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강채현 편집위원
△ 사진= 강채현 편집위원

  동생과 후쿠오카에 다녀왔다. 동생도 나도 한국 바깥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 처음이었다. 당연하고 익숙한 지금의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일본으로의 여행을 결정하게 만든 것일지도 모르겠다. 낯선 도시에서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주문을 하고 음식을 먹고 산책을 하면서 나는 내 몸에 달라붙어 있는 오래된 질서, 내가 내 몸에 기입한 그 질서로부터 얼마간은 멀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오랜 시간 나를 운용해 온 질서와 규칙을 따르지 않고. 걷고 먹고 마시고 눕고 잠을 자는 이 모든 일상적인 행위들을 익숙한 공간 바깥에서 제멋대로 수행하고 싶었다. 먼 곳. 내가 모르는 곳. 가본 적 없는 곳에서. 혼란을 기대했다. 매일이 순조롭지 않기를 바랐다. 우연을 기대했다는 말이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와 『우연과 상상』을 보고 일본의 도로와 교량 시설, 차들을 직접 보고 싶다고 친구에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영화에 등장하는 그런 장면들이 좋았다. 미야케 쇼의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떤 복잡한 관계나 서사, 의미 밖에서 단지 지나가는 차와 건너감을 위해 구축되어있는 구조물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좋았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다. 이야기에서 잠시 빠져 나와 있는 이미지 같으면서도 동시에 이야기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없는 장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후쿠오카에 도착해서 내가 가장 관심 있게 살핀 것은 차들의 모양과 표지판, 주차장, 육교와 같은 것이었다. 첫날, 육교 위에 서서 각 차선별로 나란히 선 차들을 관찰했다. 신호가 바뀜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는 차들. 그 움직임이 기억에 남는다. 나카스 강가에서는 캠코더를 들고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해가는 차를 촬영했다. 눈에 들어온 이 장면들을 통해 어떤 의미를 찾으려 들지는 않았다. 걷다가 주차장이 보이면 꼭 멈춰섰다. “일본의 차들은 다 이렇게 앞이 평평한 건가?”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런 차들이 많았다. 앞부분이 튀어나와 있지 않고 쑥 들어가 있는 모양들이 여럿 눈에 보였는데 찾아보니 박스카라고 부르는 듯했다.

  우리는 주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돌아다녔다. 버스를 타기 전에는 인터넷 창을 열어 일본에서 버스 타는 법을 검색했다. 한국과 달리 뒷문으로 탑승하며 탑승할 때는 옆에 놓인 오렌지 색 박스에서 정리권 표를 뽑아야 한다. 지하철을 탈 때도 종이로 된 표를 뽑아 탑승했다. 손안에서 종이 표를 만지면서 동생에게 “아날로그다.” 하고 말했다. 나는 아날로그가 좋다. 클릭 한 번으로 손쉽게 버스 타는 법을 알려주는 디지털의 편안함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역시 내게는 물질성이 중요하다. 종이를 만지작거리며 버스 내부를 구경했다. 운전석에 마이크가 달려 있었다. 기사님께서 정류장의 이름을 직접 소리 내어 부르고 계셨다. 그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버스의 입구를 바라봤다. 버스 입구에 계단이 없었다. 저상버스다. 일본에서 non step bus(계단을 없애거나 낮게 만들어 탑승을 돕는 버스)라고 불리는 저상버스는 1997년 도입되어 현재 실용화된 상태다. 일본은 2000년 ‘교통배리어프리법’을 도입해 교통 약자의 이동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왔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으로부터 얼마 전, 장애인 이동권 확대를 위한 내년도 저상버스 도입 예산을 정부가 11%가량 삭감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저상버스 탑승을 시도하는 장애인의 탑승을 거부하는 버스 기사와 경찰의 사진도 보았다. 물리적·제도적 장벽을 포함해 마음의 장벽도 공고한 한국에서는 이동을 원하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다. 일본에 머무는 나흘 내내 이동수단과 더불어 이동‘중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바라봤던 것 같다.

  우연히 방문했던 가게들이 기억에 남는다. 비를 피해 들어갔던 카페와 가려고 했던 식당이 문을 닫아 아쉬운 대로 들어갔던 스파게티집. 첫째 날에는우연히 초록색 간판의 ‘커피숍 투모로우’라는 카페를 발견하고 언제 문을 열까 계속해서 기다렸다. 매일 ‘내일’을 기다린 셈이다. 셋째 날까지 닫혀 있었던 그 카페는 집으로 떠나는 마지막 날 문을 열었다.

  카페 내부에서 사람들이 삶은 달걀과 토스트를 먹고 있었다. 그곳에서 먹었던 차가운 커피를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여러 번 생각했다. 우연히 운세를 뽑기도 했다. 후쿠오카 박물관을 방문했던 날, 무슨 줄인지도 모르고 합류했던 줄의 끝에 오미쿠지(길흉을 점치기 위해 뽑는 제비)가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운세의 내용을 확인했다.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리정돈을 하세요. 그래, 정리정돈을 해야지. 생활로 돌아갈 시간이다. 나와 가까운 곳으로 돌아간다.

△ 사진= 강채현 편집위원
△ 사진= 강채현 편집위원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