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고시’ 시대다. 기존의 행정고시, 사법고시뿐만 아니라 7·9급 공무원시험. 경찰시험, 임용고사 등 대부분의 국가 자격증 시험 자체가 ‘고시화’되고 있다. 하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들어가는 문은 바늘구멍이다.
신림동과 노량진은 이러한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모이는 ‘고시촌’으로 유명하다. 이에 우리 신문에서는 신림동과 노량진 르포를 통해 실제 고시촌의 분위기는 어떠하며, 학생들이 왜 각종 국가시험으로 ‘전향’을 하는지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편집자

노량진
너도 나도 “안정적인 공무원 좋아”

지하철 1호선 노량진 역에 열차가 멈췄다. 역내 광고판에서부터 풍겨오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경찰·공무원 시험 전문학원’ ‘행정고시준비학원’ ‘기술직 전문학원’ 등. 큼직큼직한 글씨로 마치 역 전체를 덮고 있는 듯한 각종 학원 광고는 이 곳이 ‘학원가’임을 짐작케 한다.
출구로 나가자 8차선 도로 양 옆으로 세워진 건물들에 빽빽하게 붙은 학원 간판들이 눈에 띈다. 뿐만 아니다. 거리의 전봇대, 학원이 들어서 있는 건물 유리, 게시판에도 온통 학원광고다. 거대한 ‘학원도시’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그렇게 숱한 전단지가 붙은 문 사이로 가방을 맨 학생들이 발길을 재촉한다. 오전 10시 30분. 학원 수업이 시작할 때이다.
이 곳 노량진에는 그야말로 ‘취업고시’ 열기가 치열하다. 7·9급 국가공무원을 비롯해 임용고사,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 기술직, 간호직 등 분야도 무척 많다.
“올해 초부터 학생들이 부쩍 늘었어요” 각종 수험서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S씨가 말한다. “고시원으로 모자라 자습실도 많이 생기는데, 요즘은 그것도 자리가 없는 추세예요” 그는 최근 1~2년 새 학생들이 부쩍 이 곳을 많이 찾는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또한 “가장 잘 팔리는 책은 공무원 시험서”라고 덧붙인다.
작은 골목에는 웃지 못할 풍경도 보인다. ‘○○○교수 ○○학 필기노트’. 모 교수의 좋은 강의를 필기한 노트를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점수 올리기 식’ 시험 준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생각에 안타깝기만 하다.
“인터뷰 할 시간 없어요!” 한 식당에 들어가니 여러 명의 점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말한다. 12시부터 학생들이 밀려들어와 빨리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학원가 식당들은 대체로 오전 11시부터 무척 바쁘다. 학생들이 오후 1시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물밀듯이 나왔다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큰 길 가에 있는 한 패스트푸드 점은 몰려드는 학생들로 정신없어 아르바이트 하기 힘든 장소로 유명하기도 하다.
이렇듯 노량진은 각종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다. 신림동과 구별되는 특징은, 이 곳에서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량진에는 진짜 고시보다 더 치열한 ‘고시’가 있다. 바로 ‘취업고시’다. 취업난이 악화되자 많은 학생들이 기업입사보다 안정적인 공무원을 찾아나서는 추세다.
“지난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300:1에 육박했다”고 말하는 E학원의 한 상담자는 “국가에서 채용 인원수를 증가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응시인원이 더 많이 늘어나 경쟁률은 점점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상담을 하면서 대학을 갓 졸업하고 딱히 진출할 분야가 없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택하는 학생이나, 휴학을 하고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오는 학생들을 많이 본다. 그는 “아무래도 기술직은 전공자들이 유리한 반면, 공무원은 누구나 공부할 수 있는 과목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도전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휴학 후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한 S대학 J양은 “전공은 다르지만, 직업 특성상 안정적이고 채용인원도 많아서 도전해보려고 한다”고 털어놓는다.
이렇듯 요즘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전공, 꿈과는 상관없이 단지 돈 잘 벌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하기에 급급한 분위기다. 노량진 학원가에서는 좁은 학원 강의실 앞에 빽빽히 들어서서 강의를 기다리는 천편일률적인 학생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취직’이라는 암세포에 젊은이들의 ‘꿈을 향한 도전’ 세포가 점령당하고 있는 듯한 우리 사회의 씁쓸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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