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출산률 0.78명의 초저출산국’, ‘저출산 위기 극복’, ‘저출산 해결 대토론회 개최’

최근 언론에서 저출산과 대한민국의 위기, 청년이 겪는 어려움을 한데 엮어내려는 시도가 자주 목격된다. 보도 내용은 표면적으로 취업난, 집값, 고물가 등 청년이 겪는 사회·경제적 여러 어려움에 공감하며 정부의 대안 마련을 촉구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출산, 국가, 청년’이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세 단어를 연결하려는 시도 이면에는 출산이 오롯이 개인의 영역에서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국력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 고려되는 우리 사회의 국가주의적 시선이드러난다. 구체적인 출산의 주체로는 청년이 호명되는데, 표면적으로는 청년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표현이 사용돼 그 이면에 담긴 의도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출산은 일반적으로 집단의 존속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지며 출산을 위해 가장 활발히 복무해야 할 세대로는 ‘청년’이 상정된다. 저출산 때문에 대한민국이 곧 망할지도 모른다는 다급한 수사는 이미 집단이 개인에 우선한다는 가치를 함의하고 있다. 저출산과 국력, 청년을 연결하는 미디어의 자극적 보도와 국가의 정책은 청년에게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공포감을 조장하는 한편, 청년에게 출산이 마땅히 완수해야 할 통과의례라는 무언의 압박을 준다. 언제부턴가 빈부나 여유 등 청년 간 격차를 설명하는 지표로 사용되는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출산은 청년을 짓누르는 요인 중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개별 사례로 전체 현상을 일반화할 순 없겠으나 청년인 필자는 최근 주변에서 결혼이나 출산하지 않는 자신의 상황을 타인과 비교하며 경제력을 비관하거나 사회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고 스스로 검열하는 경우도 목격하곤 한다. 사례처럼 집단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개인의 피로감과 감정 소비를 유발하기도 하는데, 이것이일반적인 사회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다는 게 안타깝다.

국가가 개인의 출산을 정책으로 관리한다는 점도 폭력적이다. 국가의 등장이후 출산은 사적인 사안으로 간주되지 않고 항상 정책 영역에서 논쟁과 통제의 대상으로 다뤄졌다. 이는 출산이 인류의 본능인 생존·번식과 직결돼 공동체의 새로운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자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출산이 국력 증대를 위한 당위로 여겨진 덕분에 국가는 손쉽게 개인의 출산을 정책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출산은 경제 발전의 장애물이자 정책으로 조절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196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이어진 국가 차원의 가족계획사업은 국민을 어린 계몽의 대상으로 상정하며 ‘목표량 제도’를 도입해 출산을 양적으로 관리했고, ‘둘 낳기, 하나 낳기 운동’ 등 대중 캠페인을 활성화하며 정상가족의 틀을 규정하기도 했다. 오늘날 정부는 국가의 위기와 청년을 병치함으로써 청년이 출산과 경제 부양이라는 이중고를 떠안을 것을 암시하고 있다. 출산과 경제 활동 두 가지를 동시에 잘 해내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잘 기능한다고 여겨지고, 필요 이상으로 감내하고 희생하는 개인이 추앙받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한다. 출산을 국민의 의무로 상정하는 정책의 명시와 암시는 건강하지 않다.

언제부턴가 저출산은 위기가 아니라 1980년대부터 시작된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오히려 과거에 너무 많이 낳았던 게 아닐까.) 저출산이 사회적 위기로 대두되는 것은 제도와 의식이 발전하는 속도가 현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출산이 국가주의 담론의 정치적 수사로 활용되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조명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출산으로 저출산을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은 ‘정상가족’의 출산으로 ‘한민족’을 이어가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다. 저출산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것은 결국 국가를 유지할 인구수가 부족하기 때문인데, 생각의 틀을 말랑하게 바꿔보면 인구를 늘릴 수 있는 방법은 꽤 다양하다. 가장 먼저 다자녀를 출산하는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부부 지원에 초점을 두는 현행 출산 지원 제도를 탈각할 필요가 있다. 인구 구성을 질·양적으로 다양화하는 방법을 거칠게 고민해보자면, 한 자녀 출산 부부의 지원을 확대한다거나, 개인과 커플 등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식하고 관련 제도를 보충하며, 외국인 귀화를 지원하는 등의 방법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저출산을 사회문제로 인식하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 구조 자체를 변혁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는 단발성 현금 지원에서 벗어나 교육 인프라 개선, 돌봄 확대, 육아 휴직 인식 및 제도 개선, 지역 균형 발전 등 사회 전체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는 입체적 고민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개인의 행복과 국가의 정책이 조화를 이룰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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