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로 대표되는 주류와 들국화로 대변하는 비주류 진영과의 조화가 빛났던 80년대 한국 대중음악이 성취한 천신만고의 성공을 90년대의 음반산업은 처참하게 배신했다. 이 천민적 자본은 돈이 될 것 같아 너도 나도 뛰어 들기 시작한 대기업 자본과 코스닥 상장 효과를 노린 투기성 자본의 진출 장단에 이성을 잃고 거위의 배를 갈랐다.
돈에 환장한 그들의 눈은 진지하고 연대감 있는 뮤지션쉽을 쓰레기 통에 쳐 넣었으며 연말마다 정산해야 하는 대기업의 결산 대차대조표는 장기적인 투자와 오래 갈 수 있는 뮤지션을 발굴해내는 안목을 외면했다. 그리하여 백만장 신드롬은 일상적인 현실이 되었고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영광을 누렸지만 이상하게도 대차대조표의 결손은 줄어들지 않았다. 한국의 음반산업은 과연 어떤 마법에 걸려든 것일까?
그것은 나중에 그들에게 진정으로 결실을 안겨줄 저변의 자양분을 단지 즉각적인 이익에 눈멀어 그 뿌리부터 제거해 버린 데 있다. 한마디로 이들은 음반을 세탁기나 자동차와 혼동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환멸의 90년대는 탐욕적인 이윤동기밖에 남지 않는 문화산업 자본이 또한 바로 자기 자신의 모순에 의해 어떻게 몰락해 가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시기이기도 하다. 이들이 과당경쟁과 과당 배급의 사슬에 걸려드는 뒤안에서 한 앨범의 손익분기점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상승했으며 음악 밖의 힘으로 수행해야 하는 마케팅은 감당할 수 없는 (그리고 장부에 올릴 수 없는) 비용의 추가를 결국 탈세와 불법적 유통으로 떠밀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은 UIP의 직배로 인해 치명상을 입었다가 합리적인 프로듀싱 시스템으로 인해 간신히 재도약의 아슬아슬한 발판을 마련한 한국 영화의 지난 연대와 너무나 극적으로 대비된다.

대중음악의 중요 의제로 등장

그렇다면 우리가 왜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전반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가장 중요한 의제로 클럽에 기반한 인디 문화를 지명해야 하는지 명확해질 것이다.
90년대 중후반 한국 인디문화의 성립은 다음의 세 가지 전제를 바탕으로 출발한다. 그 첫 번째는 1996년 정태춘의 단독투쟁에 의해 63년만에 획득된 표현의 자유. 정치적 검열이 철폐되면서 자유분방한 표현 욕구가 표층을 뚫고 지상으로 분출될 기회를 획득했다.
두번째는 자연발생적인 소자본에 의한 클럽 커뮤니티의 형성. 이 인프라가 마련됨으로써 지하 연습실 혹은 개인 스튜디오에서 고립되었던 비주류 진영 뮤지션들의 좌충우돌적 상상력과 날 것의 오리지널리티를 찾던 소수의 청년 수용자들이 항상적으로 조우할 수 있는 기회를 기적적으로 움켜 잡았다.
세번째는 현행의 음반사 등록법의 배타적인 조항을 교묘히 피해 나간 인디 레이블 ‘인디’의 등장과 제반 인디 프로덕션의 출현.
크라잉 넛을 제외하고 음반 판매량이라는 대중적 척도에서 만장을 넘어서는 것이 거의 전무하다시피한 처량한(?) 신세이지만 클럽·인디 레이블들이 이 짧은 기간 중에 거둔 성과와 유무형의 영향은 결코 무시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렇게 낮고 먼 곳에서 하나씩 우리의 자양분을 형성하여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대중음악이 힘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 될 것이다.

튼튼한 문화성장의 밑거름

인디는 ‘인디펜던트(independent)', 곧 대자본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된 예술가들의 작지만 위대한 상상력의 공동체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주류 문화의 필연적인 부패를 방지하는 잠수함 속의 토끼와 같다. 이들로 이루어진 튼튼한 문화적 밑변이 없는 한 주류도 한류도 세계 시장의 경쟁력이고 뭐고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음은 자명하다. 강력한 문화는 곧 튼튼한 인디문화를 보유하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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