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동대문학상 최우수상

김은유(문과대학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4학년),

시 「추운 것을 말하기」 외 2편

추운 것을 말하기

나무는 이제 자신을 이해할 친구를 사귀고 싶다 같이 수영장에 가주고 물에 돌도 던져보고 뛰어든 돌을 따라 가라앉았는데 이제 얘랑은 마지막이겠구나 손 흔들며 그게 죽은 거라 생각하지 않는 친구를

 

이해하고 싶다 들려? 나뭇가지 튕기는 소리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귀를 가져다 대는 소리 나무는 말한다 어두운 수영장을 들여다보면 어떤 물은 조금 희고 어떤 물은 조금 둥글고 또 어떤 물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되기도 한단다 들려? 내 잎이 세상과 맞붙었다 떨어지는 소리

 

밑에선 다 보인단다 헤엄치는 손끝이 어떻게 물을 찢으며 앞으로 나아가는지를 나는 찢어진 물속에 머리를 넣었다 빼며 후득후득 떨어져 나가는 살을 붙잡으려 하지 나무는 물 밖을 자유롭게 걸어 다니고 있을 친구를 떠올린다 그 애…… 내 책 귀퉁이에 낙서했었지 남겨진 책은 여전히 내 방 책장 어딘가에 꽂혀 있고 그 애……

 

이제 돌아갈게 손 흔드는 친굴 향해

솟아나는 귀를

 

이해할 수 있을까? 전에 읽은 소설을 자신의 이야기인 것처럼 나 사실 도마뱀을 기르게 됐어 도마뱀에게 먹이로 던져줄 귀뚜라미도 기르게 됐어 나는 이렇게 가득하고 따뜻하고 충만하다 말하면 그렇구나 너는 모두 다 그만두고 싶은 거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손에서 놓친 살을 한 곳에 모아 심으면

어떤 식물이 자라게 될까

 

나무는 생각한다 대답하지 않는 친구는 지금쯤 코너를 돌고 있을까 길목에 놓인 돌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나무의 코에서 물방울이 깨진다 들려? 수영장 바닥 무늬를 살피며 떠가는 소리 물 밖으로 확 끌어 올려진 나뭇가지가 썩어가는 소리 나는 이제 조금 깨달은 거 있지

영원과 순간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을 떠서 신에게 먹여준다 언젠가부터 신은 몸도 닦질 않고 밖에도 잘 나가지 않게 되었다 약속장소가 기억나질 않아 신은 이렇게 말하곤 고요한 얼굴이 되어 벌러덩 드러눕는다

 

선풍기가 돌아가는 방 안에서 나는 신이 잊어버린 곳에 대해 생각한다 그곳에서 언젠가 사람 몇 명이 죽었을지 모르지 그들의 얼굴에도 땀이 흐른 자국이 나 있을지 모른다

 

신은 식물 애호가이고 여름 앞에서 장미꽃무늬 이불을 뒤집어쓰고 싶어 하고 물 주는 걸 자꾸 잊어버려서 화분이 없어지기만을 기다린다 신은 마른 잎사귀에 대고 말한다 너에게 상처 주는 동안 내가 얼마나 상처 입었는지에 대한 그런 말을

 

헝클어진 신의 머리를 정돈해주며

나는 이런 이야기밖에 들려주지 못한다

 

손에 볍씨를 소중히 쥐고 있다가 병아리에게 던져주었는데 머리를 맞고 그만 죽어버리는 거 있지 따뜻한 손아귀를 펼쳤는데 거기 병아리가 사물처럼 들어 있는 거 있지 죽었을지 모르는 사람들이 장미꽃무늬 이불에 파묻혀 사락사락 숨 소리 내는 거 있지

 

신의 턱밑으로 밥풀이 흐른다 신은 말한다 젓가락을 멀리 쥐는구나 너 아주 멀리 가서 살 운명이구나 턱끝에 달라붙은 밥풀이 떨어진다면 제일 먼저 국그릇이 깨져버리겠지

 

나는 국에 빠진 잎사귀를 꺼내 신에게 보여준다 얼굴에 붙은 밥풀을 하나하나 떼어내다가 작은 점 하나를 발견한다 그 순간 신은 아주 소중해져서 나는 신이 사라지기만을 빌게 될지 모르지 사락사락 숨 소리를 내며 신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신은 이곳에 잠자코 놓이게 될지 모른다

은혜와 미안

발가벗고 옥상에 누워보았습니다

오는 빛 막지 않고

온몸이 햇볕에 파 먹히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현실을 살라는 조언을 들었거든요

그러나 내 방에는 은혜가 잠들어 있고

나는 사과 한 알을 먹을 때도 지구 종말을 생각합니다

평화로운 나의 아침이 돌돌 깎여 나가는 소리를 듣느라

은혜가 뒤척이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몸에 붙은 은혜의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떼어낼 때는

고통이 수반됩니다

은혜는 땀에 젖어 있어서

겨울용 파자마가 몸에 친친 감겨 있습니다

 

맞붙은 섬유와 살을 양쪽으로 잡아당기면

서로가 찢어지게 됩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두려움이

나의 몸을 핥으며 지나가는 중입니다

컵 둘레까지 도톰하게 부푼 물을

혀끝으로 툭 건드리듯이

 

겁이 많을수록 더 멀리 보게 된다는데요

 

너무 멀어지는 바람에

몸에서 떨어져 날아가는 영혼도 있습니다

바닥에 쏟아진 은혜의 머리카락에서

세상에 없는 마음을 멋대로 읽어버릴 것 같습니다

 

품에서 빠져나간 등을 더듬어가듯

나는 줄곧 팔을 그러모으고 있는데

 

여백 같은 게 아니겠죠

사랑으로 꽉 차 어쩔 줄 모르는 겁니다

 

내려놓는 법을 모르는 나는

자주 몸이 아프고

씹고 있는 밥알을 흘리게 되지만

 

햇빛에 머리를 넣었다 빼며 떠가는 새를

끝까지 바라봅니다

닫힌 눈꺼풀 바깥에

비스듬히 서 있는 나를 기다립니다

 

나는 세게 움켜쥐려 하는데

중요한 걸 자꾸 뱉어내는 사람 같습니다

피부밑에 작은 은혜들이 다 비쳐 보입니다


수상소감

올해를 기점으로 삶이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조금 기울었고, 생에 처음으로 시가 아닌 다른 것에 온 힘을 쏟아야 했다. 새롭게 굴러온 불씨를 꺼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과 여전히 시에 매진하고 싶은 마음, 그 두 개의 무거운 공을 한 번에 쥐지 못해 안절부절하는 어린이의 상태로 발을 동동 굴렸다. 낯선 것을 접하는 일은 분명 근사한 일이지만, 그것은 반대로 지금까지 몸 담고 있던 시의 영토에서 잠시나마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시를 쓰지 못했고, 무감각해졌고, 시가 가리키는 세계의 아름다움을 낚아채지 못하고 마냥 놓쳐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시에 매진했던 때보다 덜 슬퍼졌고, 덜 외로워졌고, 덜 아프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시를 쓸 때마다 따라붙는 통각과 고민의 과정이 사라져 되려 평안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느 시점을 통과하자 내게 새로운 고통이 찾아왔고, 그것은 늘 나를 몸부림치게 했다. 슬픈 일에 더는 슬프지 않다는 슬픔, 아픈 일에 통증이 느껴지지 않는 통증을 늘상 몸에 지닌 채. 나는 내가 시로부터 멀어지다가 어느 순간 내가 시를 버릴까 봐, 무엇보다 멀어지고 멀어진 시가 나를 더 이상 발견해주지 않을까 봐, 그게 아무렇지도 않은 순간이 내게도 찾아올까 봐 두려워하며 매일을 울었다.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좋은 문장에 밑줄을 치는 것만이 최선인 삶을 보내야만 했다.

 

시를 너무 고통스럽게 쓰는 것이 아니냐고 물어오는 이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내게서 그런 고통이 사라지면 내 몸은 더 황폐화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고통이 몸의 중심이 되듯이, 내게 있어 시는 언제나 통각을 동반하는 일이이고, 그것은 움츠러들어있던 감각의 표면적을 활짝 펼치게 해준다. 나는 그것이 나를 언제나 살아있게 해줌을, 피가 도는 몸을 갖게 해줌을 믿는다.

 

어떤 삶의 실현을 위해선 기존에 끌어안고 있던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게 전반적으로 시에 걸쳐 있는 것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 앞에서 불안에 떨 때마다 나는 나보다 먼저 불안을 경험하고 아파하고 그럼에도 꾸역꾸역 앞으로 나가야만 했던 시를 쓰는 언니들을 생각했다. 그게 누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그런 언니들이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시와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헤매고 있는 내게 다가와 조언을 해주는 언니가 생기면 좋겠다고 매일 밤 자기 전에 생각했다.

 

시는 풍선 같은 것이라서 손에서 놓치면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머리 위 천장에 달라붙게 되는 것이라고, 손으로 잡고 끌어내리면 언제든 품에 안을 수 있는 것이라 했던 누군가의 말이 내게 큰 용기가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시를 쓰는 동료들, 선생님들, 시 쓰는 몸을 지키려 애썼던 나의 몸부림 모두가 나의 시 언니가 되어주었던 것 같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한다. 미래에도 나는 많이 아파하고 고통에 몸서리치는 시를 쓰는 사람으로 있을 것 같다. 앞으로도 시가 몸을 찢고 나오는 통증을 기쁘게 끌어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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