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m(2001) (사진출처 : 양지원 편집위원.)
△ Him(2001) (사진출처 : 양지원 편집위원.)

처음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회를 알게된 것은 인스타그램 쇼츠 영상을 통해서였다. 그 게시물에는 “기괴한”, “핫한”과 같은 단어가 거듭 언급돼 있었는데 쇼츠 영상을 보니 그럴 법했다. 그 영상 속에서 세발 자전거를 탄 인형이 정숙한 전시회장을 마구 돌아다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We>는 장난기가 넘친다. 전시회라고 했을 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고요하고도 차분한 전시회장, 사각의 프레임의 작품, 그것을 골몰하게 바라보는 감상자, 작품과 작품 사이의 직선적인 동선 등을 지키지 않은 전시 방식은 소위 말해 전위적이다. 전시회장에 처음 들어가자마자 나도 모르게 이래도 돼? 라는 혼잣말을 했는데 이런 내 반응은 미술작품이 일종의 진지함과 엄숙함을 가져야한다는 편견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전시회 입구의 설명에서 언급한 것처럼 카텔란의 작품은 주로 미술사 혹은 대중적인 요소에서 어떤 일부분을 차용해 표현돼 있다. 따라서 감상 방식이 직관적이고 소위 말해 작품 자체에 접근성이 낮다. 감상에 있어 접근성이 낮다는 것은 전통적인 예술 감상 방식의 관점으로 볼 때, 긍정적인 뜻은 아닐 수도 있다. 접근성이 낮음은 텍스트 자체의 밀도가 낮다는 의미가 될 수 있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도상(圖像)의 은유나 상징이 단순하다는 의미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카텔란이 과거에 만들었던 작품들은 현재의 시간과 현재의 공간에 놓여있게 된다는 점이다. 작품을 감상하는 방식은 매체의 발달로 인해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사람들은 전시회장 벽에 걸린 작품을 단순히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낸다. 즉, 새로운 방식으로 복제하는 것이다. 감상자들은 불규칙적으로 전시 공간에 배치돼 있는 조각들의 주변을 돌아보면서 감상하고 각종 사진과 동영상을 찍는다. 이런 변화는 전시회 목적이라고 밝혔던 우리라는 개념의 확장에 걸맞은 효과를 불러온다. 그 대표적인 예는 히틀러를 풍자한 작품인 Him(2001)에서 발견할 수 있다.

작품 자체에 접근 제한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감상자들은 조각의 코앞까지 다가와 작품을 살필 수 있다. 감상자는 조각에 표현돼 있는 코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하고 작품과 자신이 함께 나오도록 셀카를 찍기도 하며 작품 주위를 360도로 돌면서 동영상 촬영을 한다. 이 모든 광경은 또다른 감상자로 하여금 감상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감상자는 더이상 감상 범위를 작품 자체에만두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외연으로까지 확대한다. 두 손 모아 무릎을 꿇고 있는 조각을 둘러싼 감상자들의 반응과 행동은 카텔란이 말한 희화화를 통한 풍자, 확장의 진정한 의미를 구현해낸다.

표현 예술에 있어 예술가들이 피할 수 없는 것은 형식에 관한 물음과 질문이다. 공고해있는 테두리 혹은 형식은 쉽사리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사안이 다만 받아들여짐의 문제라기보다 시대의 산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카텔란은 1960년 9월 21일에 태어났다. 시대와 그 산물을 모두 경험하기 충분한 시간을 보낸 작가에게 여전히 악동(惡童)이라는 호칭이 붙어있다는 것은 그가 그만큼 작품 내적, 외적 세계의 변화에 날카로운 촉을 세워가며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가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유난히 삶의 쳇바퀴에 구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 일상에 그 어떤 이상함도 끼어들지 않아 그 기억이 모조리 망각의 영역으로 가버리고 있다면,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We>를 보는 것은 일상에 기묘한 방점이 남는 순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전시회 <We>는 리움 미술관에서 오는 7월 16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사전예약제로 티켓을 예매할 수 있고 입장료는 무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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