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Pixa bay
△사진= Pixa bay

 

2023년 여름,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사회현상을 목도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무고한 시민을 향해 흉기를 휘두르는 충격적인 사건이 잇달아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익명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칼부림과 살인을 예고하는 글들이 게시되고 있다. 그사이 경찰은 ‘흉기난동범죄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했고, 민간에서는 시민의 자발적 제보를 통해 칼부림 테러 예고 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테러리스, https://terrorless.01ab.net/).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무차별 공격 행동은 우리 사회를 불안으로 몰아넣고 있다. 여러 학자들은 이러한 불안 상황에 대하여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을 쏟아내고 있다. 혹자는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불안정성에 따른 열등감과 상대적 박탈감이 표출된 범죄로 보았고, 정신질환자에 의한 비정상적 공격행위로 보기도 했다. 또, 혹자는 미디어의 무책임한 범죄 보도가 소위 트리거(trigger)가 되었다고도 해석하였다. 하나하나 일리 있는 설명이다.

반면, 범죄 예고 행위에 대해 온라인 환경에 심취한 사람들의 일탈행위로 보는 경향도 있다. 범죄 예고 행위를 자극과 재미를 추구하는 온라인의 밈(meme) 현상이자 하나의 유행으로 보는 것이다. 자신이 주로 활동하며 친근감을 느끼는 집단 내에서 소속감을 얻고 심리적 안정을 구하는 수준을 넘어 이들로부터 영웅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드러난 것이다. 또 본인의 감정표출로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존감과 자기효능감을 채우고자 하는 치기 어린 행위로 볼 여지도 있다. 실제 살인 예고 게시글의 상당수가 10대 청소년의 소행으로 확인된 사례가 적지 않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공격 예고를 단순한 장난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예고 범죄’와 ‘범죄 예고’는 엄연히 분리하여 이해하되 연결 선상에서 양자의 관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범죄의 실행과 단순한 예고는 형법상 기수와 미수 혹은 예비와 구분된다고 하나, 범죄학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모든 것들이 실제 범죄 행위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으로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또, 범죄 예고 글로 인해 발생하는 사법기관의 업무 마비, 불필요한 법집행력 낭비는 물론 일상의 평온이 깨지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단순 예고에 그친 것일지라도 그것이 실제 위협과 혼재할 경우 가중되는 공포와 혼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테러방지법에 따른 강력한 처벌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공격 예고에도 가능하도록 법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한다. 단지 미성년자의 철없는 행동일지라도 불안과 공포를 야기한 것은 국가와 사회를 향한 테러 행위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최근의 범죄 및 범죄 예고 행위 특성이 소위 ‘외로운 늑대형 테러리즘(Lone Wolf Terrorism)’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범죄자가 타인을 향한 분노 표출로서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다는 점이 해당 테러리즘과 매우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온라인 등에 게시된 무차별 범죄의 예고 행위는 실제 테러 범죄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전조로서의 성격을 갖게 되며, 막대한 사회적 파급효과가 발생한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처벌논의는 차치하더라도 이 현상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하에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테러 범죄의 관점에서 해외의 연구사례를 간략히 살펴보고, 국내의 시사점을 확인해보겠다. 

먼저, 다수의 살인 및 칼부림 예고 글이 게시되는 온라인 사이트는 특정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의견을 공유하는 익명의 사이트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활동하는 커뮤니티 내지 온라인 플랫폼은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X(구 트위터) 등 일반적 주류 소셜 미디어 플랫폼과 차이가 있다. 다시 말해 주류 SNS의 경우 일련의 자체 프라이버시 정책에 따라 불법・유해 정보를 자율규제하고 있는 반면, 범죄 예고 글이 게시되는 플랫폼은 주로 규제가 취약하고 익명으로 운영되며 잘 알려지지 않은 플랫폼이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중 다수의 범죄 예고 글이 게시된 디시인사이드(혹은 디씨)는 추적 회피 목적으로 VPN 등을 이용한 우회 IP에 대한 차단 정책을 최근 도입했으나, 여전히 강한 익명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다음으로, 범죄 예고 목적에 대해 Meloy와 O’Toole(2011)은 범죄자의 입장에서 크게 4개의 목적을 제시한 바 있다. 먼저, 일부 범죄자는 범행에 앞서 범행 대상의 공포심을 극대화하길 원한다. 임박한 공격을 알림으로써 위협을 느끼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둘째, 자신에 대한 주변인의 관심과 이목을 끌고자 한다. 특히, 특정 커뮤니티 내에서 관심과 주목을 받는 것 자체가 범죄 예고의 주목적이 되기도 한다. 셋째, 범죄 계획과 관련한 감정통제의 실패도 한 원인이다. 범행계획을 발설하는 것 자체가 범행의 실패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이지만, 이 비밀을 말하지 않고는 너무나 답답한 것이다. 끝으로, 범행 이후나 본인 사망 시 자신의 명성을 위한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 목적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범죄 예고는 특정 범죄행위의 결심과 실행 과정에서 사전에 드러나는 몇몇 전조 현상 가운데 하나로 볼 수 있다. 즉, 범죄 예고뿐 아니라 실제 범행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이 있는데, Meloy와 Genzman(2016)은 외로운 늑대형 테러리스트의 무차별 공격의 전조 행위 8가지와 행동 특성 10가지를 정리하여 TRAP-18(Terrorist Radicalization Assessment Protocol) 지표를 발표했다. 이 프로토콜에서 공격의 전조 행위로는 무기 구매와 범죄 실행에 대한 조사와 계획(사전계획), 자극적이고 급진적인 신념에 관한 심취와 몰두(집착), 군경 혹은 테러범이나 암살범 등에 대한 동경(동일시), 개인의 폭력 수행 역량에 대한 테스트(선행 공격), 개인적 신념과 관련된 온라인 검색 집중 또는 범행 장소 사전 방문을 통한 범행 의지 고취(에너지 폭발), 인터넷 등에 특정 대상에 대한 위해 예고 글 게시(발설), 경찰이나 테러 대상을 향한 직접적 위협(직접 위협), 말이나 행동을 통한 선언(최후통첩) 등이 있다. 이상의 전조증상은 순차적으로 나타나게 되며, 종국에는 범죄(테러) 실행으로 나아가게 된다.

범죄의 사전 예고 행위와 관련하여 미국 FBI가 2000년과 2013년 사이 무차별 공격을 감행한 범죄자의 소셜 미디어 활동을 분석한 결과, 77%가 공격 계획수립에 최소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보냈고, 56%는 폭력 내지 공격 의도를 사전에 발설(게시)했으며, 성인(51%)보다는 17세 이하 청소년(88%)의 예고 비율이 더 높았다(Silver et al., 2018). 한편, 실제 공격행위에 나선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범죄 예고 게시글을 분석한 결과, 감정적으로 격앙된 어휘(욕설 등)를 사용하거나 직접적인 지시대명사(당신, 너희, 나)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실제 공격행위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Fast Company October 27, 2019).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과 일본의 경우, 외로운 늑대형 테러나 은둔형 외톨이(引き籠もり, Hikikomori)에 의한 반사회적 범죄 경험에 따라 관련 범죄에 대한 데이터 구축과 분석이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범죄가 연달아 발생하고, 유사한 살인 예고 글이 온라인에 게시되면서 이제야 사회적 경각심을 갖기 시작한 단계다. 실증분석을 해볼 수 있는 충분한 자료가 없는 가운데 분석을 시도하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다만, 민간에서 구축한 테러리스 사이트에 게재된 범죄 예고 기사에 대한 분석을 통해 몇 가지 의미 있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만, 해당 결과는 온라인상의 시민제보로 확보된 데이터를 분석한 까닭에 많은 정보를 담고 있지 않다. 특히, 선행연구를 통해 언급된 범죄 예고를 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특징이나 동기, 그리고 범죄 예고 전후의 행동 등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이상의 분석을 토대로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은 범죄를 예고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직업이 없거나, 방학을 맞이한 학생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또, 10~20대의 남성이 대도시의 다중이용시설(대중교통/시설/학교 등)에서 주로 사람이 붐비는 야간에 범죄 계획을 예고하고 있다. 또, 분석과정에서 확인된 특징으로 특정 수단이나 방법이 연이어 게시되는 패턴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모방범죄로서의 범죄 예고가 이루어지고 있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범죄 예고 행위에 대한 범인 검거 소식에도 범죄 예고가 지속되는 것은 추적을 회피하는 방법을 학습하여 점차 고도화된 ‘술래잡기’ 형태로 사법당국의 수사망을 빠져나가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온라인의 익명성에 기대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이를 하나의 게임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실제 자생적 테러 행위나 무차별 공격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과 함께 혼재될 경우 경찰력의 분산과 대응 실패 시 사회 혼란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온라인 플랫폼의 자정 노력이 요구된다. 온라인 공간은 익명성과 심리적 거리감으로 인해 행동의 제약이 현실보다 약할 수밖에 없다. 이용자의 익명성을 보장하면서도 불법・유해 정보의 유통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운영자의 의무로 규정해야 한다. 더불어, 법집행기관의 수사역량 제고를 통해 신속한 검거와 해당 사실 공지로 범죄억제의 확실성을 확보해야 한다. 범죄억제이론의 관점에서 이러한 전략은, 공격 대상인 타인은 물론 행위자인 자신에게 향할 위험성과 해악성에 대한 경고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범죄계획을 단념시키고 보다 민감한 상태를 만들어 줌으로써 최소한의 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다.

한편, 관련 연구를 위한 정보수집과 공유가 요구된다. 최소한 기관 자체 분석 보고서라도 공표가 됨으로써 관련 학계의 관심을 제고하고 함께 연구할 수 있는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특히, 범죄 예고 글에 대한 분석을 통해 보다 실제 범행으로 나아가는 사례와 단지 예고로 그치는 사례의 특징을 비교하여 위험평가에 따른 대처로 이어져야 한다. 

지난 몇 년간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은 코로나 버블 경제와 맞물려 우리 사회 청년층에게 상대적 박탈감, 사회 전반에 대한 불평등, 불안정한 심리를 가져왔다. 이 불편한 심리상태가 이제 임계치에 도달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것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향한 무차별적 살인 행위로 분출되고, 온라인을 통해서는 비뚤어진 영웅심리가 발현된 범죄 예고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사회불안은 이중 위험에 빠졌다. 사회문제 진단과 정의, 그리고 대책 수립을 위해서는 현재 상황의 냉정한 진단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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