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비리앙
차갑다 지구는.
몇 차례의 전쟁과
노래의 요람 속에
무서움 피우고 달래주는
지구는 차갑다.
마음 속에 빛과 어둠처럼
그렇게 다툼은 멈추지 않고
의식이 해마냥 밝아지면
화장한 신부와 속 빈 풍선과
생각하는 형벌만이
오래오래 남는 씨비리앙
차갑다 지구는.

- 이창대 시집 <바리데기 신화>
(문학아카데미, 1990)


이십 년쯤 된 일이다. 마지막 기차와 막 버스를 모두 놓친 어느 밤, 영등포역 앞 포장마차에서 ‘윤후명’ 씨와 소주를 마신 적이 있었다. 새벽녘에 총알택시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주로 좋아하는 시인에 관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빛나는 시집 <명궁>의 시인과 이제 막 등단한 신출내기 사이에서 퍽이나 많은 시인의 이름들이 오고 갔다.
내가 동대 출신이란 말을 들은 그가 물었다. “이창대를 아느냐?”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제 학교 선배도 모르는 내가 딱하다는 듯이, 관심을 갖고 공부해볼만한 사람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독특한 시인이라고 했다. 우리 시의 중요한 성취라 할 수 있는 ‘60년대 사화집’동인인데 그의 시가 보여주는 ‘존재론적 비판정신’이나 ‘신념에 찬 예지(叡智)’는 가히 놀랍다고 말하던 표정이 떠오른다.
사실이다. 그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기이한 초연(招宴)’과 ‘무서운 유희’만 보아도 그가 정말 제목처럼 기이하고 무서운 시를 쓰다가 간 사람임을 알 수 있다. 앞의 시는 우리들을‘주인은 보이지도 않고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로 못 박고, 뒤의 시는 우리네 삶을 ‘사해(死海)속에 떴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공포의 놀이’로 설명한다.
이창대(李昌大;1930-1989)는 흔한 시인이 아니다. 그의 시엔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 있다. 이를테면, 여기 옮겨놓은 시 ‘지구’는 서늘하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