ 이름을 확인하는 그 순간을 보면서도 시청자는 그 이름이 고유하게 기능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커플팰리스>라는 결혼 ‘시장’은 이미 출연자를 그 자체로 익명화된 상품으로 취급하여 오직 교환 가치를 통해서만 판단되도록 하는 장 속에 놓아두기 때문이다. 그 순간부터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지닌 특수성이나 고유함이 아니라 ‘스펙’이라는 말로 표현되고 있는 물질적 조건이다. MC의 말마따나 “성공적인 결혼을 위해 존재하는 곳”으로 기능하는 이곳에서 출연자들은 실체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상품의 사용 가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커플팰리스>의 영상 클립에는 ‘결혼은 현실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뉘앙스의 댓글이 달려 있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은 철저히 소비주의와 자본주의에 한해서만 의미를 갖는 현실이다. 

  ‘결혼’을 하기 위해 데이팅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은 어째서 이름을 감춰야 하는 걸까? <나는 SOLO>의 경우에 그것이 서사적 몰입의 효용을 위한 일종의 캐릭터 창조와 관련이 있다면,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빌런’ 만들기와 같은 문제를 낳는다면, <커플팰리스>는 서로를 철저히 ‘조건’으로만 보게 하기 위해 ‘이름’을 지우는 방식을 택한다. <짝>에서도, <나는 SOLO>에서도, <커플 팰리스>에서도 나는 “안녕하세요, 강채현입니다.”라는 인사말을 쓸 수 없을 것이다. ‘강채현’의 자리를 빈칸으로 두고 나의 무엇을 내세워야 하는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매력적인 캐릭터로서의 나’, ‘능력 있는 나’, ‘조건을 갖추고 있는 나’가 그 빈칸의 자리를 채워야 할 것인데……. 채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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