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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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나라 풍경을 보면 전 연령대에서 식도락을 추구하는 것 같다. TV나 SNS의 맛집탐방프로그램과 먹방의 영향일까. 심지어 최근에는 이런 경향이 기호식품까지 퍼져 고가의 싱글몰트 위스키를 탐닉하는 젊은이들이 많아 구매자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고 한다.

  ‘내 돈 써서 내가 즐긴다는데 뭐가 문제야?’ 물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어쩌다 태어난 인생 길어야 100년 사는 동안 사회가 정한 틀을 벗어나지 않는 한 마음대로 살 권리는 있으니까. 그러나 티클 모아 태산이라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지구촌의 많은 사람이 마음대로 먹고 마시며 산 결과 오늘날 지구는 위기를 겪고 있다.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어마어마한 숲이 농경지로 바뀌었고 작물 생산과 식품 가공 등에 들어가는 에너지와 나오는 온실가스가 환경파괴와 기후변화를 촉발했다. 그 결과 최근 극단적인 가뭄이나 홍수, 폭염으로 흉년이 잦아지고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정치 불안도 더해져 식량 위기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실제 녹색혁명으로 지구촌에서 굶주리는 사람의 비율이 줄어들다 2015년을 기점으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인류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배양육 등장한 지 10년

  작물개량과 농업기술이 발전하고 있다고 해도 극단적인 기후변화 속에서 수확량을 늘리기는커녕 현상 유지도 버겁다. 늘어나는 수요에 맞추려면 농지를 늘여야 하는데 그 결과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결국 수요를 줄이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고 에너지 낭비가 심한 사료작물이 가장 효과적인 대상이다. 예를 들어 콩(대두)을 사람이 직접 먹는 것과 비교해 이를 먹은 소의 고기를 사람이 먹을 때 얻는 칼로리는 10분의 1에 불과하다. 즉 소의 에너지 변환 효율은 10% 수준이다.

  지난 2020년 학술지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하루 육류 섭취량을 현재 122g의 3분의 1 수준인 43g으로 줄인 식단을 지구촌 사람들이 실천하면 음식 관련 온실가스 배출량이 절반 가까이 줄어든다. 이 경우 사료작물의 일부는 식량작물로 바뀌고 숲으로 돌아가는 농지도 꽤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지구촌의 육류 소비량이 수십 년째 꾸준히 늘고 있다. 인구 14억의 중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소득이 올라가며 육류 소비량도 비례해 늘어난 결과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난 50년 사이(1970~2020년) 1인당 육류 소비량이 13배나 늘었다. UN은 2031년 육류 소비량이 지금보다 15%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육류 소비를 줄이겠다고 1인당 쿼터제를 할 수도 없고 탄소세를 붙이자니 표가 떨어지고(2011년 덴마크에서 ‘포화지방세’를 매겨 소고기값이 15% 올라 소비량이 줄었지만 반발이 심해 1년 만에 폐지됐다) 결국은 대체육이 대안이다. 실제 지난 10여 년 동안 콩과 밀을 주원료로 한 식물성 대체육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했다. 수년 전 한 국제 행사장에서 선보인, 식물 대체육 패드를 쓴 ‘임파서블 버거’가 큰 화제가 되기도 했고 국내에서도 비슷한 햄버거가 나왔다. 지난해 식물 대체육 시장은 전년보다 8%나 늘어 61억 달러(약 8조 원) 규모이지만 수조 달러에 이르는 육류 시장에서는 병아리 눈물이다. 식물성 대체육은 각종 첨가물을 씀에도 맛과 향을 재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버섯이나 곤충으로 대체육을 만드는 시도도 있지만 아직 유의미한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10년 전인 2013년 영국 런던에서 놀라운 행사가 열렸다. 네덜란드 아인트호벤공대 마크 포스트 교수가 제공한 배양육으로 만든 패티를 넣은 햄버거를 시식하는 자리였다. 배양육은 가축 세포를 배양해 얻은 고기로 적어도 맛과 향은 도축한 가축에서 얻은 진짜 고기와 꽤 비슷하다. 다만 비용이 어마어마해 햄버거 하나에 무려 32만5000달러(약 4억 원)에 이르렀다.

  지난 10년 사이 우리나라를 포함해 여러 나라에서 배양육을 개발하는 회사들이 생겨났고 그 결과 생산 비용이 크게 떨어졌다. 2020년 싱가포르는 세계 최초로 미국 회사 잍저스트(Eat Just)가 만든 배양육 닭고기의 판매를 승인했고 이듬해 한 식당이 이것으로 만든 너겟을 메뉴에 올렸다. 지난 6월에는 미국에서도 두 업체의 배양육 닭고기가 판매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배양육이 진짜 고기를 대신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선이 많다. 무엇보다도 생산 비용 문제로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도 가축 사육 비용의 3배 아래로 내려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배양육이 상당한 세제 혜택을 받거나 진짜 고기에 엄청난 세금이 붙지 않는 한 시장경쟁이 안 된다. 일각에서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나 AI(조류독감) 같은 치명적인 감염병이 퍼져 가축 사육이 어려워질 상황에서 대안이 될 거라는 주장도 있지만 과연 그럴까 싶다. 결국 동물윤리나 기후변화에 민감하지만 식물성 대체육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미식가들이 고객인 셈이다.

  최근 국내 한 중소기업이 수출한 냉동김밥이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라고 한다. 이를 수입해 판매하는 업체의 마트에서는 들여놓기가 무섭게 동나 한두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성공의 배경에는 코로나19로 식품값이 오르며 4달러(약 5000원)에 꽤 괜찮은 한 끼를 때울 수 있는 가성비가 있다. 여기에 채식이라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햄이나 달걀이 들어가면 수출이 까다로워 유부와 채소로 속을 채운 김밥을 만든 것인데 이게 마땅한 먹을거리가 없는 미국 채식주의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사실 외국 채식주의자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면 사찰요리나 템플스테이가 필수 체험 코스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식물성 식재료만으로 또는 여기에 약간의 동물성 식재료를 더해 뛰어난 맛을 낼 수 있는 다양한 음식이 있다. 한글이 수백 년 뒤 올 디지털 시대에 최적화한 문자이듯이 우리 전통 음식은 식량 위기와 기후변화 시대에 대처할 수 있는 최적의 메뉴인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은 곡물과 채소 위주의 우리 음식을 외면하고 고기를 찾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1인당 육류 소비량은 58㎏으로 쌀 소비량(56㎏)을 처음 넘어섰다. 

  여유가 없어 못 하기는 쉬워도 능력이 있음에도 안 하기는 어렵다. 언뜻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절제, 중용 같은 말들을 강조하는 이유다. 지구촌의 굶주리는 사람들과 기후위기를 생각해 ‘살기 위해 먹는’ 끼니를 늘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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