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한지도 벌써 한달이 되어간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계절 탓인지, 매학기 초의 일상적 현상의 남다른 느낌인지는 모르겠으나, 캠퍼스에는 활기가 넘치고 있다. 이는 대학구성원 모두 나름대로 ‘잘’해보겠다는 의욕을 가졌음에서도 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문득 ‘잘’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것의 사전적 의미는 ‘옳고 바르게’, ‘좋고 훌륭하게’, ‘아주 적절하게’, ‘만족스럽고 충분히’등 다양하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어떤 결심이나 의지를 표현할 때 ‘잘’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고, 때로는 어떤 상황을 모면하고자 할 때도 이 말을 동원하곤 한다.
일전에 초등학교 5학년인 큰 아이에게 어쩔 수 없는 부모 된 욕심에 앞으로 어떻게 공부할 것이냐고 다그쳤던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이는 그냥 “자-알”이라고만 대답하고 씩 웃고 만다. 한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이럴때 ‘자-알’의 의미는 무엇인가, 분명히 그 말 본래의 의미는 아닌 듯 하고 추측건대, 단지 난처한 상황을 적당히 벗어나고자 했던지, 아니면 약간의 반항심과 짜증스러움을 제 딴엔 좋은 의미의 말을 빌어 표현한 듯하다. 그런데, 이러한 투의 말이 제 또래 아이들의 대화에서는 무슨 유행어처럼 일상화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언어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말이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소멸되고 새롭게 생성된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것은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요즈음 나라 안팎이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쳐 조용하지 않다. 누가 일부러 문제를 일으키고자 해서 이렇게 소란스러워지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설문조사라도 해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나름대로는 올바른 생각과 ‘잘’해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제 할일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답이 대다수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결국 ‘잘’하겠다는 말의 사용자나 듣는 사람의 ‘잘’에 대한 사용과 해석의 차이에서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즉 ‘잘’이 사전적 의미대로 바르게 사용되거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 이면에 또 다른 의미와 의도가 내포되어 사용된 결과가 아닌가 한다. 마치 우리 집 큰아이의 “자-알”이라는 대답처럼.
이제 대학사회에도 경쟁의 논리가 적용되고,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회자(膾炙)되고 있다. 우리대학과 우리 대학 구성원 어느 누구도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최선의, 최상의 대안은 무엇인가? 바로 현실의 직시다. 조금의 가감도 없는 현재 우리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또한 그것을 인정하는 바탕 위에 구성원 모두가 제자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잘’하는 수밖에 없다. 학생은 공부에 게을리 하지 않고, 교수는 연구와 강의에, 행정당국은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지원정책개발에 올인 해야만 한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여기서의 ‘잘’은 이제 그냥 ‘잘’만 가지고는 안된다. 진정성을 가진 본래의 사전적 의미의 ‘잘’이 되어야 한다. 정말 ‘잘’해야 한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