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관계를 등록하는 제도다. 한자로 보면 호주(戶主)는 한 가족의 주인이다. 호주는 남성만이 승계할 수 있다.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로 호주는 승계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모두 돌아가시고, 1살 아들이 있다면, 1살 아들이 호주가 된다. 할머니, 어머니, 누나 등은 모두 1살 호주 아래에 등록된다. 호주제는 이렇게 남성 가부장 문화의 실체이자 상징인 제도다.

  2005년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호주제 폐지안이 통과되었다. 19년이 흘렀다. 호주제 없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대학생이 될 만큼 시간이 흘렀다. 2003년 호주제 폐지 운동이 한창이던 때, “호주제 폐지되면 국민 모두 짐승 된다.”라는 구호가 있었다. 도포 입고 갓 쓰고 나오신 할아버지들이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며 외친 구호다. 19년이 흘렀고, 우리 국민 모두 아직 짐승이 되지 않았다. 참 다행이다. 호주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이제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은 평등할 테다.

  2023년 김행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자의 재산 신고에서 후보자 딸의 재산은 ‘등록 제외’로 공개되지 않았다. 공직자윤리법 제4조 제1항에 따를 때, 공직자(등록의무자)는 본인과 배우자(사실혼 관계 포함), 본인의 직계존속(부모·조부모 등)·직계비속(자녀·손자녀 등)의 재산을 등록해야 한다. 그러나 혼인한 직계비속 여성(딸, 손녀 등)과 외증조부모, 외조부모, 외손자녀 및 외증손자녀 재산은 등록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재산 신고가 필요한 지위에 오를 가능성도 희박하니, 몰라도 그만인 규정일 테다. 재산을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되니, 여성에게 딸에게 주는 특혜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성을 ‘출가외인’으로 여기는 호주제의 망령이 아직 법률에 남아있단 사실이 못내 씁쓸하다.

  친구가 있다. 여동생이 있는 맏딸로, 친구와 여동생 모두 결혼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친구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문제는 명절이다. 명절엔 친구도 여동생도 모두 시댁으로 간다. 친구 집엔 어머니 혼자 남아, 음식을 하고 차례를 지낸다. 명절을 어떻게 보내는지는 집안마다 다르니, 문제는 아니다. 다만 남성 가계(家系)를 중심으로 하는 제사, 이를 중심에 둔 명절 문화가 여전히 위력적이라는 건, 좀 쓸쓸하다.

  가부장제의 상징이었던 호주제가 폐지되고 19년. 그러나 법률에도 생활 속에도 아직 남성 가부장제의 잔재는 여전하다. 도포는 벗었는데, 갓이 머리에 남아있다. 평등한 젠더 관계는 여전히 희미하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성평등한 문화에서 자라난 20대 친구들이, 젠더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혹 이 극심한 젠더갈등의 원인이 아직 머리에 있는 ‘갓’ 때문은 아닐까?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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