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어느 여자 탤런트가 가짜 세상을 풍자한 노래로 한동안 매스컴을 탄 적이 있다.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친다!”라는 구절이 주요 모티브를 이루는 이 노래는 당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여러 사람들이 즐겨 부르던, 말 그대로 인기 유행가였다.
지금도 이 노래를 떠올리면 실소가, 아니 씁쓸한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노래로 ‘짜가’, 즉 가짜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던 바로 그 사람, 그 탤런트가 그 노래로 번 돈을 자신이 가장 신뢰하던 매니저로부터 사기를 당했던 어처구니없는 사건, 이 사건을 떠올리면 정말 그녀의 노랫말대로 ‘세상은 요지경’인가보다.
가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던 장본인이 가짜에게 당하는 아이러니, 이 아이러니가 이제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닌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가짜라는 단어를 전도(顚倒)시킨 짜가라는 단어가 유행할 때만 해도 이 단어는 경종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짜가가 ‘짝퉁’으로 바뀌면서 어느새 이 단어가 지닌 함의는 경종이 아니라 필요악, 아니 ‘필요선’이 되어가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사회가 가짜에 속는 것이 아니라 가짜생산의 ‘공모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가짜 명품, 즉 짝퉁인줄 알면서 그 물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날로 늘어가더니 이제는 급기야 짝퉁에도 등급이 생겼다고 한다. 웃어넘기기만 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데 문제의 심각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짝퉁 바람이 상품에 그치지 않고 사람에게까지 거세게 불어 닥치고 있다. 사이버 세계, 가상현실이 우리의 진짜 현실을 위협하고 있다.
영화관에서는 로보캅과 매트릭스가 인간을 농락하고, TV광고에서는 평범한 젊은 남녀가 슈퍼맨이 되어 날개도 없는 맨몸으로 하늘을 날거나 예수처럼 물위를 걸어 다닌다.
컴퓨터 게임, 휴대폰 게임에 빠진 아이들은 그 속에서 현실을 잊는다. 까딱하다가는 사이보그가, 복제인간이 진짜 인간을 지배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불현듯 온몸이 오싹해진다.
그러나 이보다도 더 나를 전율시키는 것은 외모 지상주의가 우리 사회에 몰고 온 광풍이다.
사이보그와 복제인간은 미래의 일이지만, 그래서 아직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외모지상주의라는 이 광풍은 오늘,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토네이도만큼이나 거센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조상이 물려준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고귀한 얼굴을 난도질해대는 이 광풍은 어디쯤에서 끝날 것인가.
자기 얼굴이 아닌, 성형외과 의사가 만들어준 남의 얼굴, 가짜 얼굴로 보다 아름답게 위장을 해야 취직이 잘되고, 보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는 풍토, 성형수술이 일등급 효도선물로 통용되는 풍토.
이렇듯 내용보다는 외관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얼굴만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즉 우리의 정체성도 잃어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반 외모지상주의 캠페인이라도 벌려야 하는 것은 아닌지….

임 호 일
문과대학 독어독문하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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