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지연 기자
▲임지연 기자

꿈속에서의 나는 늘 어설프다. 걷고 뛰는 것과 같은 간단한 동작도 꿈을 꾸는 중에는 생경하게만 느껴진다. 단단한 땅에 발을 내딛으려던 찰나 발밑이 무너지고 나는 아주 우스운 모양새로 추락하고야 만다. 알고 있던 것들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흐려지고 바람 앞 등불처럼 맥없이 흔들리는 내 모습만이 선명해지는 꿈이어야만 했던 경험. 

수습기자로서 보낸 지난 한 학기가 그랬다. 깨려야 깰 수 없는 긴 꿈 같았다. 

동대신문에서의 수습 생활은 온통 망설여지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내가 상상한 학보사 기자는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나는 영민하고 능숙하게 녹아든 모습의 스스로를 그렸었다. 글쓰기를 특기로 여기며 필력에 대해 한 톨의 자부심을 지켜왔던 예전의 내 모습을 보려 했다. 그러나 실상 한 음절 이어 붙이기도 어려워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 빈 노트북 화면만 들여다보는 내가 있었고, 엉성한 문단마다 빼곡하게 들어찬 피드백에 무력하게 한숨을 뱉는 내가 있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첫 조판 이후 지면에 인쇄된 내 기사를 수차례 읽은 뒤부터는 조금씩 달라졌다. 여전히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탕을 걸었지만, 좀처럼 나아가지 못했던 발에 미약한 자신감이 생기고 기사를 쓰는 손끝엔 리듬감이 붙었다. 다루고 싶은 아이템을 기획하고, 바삐 오가는 피드백에 더해 스스로 더 나은 표현을 찾아 문장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안갯속처럼 뿌옇게만 보이던 시야가 맑게 갠 지금, 나는 마침내 꿈에서 깨어날 준비를 마쳤다. 내내 물속에서 허우적대던 나를 건져내면, 비로소 상상했던 기자의 모습에 부쩍 가까워진 내가 보인다. 취재에 나서고, 인터뷰이를 만나며, 모든 활자를 꼼꼼하게 씹어먹으려 몰두하는 새벽녘의 나를 본다. 

이제 정말 더는 겁내지 않는다. 이곳에서 보낸 시간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입안에서 내가 쓴 글을 몇 번이고 굴리는 일이 수고스럽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길 바이라인의 발자취가 기대되기 때문이다. 

수습기자의 간절한 꿈은 정기자였나. 그렇다면 정기자가 된 나는 또 어떤 꿈을 꿀까. 내 이름 석 자가 새겨진 신문의 기록을 손에 쥐고 기사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 가진 동료 기자들과 함께 나는 나아가겠다. 막 알을 깨고 나온 내 발걸음이 서툴더라도 올곧기를, 느리더라도 꾸준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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