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너무 현실적이지 않아. 우린 이 말로 스스로를 가두기도 하고, 때로는 타인을 가두기도 한다. 우리는 어떤 현실에 살고 있길래 어떤 선택지는 현실적이지 않다고 배제시켜 버리는 것일까. 현실 속에 있는 내가 한 생각이라면 충분히 현실적인 것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말장난 같은 생각은 일단락하고, 내 개인적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짧게 써보려 한다.

  나는 내 학부 전공과 다른 진로를 선택하여 대학원에 오게 되었다. 내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취업을 하였고,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지금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변화의 시작은 작은 선택이었다. 영화제 스태프 교육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당시 취준생이던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교육이 큰 부담이 되지 않아 여행가는 마음으로 수원과 전주를 오가며 내 관심 분야의 교육을 듣게 되었다. 이 하나의 점은 전주국제영화제 스태프로 이어졌고, 다시 부산국제영화제 스태프로도 연결되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내가 원하는 공부를 하며 대학원 생활 중에 있다. 처음 전주를 오갈 때 까지만 해도 전혀 몰랐다. 과거의 나에게 이러한 일련의 일들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 현실적이지 않은 일이라고 답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현실적이지 않다고 하는 생각들은 한 발짝만 앞으로 내디디면 현실이 된다. 그리고 내가 너무 꿈만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세상엔 이미 그 삶을 현실로써 살고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시작부터 큰 걸음을 딛기란 어렵다. 하지만 이러한 류의 선택과 행동은 마치 글쓰기와 유사하다. 점 하나 찍혀 있지 않은 빈 공간을 보면 어떤 글들로 백지를 채울 지 막막하다. 하지만 일단 첫 문장을 쓰고 첫 문단을 완성하면, 그 뒤는 술술 풀려서 오히려 정해진 글자 수 분량을 넘기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즉, 작은 행동 하나가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큰 결과로 만들어져 있다.

  그렇게 요즘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의 즐거움을 느끼며 살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하루하루의 의미는 달라졌다. 이전까지 막연한 부정적 생각으로 불안했다면, 지금은 막연한 긍정적 생각이 비집고 나온다. 이제 첫 학기를 다니고 있는 학생으로서 앞으로 있을 대학원 생활도 기대된다. 대학원 신입생 OT에서 다양한 연령의 학우들을 볼 수 있었다.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이 선택을 못하고 있었던 것일까. 세상으로 한 걸음씩 나올 때 마다 세상이 갖고 있는 다양성에 매번 새롭게 놀라고, 새롭게 자극받는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과 편협한 시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아직 경험하고 싶은 세계가 많고, 새롭게 느끼고 싶은 감정도 많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세상에 부딪혔으면 좋겠다. 생각을 정하는 것, 인생은 무엇이다, 식의 성급하고 획일화된 답을 좋아하진 않는다. 생각은 변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지나간 모든 생각들을 부정하진 않을 것이다.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들이었을 테고, 그때의 내가 있기에 현재의 내가 이 생각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먼 훗날 지금 내가 작성한 이 글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나의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고 아무도 그 미래를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과거엔 불안과 걱정이 앞섰다면, 지금은 기대와 약간의 설렘도 같이 온다.

  작년 이맘때, 영화제 스태프 면접을 보러 전주행 무궁화호에 오른 기억이 난다. 어느 덧 1년이 지난 그날을 회상하며, 짧은 기간이었음에도 나에게 준 길고 깊은 영향에 감사함을 느낀다. 올해는 스태프가 아니라 관객으로 전주국제영화제에 가게 될 것이다. 나의 경우엔 영화제였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방황 중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이같이 부딪침과 깨어남의 순간이 찾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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