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동대문학상 우수상

양지숙(문과대학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2학년), 소설 「미식가」 

미식가

미진은 편의점 테이블에 앉았다. 새나가 만나자고 한 곳은 디저트 카페였지만, 찍어준 주소는 세븐일레븐 편의점이었다. 이곳에도 디저트와 테이블은 있으니까 그게 그거라고. 얼마 안 가 새나가 츄리닝을 입고 걸어왔다. 어울리지 않는 하늘색 핸드백을 어깨에 멨다. 새나는 두 팔을 번쩍 들어 휘저었다. 미진이 어색하게 손을 올렸다.

새나가 편의점에서 크림빵을 사서 나왔다. 미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었다. 원래 한 봉지에 세 개씩인데, 한 개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새나 입가에 벌써 크림이 묻어 있었다. 미진은 새나를 쳐다봤다. 누구더라. 미간을 찌푸렸다. 대학생부터 초등학생 시절까지 빠르게 더듬었지만 기억나는 얼굴은 없었다. ‘새나’라는 이름도 입에 잘 붙지 않았다.

새나가 핸드백을 뒤적거렸다. 그러더니 한참 만에 명함을 꺼냈다. 청소업체 로고가 그려져 있었다. 일단 받았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새나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조금 쑥스러운 표정이었다. 미진은 명함을 만지작거리다가 점퍼 주머니에 넣었다. 잘 지내냐고 물었더니 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가 이어지지 않았다. 새나가 먼저 일어났다. 그러곤 남은 크림빵을 미진에게 건넸다. 빵과 빵 사이에 크림이 듬뿍 발렸다.

미진이 그것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싸구려 밀가루 맛이 났다. 크림에 든 설탕이 한 번에 튀어나오면서 아래턱이 뻐근했다. 미진은 이 순간을 제일 좋아했다. 그런데 자꾸 씹다 보니 맛이 이상했다. 바닷물을 머금은 것처럼 입안이 짰다. 미진이 아는 크림빵은 이렇지 않았다. 속이 순식간에 울렁거렸다. 뭐가 이렇게 짜. 따지려고 고개를 들었지만, 새나는 이미 가고 없었다.

 

집에 와서도 속이 좋지 않았다. 입을 헹구려고 거울을 봤더니 입가에 허연 게 묻어 있었다. 크림빵을 먹다가 묻었나. 입안에 아직도 크림 맛이 맴돌았다. 냉장고에 남아 있는 활명수를 모두 마셨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시계를 봤다. 이른 저녁이었다. 미진은 후드집업을 걸치고 마트에 갔다. 맵고 짠 음식을 보면 무조건 담았다. 치토스를 세 봉지 집었고 냉동 피자 두 판을 카트에 넣었다. 계산대 줄을 서다가 누텔라를 한 통 샀다. 단 것도 필요할 것 같았다. 저녁으로는 진라면을 먹었지만, 숨을 내뱉을 때는 여전히 크림 맛이 느껴졌다. 새벽에는 속이 끓더니 식도로 뜨거운 것이 막 올라왔다. 그동안 먹었던 것들을 변기에 모두 토해내고 나서야 겨우 잠들었다.

며칠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날 뒤로 무얼 먹든 전부 게워냈다. 우유를 마시거나 죽만 먹어도 토했다. 병원에 갔지만 거식증이나 섭식장애 진단은 받지 않았다. 의사는 흔히 있는 스트레스성 질환이라고 했다. 미진은 진료실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쳐다봤다. 눈 밑 애교살이 쑥 들어가고 고개를 숙이면 살짝 접히던 턱살도 사라졌다. 제대로 먹지 못해 수척해졌지만, 눈동자가 유난히 새카맸다. 더러운 유리창을 닦은 것처럼, 오랜만에 보는 맑은 눈빛이었다.

집에 돌아온 미진은 약봉지를 꺼냈다. ‘식후 30분 뒤’. 무얼 먹어도 십 분도 안 돼서 토해내는데 약은 어떻게 먹으라는 거지. 미진은 약봉지를 탁자 위에 던졌다. 전에 먹은 크림빵을 떠올렸다. 새나와의 카톡 창을 열었다. 새나에게 연락을 받은 건 몇 주 전이었다. ‘오랜만이야’로 시작해서 안부를 묻는 말들이 서너 줄 적혀 있었다. 이모티콘과 특수기호가 적당히 섞여 있어 살가워 보였다. 친구 추가가 되어 있지 않아 잘못 온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새나는 미진의 나이와 대학교를 기억했고, 단 음식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다. 혹시라도 상처받을까 봐 누구냐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새나가 한번 만나자고 했을 때 미진은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얼굴이라도 보면 기억이 좀 날까 싶었다. 하지만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새나와 만났던 편의점 위치를 기억해내려고 스크롤을 위로 올렸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나눈 대화를 발견했다. 그날 어색하게 헤어지기는 했지만, 연락은 종종 했다. 대부분 ‘뭐해’로 시작해서 ‘그냥 있어’로 끝났다. 중간중간에 바퀴벌레 사진도 있었다. 박멸업체에서 일하는 새나가 보낸 것들이었다. 이런 건 무조건 짓눌러서 터트려야 해, 하면서 알집을 제거하는 영상도 있었다. 보낸 시간이 대부분 점심때였다. 나름대로 대화를 이어나가려는 시도였는지, 그저 장난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전에도 이런 애였나. 처음에 몇 번 보다가 꺼버렸더니 새 영상이 서너 편 쌓여있었다. 미진은 호기심이 일었다. 며칠을 굶다시피 해서 버릴 입맛도 없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보겠어. 영상을 틀었다. 모두 일 분이 안 됐지만 다 보고 나니까 배가 고팠다.

한때 미진은 건강검진을 받는다고 밀가루를 끊은 적이 있다. 라면이 너무 먹고 싶어서 불닭볶음면 먹방 영상을 종일 틀어놓았다. 참지 못하고 라면 봉지를 뜯은 것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미진은 입맛을 다셨다. 새나가 보내준 영상으로는 부족했다. 유튜브에 바퀴벌레를 검색해 온갖 영상을 보다가 연가시가 나오고서부터는 껐다. 네이버에 바퀴벌레 영화를 여러 편 검색해 한 번에 결제했다. 미진은 특히 ‘조의 아파트’를 밤새가면서 볼 정도로 마음에 들어 했는데, 바퀴벌레가 가장 많이 나와서였다. 수백 마리의 바퀴벌레들이 아파트를 누볐다. 엔딩크래딧이 올라가는 것까지 다 보고 나서도 머릿속에서 몇몇 장면들이 아른거렸다.

자기 전에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의 스토리를 넘기다가 식용 바퀴벌레 광고를 봤다. 도마뱀 먹이였지만 미진은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더 알아보기’를 누르려다가 실수로 앱을 나가버렸다. 다시 들어갔지만 같은 광고는 찾을 수 없었다. 홀린 듯이 파충류 먹이 사이트에 들어간 건 그래서였다. 식용 바퀴벌레를 팔천 원에 팔고 있었다. 사람도 먹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글이 달리지 않았다. 해외 사이트는 선택지가 좀 넓었다. 배송이 오래 걸릴 수는 있어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바퀴벌레 말고도 별 희한한 것들을 다 팔았는데,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식용 달팽이였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 새나와의 카톡 창을 열었다. 새로운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잡은 바퀴벌레들을 모아놓은 사진이었다. 농부가 풍년에 수확한 것들을 자랑하듯이 이거 봐, 했다. 미진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새나에게 답장을 보냈다.

‘다 버리는 거야?’

‘응.’

답장이 바로 왔다. 미진은 저 많은 바퀴벌레가 불에 타 없어지는 장면을 상상했다. 크고 반들반들한 몸통이 한순간에 쪼그라들어 사라질 거였다. 썩은 단백질과 구수한 번데기 냄새 중에 어떤 쪽일까 생각하다가 입맛을 다셨다. 아무래도 좀,

‘아깝다.’

미진은 핸드폰을 덮었다. 몸을 몇 번 뒤척이다가 잠들었다. 배는 여전히 고팠다.

 

아침에는 일어날 힘도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죽을 것 같았다. 회사는 며칠 전부터 가지 않았다. 밥줄이 끊겨도 어차피 밥은 먹을 수가 없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미진은 바닥에 엎드려 노트북을 켰다. 즐겨찾기 해두었던 파충류 먹이 사이트에 들어갔다. 저렴 그리고 맛있는 바퀴벌레 4종 세트. 어색하게 구글 번역한 제품을 클릭했다. 리뷰 칸에는 댓글이 열 개 달려 있었다. 대부분 짧은 영어였고 간간이 한국어로 ‘좋네요’ ‘배송이 빨라요’ 같은 글도 적혀 있었다. 미진은 고민 끝에 장바구니에 담았다. 비회원 주문을 하자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결제 완료 문자인가 싶어 확인했는데 새나였다.

새나는 그때와 똑같은 옷을 입고 카페에 왔다. 이번엔 정말로 카페였다. 새나가 자리에 앉는 것을 보면서, 미진은 크림빵 얘기를 할까 생각했다. 맛이 좀 달랐다고. 고민했지만 그만두었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바퀴벌레 이야기가 나올 거였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때 미진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배송 알람 문자였다. 파충류 먹이 사이트에서 온 게 분명했다. 배송이 빠르다는 리뷰를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몇 주도 안 걸릴 줄은 몰랐다. 무시해야 하는데 몇 시에 도착하는지 알고 싶었다. 식은땀이 났다. 뭔데, 하고 새나가 빼앗아갔을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미진은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새나와 눈을 마주쳤다. 새나의 눈은 원래도 밝은 편이었지만 카페 천장에 달린 조명 때문에 더 노랗게 보였다. 가느다란 선들이 홍채 안에서 가지처럼 자라 있었다. 새나가 미소를 지었다.

미진이 벌떡 일어섰다. 만나지 말 걸 그랬다. 자리를 벗어나려는데 새나가 팔을 붙잡았다. 손에 무언가 쥐여주었다. 명함이었다. 편의점 앞에서 받은 것이 아직 점퍼 주머니에 있었다.

“내가 도와줄게.”

순간 편의점에서 본 새나 모습이 떠올랐다. 망설이는 듯하면서도 길게 뻗은 팔. 마치 이런 일이 올 것을 예상한 것처럼. 미진은 새나 앞에서 명함을 구겼다. 도망치듯이 카페를 나왔지만, 손에 땀이 가득 찼다.

문 앞에 택배가 와 있었다. 식용 바퀴벌레였다. 택배 상자는 생각보다 작았다. 살짝 흔들자 덜컥거리는 소리가 났다. 안에 회색 포장지가 들어 있었다. 겉에 바퀴벌레 네 마리가 사진으로 프린팅되어 있었다. 열어보기까지 마음의 준비가 꽤 필요했다. 택배 상자를 방구석에 잠깐 밀어두었다. 핸드폰으로 식용 바퀴벌레 먹는 법을 검색했더니 애완동물에게 먹이는 법은 꽤 나와도 사람이 먹는 후기는 많지 않았다. 페이지를 계속 넘기자 ‘내돈내산 바퀴벌레 먹기’라는 제목으로 글이 한 편 올라와 있었다. 앞부분에는 바퀴벌레의 역사에 대해서 간단히 정리해놓았다. ‘전 세계에 사천 종이 넘는 바퀴벌레는 수억 년 전부터 존재했다.’ 첫 문장 아래로 블로거가 넣은 자료 사진이 보였다. 지옥 개미가 새끼 바퀴벌레를 먹는 순간이 담긴 호박 보석이었다. 미진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블로거는 바퀴벌레가 여러모로 미래 식량의 유력 후보라면서 말린 바퀴벌레 사진을 올렸다. 하지만 그 아래로 ‘자세한 후기는 2부에’라고 적혀 있었다. 다음 글을 찾아봤지만 ‘2부’는 없었다. 미진은 조급해져 택배 상자를 쳐다봤다. 배가 고팠다. 핸드폰을 내려놓고 상자를 다시 가져왔다.

안에는 투명한 지퍼백이 네 장 들어 있었다. 한 장 꺼내자 바짝 마른 바퀴벌레 한 마리가 보였다. 코를 가져다 댔다. 헛간에 쌓아놓은 건초 냄새가 났다. 막상 보면 먹기 싫을 줄 알았는데 미진은 어느새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소독한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었다. 다리 한 개를 조심스럽게 앞니로 뜯었다. 천천히 씹었다.

맛이 없었다. 그러니까,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미진은 포장지를 전부 서랍 안에 넣었다가 다시 쓰레기통에 담았다. 화장실에서 입을 헹구고 나오자 배가 꾸르륵거렸다. 여전히 배가 고팠다. 욕심이 생겼다. 좀 더 맛있는 바퀴벌레를 먹고 싶었다. 통통한 알집을 골랐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미진은 그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아 바닥에 누웠다. 먹지 않아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도록 이대로 굳어 있고 싶었다. 얼마 전에 본 ‘조의 아파트’가 생각났다. 바퀴벌레 수십 마리가 조를 쓰러트리는 장면이 있었다. 그중 한 마리가 주인공 조의 코 위에서 경건하게 외쳤다. ‘진정한 바퀴벌레는 결코 포기 안 해!’ 미진은 일어났다. 바퀴벌레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자신도 포기할 수 없었다. 옷장을 열었다. 점퍼 주머니를 뒤져 구겨진 명함을 꺼냈다.

 

“넌 먹기만 하면 돼.”

새나가 봉투를 내밀며 말했다. 운이 좋으면 첫 집에서 바퀴벌레가 나올 수도 있다면서. 미진은 자신도 청소 일을 돕겠다고 했다. 얻어먹기만 하는 건 영 마음이 불편했다. 약을 먹이지 않아서 찾는 데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벌레들이 싫어한다는 주파수로도 안 되냐고 물었더니 너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청소가 끝나고 새나가 봉투를 가지고 왔다. 미국 바퀴벌레 두 마리가 들어 있었다. 옆구리가 터져 움직임이 느렸다. 미진은 토할 것 같으면서 동시에 군침이 돌았다. 아파트 계단에 서서 봉투를 만지작거렸다. 집게를 봉투 깊숙이 넣었다. 바퀴벌레의 딱딱한 등껍질이 느껴졌다. 꺼내기는 했지만 차마 입에 가져다 댈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심호흡하고 입을 벌렸지만 넣을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한 바퀴벌레가 꿈틀 움직였다. 그제야 미진은 바퀴벌레 뒷다리를 물어뜯었다.

고소했다. 길거리에서 파는 번데기의 달고 뜨뜻한 육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미진은 바퀴벌레를 허겁지겁 입에 넣기 시작했다. 입안에서 움직임을 느끼기도 전에 삼켜버렸다. 더 먹으려고 집게를 봉투에 넣었는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벌써 두 마리를 먹은 건지, 나머지 한 마리는 도망치는 데 성공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진정한 바퀴벌레라면 포기하지 않는 법이니까, 어쩌면 목숨을 건졌을지도 모른다. 아파트 계단을 내려오자 새나가 보였다. 미진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날은 며칠 만에 편안하게 누울 수 있었다. 배도 고프지 않았다.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들이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부럽지 않았다. 미진은 이불을 코끝까지 올렸다. 새나가 바퀴벌레 봉투를 건네던 순간을 생각했다. 가장 튼실하고 맛있어 보이는 두 마리였다. 왜 이렇게까지 해주지, 미진은 생각했다. 그 정도로 친한 사이였나. 미진은 새나의 바퀴벌레 선호도에 대해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같은 아파트에서 한 달에 몇 번씩이나 업체를 부르는 일은 흔치 않았지만, 보조로 온 미진에게도 단골은 있었다. 기다란 복도식 아파트의 809호였다. 새나가 바빠지면서 그 집은 온전히 미진의 차지였다. 처음 들어섰을 때 거실은 깔끔했다. 소파에 옷가지들이 아무렇게나 걸려 있기는 했지만, 업체 청소가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바퀴벌레가 있을 뿐이었다. 갈 때마다 집은 비어 있었다. 의뢰인이라는 사람은 문자로만 연락했다. 입금자명도 호수로 적혀 있었다. 새나에게 물었더니 그런 손님들이 몇 있다고 했다. 자신들의 집이 바퀴벌레 서식지라는 것을 애써 부정하면서, 아예 얼굴을 비추지 않는다고. 그래서 미진은 단골을 단골이라고 저장했다. 나중에도 찾아주세요, 라는 답장을 보냈을 때는 정말로 일주일 뒤에 또 부를지 몰랐다. 바퀴벌레의 서식지를 찾아보았지만, 흔적은 없었다. 누군가 이곳에 일부러 바퀴벌레를 풀어둔 것처럼. 하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하다가도 냉장고에 차곡차곡 쌓이는 바퀴벌레 통을 보면 마음이 놓였다. 급식소에서 밥을 받듯이 미진은 그곳을 꼬박 찾아갔다.

두 달이 지났을 때 즈음, 단골 의뢰가 뜸해졌다. 몇 주간은 아무 연락도 주지 않았다. 미진은 냉장고에서 락앤락을 꺼냈다. 초록색 고무 뚜껑을 열고 남은 바퀴벌레 수를 셌다. 너무 빨리 줄어들고 있었다. 좀 더 아껴 먹어야 했는데. 메시지 앱을 열었다. ‘입금 확인해주세요’라는 단골의 문자를 마지막으로 더는 대화가 없었다. 요즘은, 하고 썼다가 지웠다.

809호 현관문 앞에 섰을 때, 미진은 지금이라도 돌아갈까 싶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두드린다고 열릴까 싶기도 했다. 전에는 복도에 도착하면 문이 이미 열려 있었다. 하지만 그건 연락이 됐을 때 이야기고, 이번에는 무작정 찾아온 거니까. 미진은 입맛을 다셨다. 배가 고파서 왔어요. 남은 바퀴벌레 좀 있나요. 둘 다 같은 말이었고 똑같이 정신 나간 소리였다. 뭣하면 업체에서 진행하는 사후관리 서비스라고 둘러댈 셈이었다. 미진은 드디어 초인종을 눌렀다. 고장이 났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현관문을 네 번 두드렸다. 안에서 사람들 말소리가 뭉개져 들리더니 현관문이 열렸다. 손에 반찬통을 든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품에 꼭 안고 있어서 무엇이 들었는지는 볼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나온 것은 새나였다.

미진은 단골의 전화번호를 확인했다. 새나 번호가 맞는지 확인하려다가 그동안 카톡 메신저로만 연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담당이 새나로 바뀌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새나는 크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뒤로 부엌이 보였다. 식탁 위 반찬통에는 바퀴벌레가 잔뜩 들어 있었다. 미진은 주춤거리면서도 반찬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여기서 뭐 하는 거냐고 물어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배가 너무 고팠다. 새나가 입을 열었다.

“들어와.”

둘은 식탁 의자에 앉았다. 미진은 집 안 인테리어가 몇 달 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식탁 위치가 바뀌었나. 어쩌면 소파를 새로 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미진은 반찬통을 쳐다보았다. 적당히 말린 바퀴벌레 등딱지가 보였다. 먹어도 되냐고 물어볼 뻔했다. 새나 옆에 노트북과 종이 파일이 여러 장 쌓여있었다. 미진은 꼭 면접이라도 보러 온 것 같았다.

“바퀴벌레 먹는 사람들이야.”

너처럼. 아까 그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얇은 책자를 한 권 꺼냈다. 빨간색 표지에 커다란 2023이 쓰여 있었다. 미슐랭 가이드였다. 미진은 책자를 펼쳤다. 평범한 음식점 소개가 다였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지. 그저 멀뚱거리고 있자, 새나가 이번에는 노트북을 꺼냈다. 화면에는 미슐랭 가이드 홈페이지를 띄어놓았다. 천오백 개가 넘는 식당 리스트가 나왔다. 새나는 오른쪽 위에 있는 세 줄 버튼을 눌렀다. 간단한 홈페이지 메뉴가 나왔다. 레스토랑, 호텔, 매거진, 이벤트. 그 아래에 있는 ‘문의하기’를 누르자 이메일 창이 떴다. ‘바퀴벌레’를 영어로 적고 전송했다. 홈페이지로 돌아가니 ‘문의하기’가 있던 자리에 ‘필터 모두 해제’가 새로 생겼다. 새나가 그 글자를 누르자 화면이 온통 검게 바뀌었다. 타이어 캐릭터가 손을 흔드는 미슐랭 가이드 로고가 사라졌다. 대신 기본 폰트를 쓴 듯한 영어 로고가 보였다.

「MICHELIN GUIDE FOR COCKROACH EATERS」 바퀴 먹는 이들을 위한 미슐랭 가이드

식당 수는 스물세 곳으로 줄어들었고 사진도 달랐다. 얼핏 보면 평범한 게 대부분이었지만 가끔가다 온전한 바퀴벌레 모양을 한 요리도 있었다. 어쨌거나, 이것들은 모두 바퀴벌레였다. 미진은 홈페이지를 한참 쳐다보다가 핸드폰으로 미슐랭 가이드를 검색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새나처럼 메일을 보내봤지만, 화면은 그대로였다. 새나는 링크를 우회해서 들어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미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우리가 하는 일이야.”

새나가 ‘우리’라고 했을 때 반찬통을 들고 집을 나왔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애초에 809호는 단골의 아파트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단골 같은 건 애초에 없었고 새나의 아지트 정도가 맞았다. 미진은 자신도 새나의 ‘우리’에 포함되는지 궁금했다.

“이제는 바퀴벌레 요리도 당당하게 미슐랭 가이드에 떴으면 해서.”

미진은 새나가 언제부터 바퀴벌레를 먹기 시작한 건지 몰랐다. 애초에 먹을 수 있었는지도. 기억도 나지 않는 사람이 대뜸 연락했을 때부터 의심해야 했다. 달콤했던 크림빵을 떠올렸다. 미진이 마지막으로 소화해낸 ‘음식’은 크림빵이었다. 다른 것은 다 토해냈다. 하지만 먼저 먹은 건 새나였다. 아니, 정말 먹었나.

미진은 새나를 쳐다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듯한 눈이 갈색으로 반들거렸다. 조명이 없는데도 그랬다. 원래 저렇게 밝은색이었나. 미진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고개를 한 번만 끄덕이면 바퀴벌레 반찬통은 미진 차지였다. 미진은 애써 웃으며 자세히 말해달라고 했다. 이제부터 미진은 바퀴벌레 미슐랭 모임의 정회원이었다.

 

모임에서 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한 달의 마지막 주말마다 만나서 바퀴벌레 요리를 먹는 게 다였다. 바퀴벌레 식당을 찾아가거나 하지는 않았다. 외국에 괜찮은 식당이 있다고 해도 매달 갈만한 상황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809호에 모여 음식을 해 먹었다. 회원마다 돌아가면서 자신이 준비한 레시피를 선보이는 방식이었다. 직접 해서 먹는다고 해서 모두 요리 솜씨가 좋은 건 아니었다. 미진은 차라리 해외 사이트에서 산 마른 바퀴벌레를 먹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다른 회원들은 으음, 하며 눈을 감고 온몸으로 요리를 음미했다. 바퀴벌레를 먹을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버텨내는 것 같았다. 누군가 살아있는 바퀴벌레를 놓치는 바람에 집 안이 비명으로 가득해진 뒤로는 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미진이 모임에서 벗어나지 못한 건 필요할 때마다 챙길 수 있는 바퀴벌레 반찬통 때문이었다. 누구든 집에 바퀴벌레가 바닥나면 809호 냉장고에서 꺼내 가져갈 수 있었다. 덕분에 새 직장을 구할 때까지 식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미진은 새나가 조금은 고마웠다. 이 모임이 아니었다면 언젠간 바퀴벌레를 먹지 못해 아사한 미라로 박물관에 전시되었을 테니까. 박물관 기념품으로 바퀴벌레 인형을 파는 것까지 생각이 미치자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미진은 운동을 새로 시작하면서 식욕이 늘었다. 그래봤자 먹을 수 있는 건 바퀴벌레뿐이었지만 809호에 가는 건 꽤 설레는 일이었다. 8층 복도에 들어섰을 때, 미진은 회원 한 명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젊은 여자였는데 주머니가 잔뜩 달린 카고바지에 회색 후드티를 입고 있었다. 모임 때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어 얼굴은 제대로 본 적이 없지만, 그 모자 때문에라도 알아볼 수 있었다. 자기소개 시간에 가족이 있어서 이런 모임에 다니는 건 비밀이라고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었다. 모임에 아는 사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친구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미진은 여자와 어색하게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여자의 눈동자는 밝은 갈색이었다.

“올해의 회원은 새나 씨겠죠?”

회원이 냉장고에서 미진의 반찬통까지 꺼내주며 말했다. 매년 말에 가장 많은 신규 회원을 모집한 사람을 뽑는다고.

“올해 초에 사람들 모은다고 전화며 문자며 얼마나 돌렸는데요.”

미진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뽑히면 뭐가 좋은데요, 묻는 미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여자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디서 후원금이라도 받나 보죠, 하면서. 몇 년 만에 얼굴 한 번 보자던 새나의 카톡이 떠올랐다. 친근하면서도 예의 있는 말투. 메시지를 통째로 복사, 붙여넣기 한 것 같았다. 그 위에 [Web 발신]이라도 적혀 있는 것처럼.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친구목록에 추가했을까. 그중에 정말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됐을까. 미진은 그 많은 웹 발신 메시지 중에 자신이 받은 건 몇 번째였을지 생각했다.

 

단식. 미진이 집에 돌아와서 생각한 최선이었다. 더는 바퀴벌레를 먹을 수 없었다. 새나가 어떻게 자신의 번호를 알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알았을지 생각할수록 머리가 아팠다. 하지만 미진에게 새나는 여전히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기억나지 않는 사람 같았다. 미진은 바짝 마른 입을 다문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그때, 비닐봉지를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현관문을 힘껏 두들겼다. 미진은 벽에서 몸을 일으켰다. 겨우 기어가 문을 열었다. 이번에도, 새나였다. 본죽 포장지를 들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새나가 탁상에 앉아 게살죽을 꺼냈다. 그릇과 숟가락을 가지고 올 동안 미진은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렇구나. 그렇게 이용했어도 걱정은 되는 모양이구나. 미진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편의점 테이블에서처럼, 둘은 한참 동안 말없이 마주 앉았다. 새나가 플라스틱 통을 열고 죽을 펐다. 그러곤 숟가락을 미진에게 내밀었다. 허여멀건 쌀밥에 큐브 모양으로 잘린 채소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녹은 치즈가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더 묽었다. 잊고 있던 크림빵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크림이라기에는 너무 짜고 묽었다. 애초에 그거, 크림이 맞기는 했을까. 그 순간 미진은 카톡 창에서 본 바퀴벌레 알집이 생각났다. 짓눌려 하얀 속이 다 보이게 터진 알집. 새나의 팔을 쳤다. 죽이 묻은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졌다. 구역질이 났다.

“안 먹어.”

그렇게 말하면서 미진은 새나를 노려봤다. 새나의 눈은, 분명 블로그에서 본 호박 사진과 닮아 있었다. 두 눈에 커다란 지옥 개미가 작은 새끼 바퀴벌레를 잡아먹으려던 순간이 몇천 년 동안 박제되어 있었다. 바퀴벌레를 먹기 위해 그 긴 시간을 기다린 징그러운 개미. 시간이 흐르지 않는 끈적한 호박 속에서 개미는 아직도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나가.”

미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새나가 입을 열었다. 변명 같은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말소리보다는 이명 같았다. 시끄러웠다. 미진은 귀를 막았다. 새나의 말은 처음부터 듣지 말았어야 했다. 나가라고, 미진이 소리를 꽥 지르자 새나가 천천히 일어났다. 곧 도어락 소리가 들리면서 새나가 사라졌다. 집 안에서는 여전히 고소한 죽 냄새가 났다. 미진은 벽에 몸을 붙이고 웅크렸다. 사방이 조용했다. 떨어진 숟가락을 다시 들었다. 기계적으로 죽을 펐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입에 넣었다. 곧바로 한 숟갈 더 펐다. 죽을 안에 잔뜩 머금고 나서야 씹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입을 움직였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속이 다시 울렁거렸다. 미진은 비틀거리며 화장실로 향했다. 세면대에 손을 올리자마자 죽이 그대로 올라왔다. 어깨를 들썩이며 안에 있던 것들을 모두 게워냈다. 위장에 쌓인 바퀴벌레들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이미 먹힌 것들이 서로 먹고 먹히면서. 쉰내가 코를 찔렀다. 눈이 매웠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니, 그렇다기에는 너무 걸쭉했다. 누르스름한 것이 세면대로 뚝뚝 떨어졌다. 그것은 꿀처럼 보이기도 하고 진물 같기도 했다. 시야가 흐려 잘 보이지 않았다. 미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긴 한숨과 함께 끈적해진 눈꺼풀을 천천히 올렸다. 고개를 들자 화장실 거울에 비친 눈이 반짝였다. 밝고 진한 노란색이었다.

그 안에서, 아주 작은 바퀴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20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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