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움미술관은 개관 이후 처음으로 도자기를 주제로 한 기획전을 마련했다.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은 조선백자 185점을 장식기법과 생산지에 따라 ▲절정, 조선백자 ▲청화백자 ▲철화·동화백자 ▲순백자의 4부로 구분해 전시한다. 이번 전시는 백자에 조선 사람들이 이상적 인간상으로 여긴 군자의 풍모가 담겨있다는 해석을 더했다. 전시품에 맞게 진열장을 새로 제작한 데다 동선이 비교적 자유로워 여러 각도에서 전시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국내 8개 기관과 개인 소장품은 물론, 도쿄국립박물관, 이데미츠미술관,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 일본민예관, 야마토문화관, 고려미술관까지 일본 6개 기관이 참여해 최고급 왕실 백자부터 질박한 일반 서민의 백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조선백자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 백자 청화 ‘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사진출처 : 문화재청)
△ 백자 청화 ‘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사진출처 : 문화재청)

백자 1부 “절정, 조선백자”는 동국대학교박물관 소장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를 비롯한 조선백자 대표작을 한자리에 모았다.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는 조선 성종 20년(1489년)에 만들어진 청화백자 항아리로 소나무와 대나무를 그렸다. 문양은 아가리 부분에 연꽃 덩굴무늬를 두르고 고려 매병을 연상시키는 급격한 곡선의 몸체에는 소나무와 대나무를 담대히 구성했다. 세필(細筆)을 사용하며 청색의 농담을 조절해 몽롱하면서도 사실적인 터치로 면을 가득 채우는 게 특징이다. 해당 작품은 지리산 화엄사에서 오래도록 전래한 유물로 조선시대 궁중 연례를 비롯한 여러 의식에서 꽃을 꽂아둔 항아리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한다. 발견 당시 아가리 안쪽에는 ‘홍치이년(弘治二年)’이라는 명문이 있었는데, 도난 사고로 아가리 부분이 훼손된 것을 복원해 현재는 ‘홍치(弘治)’ 두 자만 남아있다. 홍치는 명(明) 효종 연간(1488~1505)의 연호로서 1489년이라는 제작 연대가 귀중한 편년 자료이며 1974년에 국보로 지정됐다. 해당 작품 외에도 용문, 당초문, 화초문, 신선문 등 다양한 문양을 가진 백자부터 달항아리까지 조선백자가 총망라돼 있어 조선 백자에 대한 개괄적인 이해를 돕는다.

△ 백자 청화 인물문 병 (사진출처: 장미희 편집장.)
△ 백자 청화 인물문 병 (사진출처: 장미희 편집장.)

2부 “청화백자”는 왕실과 사가(私家)에서 사용한 청화백자를 모았다. 청화백자는 하얀 바탕을 청화(코발트) 안료로 장식한 백자를 말하는데, 청화 안료는 페르시아에서 중국을 거쳐 수입해야 했기에 안정적 수급이 어려워 가격이 매우 비쌌다. 조선 전기에 제작된 청화백자는 원칙적으로 왕실에 한해 사용할 수 있었고 관요(官窯)의 왕실용 가마에서 엄격한 관리하에 생산됐다. 엄정한 과정을 거쳐 생산된 최상급 백자는 왕실의 위엄과 권위를 보여주는 한편, 사대부들도 청화백자를 사용했다. 연산군일기 29권 제16조에는 대신들과 ‘청화백자기 사용 및 사치 금단’에 관한 내용을 논한 내용이 적혀 있을 만큼 당시 사대부들 사이에서 청화백자의 사용은 일반적이었다. 2부에는 왕실 백자와 더불어 사대부들이 사용한 잔 받침, 필통, 화병, 술병 등 다양한 청화백자가 전시돼 있는데, 백자에 그려진 문양을 통해 군자를 향한 사대부의 수양 의지는 물론 유유자적하는 도가적 삶에 대한 지향도 엿볼 수 있다. 조선말부터는 청화 안료에 다른 색의 안료를 더하고 새로운 문양을 도입하는 시도도 돋보인다. 그네를 뛰는 인물을 그려 넣은 ‘백자청화 인물문 병’과 같이 당대 민속을 가늠해볼 수 있는 사랑스러운 작품도 눈길을 잡아끈다.

△ 백자 철화 호록문 호 (사진출처: 장미희 편집장.)
△ 백자 철화 호록문 호 (사진출처: 장미희 편집장.)

3부 “철화·동화백자”에서는 16~17세기 일본, 중국과의 전란으로 값비싼 청화 안료의 수급이 어려워지자 값싼 철 안료를 사용하는 등 백자 제작기법의 변천을 볼 수 있다. 철화(鐵畫)는 산화철 안료를 사용해 흑갈색 무늬를, 동화(銅畵)는 산화동이나 탄산동 안료를 활용해 적갈색 무늬를 그려낸 것을 말한다. 17세기 지방에서는 철화백자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까지는 동화백자의 제작이 증가했다. 3부에서 눈길이 가는 것은 민가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들이다. 관에서 제작한 정형화된 백자와 달리 자유롭고 새뜻한 표현이 눈에 띄는데, 뭉뚝하고 소박한 붓 터치에서 되레 강인한 기운이 느껴진다. 균일하지 않은 탁한 미색의 배경에는 검고 붉은 색으로 산수문, 국화문 등이 수 놓여 있는데, 문양을 선과 도형으로 간소화한 덕분에 여백이 극대화된다. 호(壺) 표면에 호랑이가 그려진 것도 많은데, 맹해보이기도 하고 때론 근엄하기도 한 표정들을 비교하는 것도 재밌다. 1·2부가 화려한 백자를 몰아쳐 전시의 몰입도를 높였다면, 3·4부는 질박한백자로 편안함을 제공해 전시 피로도를 낮춘다.

△ 4부 “순백자” (사진출처: 장미희 편집장.)
△ 4부 “순백자” (사진출처: 장미희 편집장.)

4부 “순백자”에서는 절제된 격조의 미학을 담은 조선 중앙 관요에서 제작한 순백자와 지방에서 생활 용기로 제작된 회갈색의 순백자를 함께 조망할 수 있다. 간결함은 오히려 시선을 끌어내 가장 화려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시의 끝에는 낮은 단을 마련해 회갈색 순백자 대접을 흩뿌려 전시하고, 그 옆으로 별도의 감실을 마련해 순백의 백자 대호를 전시한다. 투명한 유약 아래로는 백자의 맑고 뽀얀 속살이 비추는데, 그 색은 처음엔 눈처럼 흰 것 같기도 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일시에 회백색이나 은은한 옥색이 된다.

한편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은 리움미술관 블랙박스, 그라운드갤러리에서 5월 28일까지 이어지며, 방문 전 사전 예약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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