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섬에서 물에 뜨는 법을 배웠다. “온몸에 힘을 빼고 물에 몸을 맡기면 돼.” 뜨는 법을 가르쳐 준 친구는 말했다. 1) 온몸에힘을 빼고. 2) 물에 몸을 맡기기. 첫 단계서부터 어려웠다. 몸에서 힘이 빠지질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물속에서 수직으로 꼿꼿이 선 몸을 자꾸만 눕히려 시도하며 거듭 중얼거렸다. 힘을 빼자. 힘을 빼자…

  그러나 생각을 하면 할수록 몸에 힘이 실렸다. 힘을 빼야 한다는 생각을 비우고 눕듯이 몸을 가볍게 띄워야 했는데 생각을 비우는 일이 문제였다. 물에 뜨고 싶었던 그 순간뿐 아니더라도 내게 생각을 비우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매 순간 어떤 생각들이 머릿속을 빙빙 돌고 있고 그것을 기억하느냐 마느냐의 차이일 뿐 생각은 언제나 머릿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호주머니에 든 작은 돌들처럼. 생각은 자기들끼리 부딪치며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낸다. 시끄럽기 그지없다.

  나는 이 모든 생각을 비우고 물과 함께 이동하고 싶었다. 물이 움직이는 대로. 내가 나를 이끌고 가는 게 아니라 물이 나를 이끌고 갔으면 했다. 저기로 가야지, 하는 다짐 없이. 목적지 없이. 흘러가는 과정 중에 오래 머물고 싶었다.

  감각과 내가 인식할 수 있는 사실에만 집중한다. 지금 나는 물속에 있다. 햇빛이 물속으로 들어온다.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몸이 위로 살짝 올랐다가 아래로 다시 내려간다. 허리에 작은 테두리가 그려져 있고 나는 시야를 좁혀 물이 만들어 낸 그 테두리가 조금씩 모양을 달리해가는 걸 지켜본다. 발끝이 조금씩 땅에 닿았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다시 시야를 넓혀 수평선을 바라본다. 산과 구름. 눈을 감고 물의 움직임을 느끼는 친구의 옆얼굴. 다시,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친구의 옆얼굴. 수직에서 수평이 된 몸들. 오직 이것에만 집중한다. 그러면 나를 감싸고 있는 이 모든 사실이 어느 순간 호주머니의 돌 하나를 바깥으로 튕겨낸다. 물수제비를 하듯 돌이 통통 수면을 튕겨가며 멀어져 간다. 이제 눈앞은 온통 하늘이다. 물에 살짝 걸쳐진 몸이 흔들리며 어딘가로 향해간다. 물이 내 몸의 동선을 그린다.

  여름이 올 때마다 다짐했다. 이번 여름 나는 목적지 없이 탐험하듯 무작정 걸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목적지가 있었고 해야 할 것과 하고 싶은 것, 해내고 싶은 것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어느덧 대학원 생활도 3학기에 접어들었고 해야 할 것들이 잔뜩 쌓여 있는 지금이다.

  여름이 끝나가고 학교에서의 생활이 다시 시작된 지금 섬에서의 순간을 떠올려 본다. 내가 나의 몸을 뜨게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두르고 있는 사실에 집중하자 몸은 어느 순간 저절로 떠올랐고 일상의 어떤 순간들은 정말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지금 나와 가장 가까이 닿아 있는 것들로부터 출발하기. 보이는 것을 보기. 보이는 것 이상으로. 느껴지는 것을 느끼기. 느껴지는 것 이상으로. 내가 나를 끌고 가야 하는 삶 속에서 이따금 어딘가에 닿게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물 위에 몸을 눕힌다. 나를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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