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르노적 복수의 권력은 누구의 손에 있는가

구원은 복수를 통해 오지 않는다. 하지만 복수는 적어도 살아갈 이유를 준다. 복수의 힘은 건물 옥상 난간 끝에 선 동은(송혜교)을 두 번 멈춰 서게 했다. 한 번은 자신의 복수를 위해,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선배 여정(이도현)의 복수를 위해.

작가 김은숙은 모든 “학폭 피해자의 원점을 응원”하고자 ‘더글로리’를 썼다고 작품의 의도를 밝힌다. 학폭 피해자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이 인간 존엄성의 파괴이고 그 영광(글로리)을 되찾아 주려면 필요한 것이, 피해자들의 입을 통해 확인되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이다. ‘피해자의 원점’은 이 사과와 함께 시작될 것이다. 이 사과를 받으려는 노력이 현실에서 좌절될 때, 원점에 다가서려는 피해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마도 복수이다. 복수는 가해자를 심판대에 세우고 단죄함으로써 가해자가 참회 하길 바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복수의 끝은 언제나 양쪽의 몰락이다. 인간 존엄성을 파괴당한 쪽은 다른 쪽의 인간 존엄성을 빼앗음으로써 공멸을 선택한다. 구원은 이로써 오지 않는다.

끝내 모두가 가해자가 되고 모두가 추락하는 이 공멸의 싸움터에서 ‘더글로리’가 보여준 추락의 과정은 공평했을까? ‘더글로리’의 다섯 명의 가해자는 모두 죽음을 맞는 것으로 끝난다. 그러나 같은 죽음이 아니다. 젠더에 따라 죽음은 다른 양상을 보인다. 남자 가해자가 맞는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이다. 재준(박성훈)은 공사 건물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고 명우(김건우)는 양주병으로 머리를 맞고 목숨을 잃는다. 생물학적 죽음은 곧 ‘개체의 죽음’이다. 반면, 여성 가해자들은 사회적 지위, 명예, 영광을 잃을지언정 살아남는다. 이들에게 가해진 형벌은 생물학적 죽음이 아닌 ‘사회적 죽음’이다.

사회적 죽음은 ‘관계의 절연’이며, ‘고립’이다. 학폭 동영상이 공개되고 살인 의혹까지 받으며 기상 캐릭터인 연진(임지연)은 직업을 잃고 재력가 남편에게 이혼당하며 딸에게서도 외면받는다. 하지만 절정은 자신의 친엄마에게 버림받는 것이다. 모두에게 버림받고 외면받은 연진은 끝내 무너지고 그의 영혼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고립의 섬에서 그의 모든 날은 말 그대로 “흉흉(洶洶)”하다. 흉흉한 나날은 연진의 나날 만이 아니다. 스튜어디스 혜정(차주영)은 성대가 잘려 목소리를 잃는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는 그것만으로 사회적 고립을 초래할 수 있다. 더군다나 언어의 상실은 관계의 불능을 시사하는 데 더할 바 없이 상징적이다. 그러나 가장 스펙터클한 죽음은 사라(김히어라)의 죽음이다. 사라의 몸은 전시되고 향유된다. 졸지에 포르노(porno) 한복판으로 던져진 사라를 사로잡은 감정이 수치심이라면 수치심은 관계의 감정이다. 수치심은 타자를 전제로 하며 익명의 타자는 사물의 눈이 되기도 한다. 수치심이 여자의 감정이라 할 수는 없으나 여자에게 더 크다면 그건 여자가 남자보다 좀 더 ‘관계 중심적’이어서 그럴까. 수치심은 관계의 감정이지만 수치심의 끝은 관계의 절단이다. 수치심은 구멍 속으로 숨어 들어가듯 점으로 환원된다. 점은 면적이 되지 못한다. 사라는 “남의 아픔을 기뻐하는 사탄” 혜정의 목을 치고 스스로 관계의 절단을 초래한다.

개체 중심적인 남자와 관계 중심적인 여자, 오래된 젠더 구분이다. ‘더글로리’는 이같은 젠더 구분에 따라 가해자들에게 다른 죽음을 선고한 것일까. 관계의 절연만으로 남자를 죽일 수 없다면 개체의 죽음이 남자에게는 확실한 죽음일 것이다. 여자는? 개체를 죽이지 않고도 모든 관계를 끊어내는 것만으로 여자를 죽일 수 있다면 개체의 죽음만이 복수의 유일한 선택지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복수의 방식이 포르노인 것은 우리 사회가 여자의 몸을 착취해 쾌락을 얻는 방식을 역으로 교묘히 이용한 것으로 무사유의 성찰을 자극한다. 개체 중심적인 남자와 관계 중심적인 여자라는 고전적 공식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보다 여자의 몸을 포르노의 전시물로 전락시키는 우리 사회의 관음증을 복수에 이용한 것이 더 문제로 보이는 데 모두가 그 같은 복수를 즐기지 않기 때문이다. 수치심의 몫은 또한 여성 시청자의 몫이기도 하다. 그 타격은 화면 밖으로도 이어진다. 모든 죽음이 공평하지 않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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