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지만 필자의 애청곡을 소개해볼까한다. 이소라의 ‘Track 9’이다. 다음은 가사의 일부다.

나는 알지도 못한 채 이렇게 태어났고, 태어난지도 모르게 그렇게 잊혀지겠지.

존재하는게 허무해 울어도 지나면 그뿐.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세상은 어떻게든 나를 강하게 하고, 평범한 불행 속에 살게 해.

Track 9의 가사를 들어보면 ‘인생무상’이 묻어난다. 어릴 적 우리는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커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무언가 헛헛하고 서운하다. 이 땅에 던져지듯태어나, 세상의 흐름에 따라 흘러가다 바스라지는 것이 평범한 우리네 삶인가보다 하고 체념하고 현실에 맞춰 순응해나간다. 그러는 한편으로는 어떤 삶이 좋은 삶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한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주도적으로 살기를 원한다. 그리고 주도적이고 리더십 있는 사람이 되라고 어려서부터 배워왔다. 아마도 리더십을 발휘하여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 좋은 삶일 것이다. 내 삶을 스스로 이끌어나갈 힘이 있어야 나의 행복과 가정의 행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주도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많은 대학(원)생들, 사회인들이 이러한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소위 주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대부분 경제적인 것으로 연결된다. 경제적 자유를 확보해야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소위 ‘잘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 공유되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보다 보면 ‘20대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것’, ‘20대에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등이 소개된 릴스가 종종 보인다. 경험과 학습을 권장한다는 점에서 보면 이러한 릴스는 일견 유익해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릴스에는 ‘성공하기 위해’, ‘억대 자산가가 되기 위해’라는 말이꼭 단서조항처럼 붙는다. 경험하고 학습을 하는 목적이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만은 아닌데도 말이다.

좋은 삶의 척도가 경제적 부에 국한되다보니 우리는 자연스럽게 더 좋은 직장, 더 많은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을 선망하고 그러한 모습이 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누군가는 좋은 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홍동건 상경계 4.2/토익900이상/vc인턴00회/HSK5급’과 같이 수 많은 스펙을 갖추기도 하고, 회사원으로는 큰 돈을 벌 수 없으니 사업에 도전하기도 한다. 지금의 청년세대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진취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켠은 여전히 공허하다. 청년들이 열심히 사는 만큼 청년들의 자살률도 상당히 높다. 대한민국은 여전히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 국가이며, 20대의 사망원인 56.8%, 30대의 사망원인 40.6%(보건복지부 202 3 자살예방백서)가 자살이다. 자살충동의 이유로는 20대와 30대 모두 우울감이 30% 수준(통계청, 2022)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Track 9의 노랫말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강해졌지만 ‘평범한’ 불행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이 생긴다.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달리는 것이 나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인가? 나는 좋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함께 고민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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