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 Editorial Cartoon by Graeme MacKay, The Hamilton Spectator - Wednesday March 11, 2020
△ 사진 = Editorial Cartoon by Graeme MacKay, The Hamilton Spectator - Wednesday March 11, 2020

 

 전해지던 코로나 감염자 수 정보가 자취 를 감추고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화가 해제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인류 문명을 집 어삼킬 것 같았던 시절은 어느새 아득해진 것만 같다. 공원과 체육관, 식당과 회의실에 서 마주하는 사람들의 표정과 돌아온 일상 의 평화가 재난영화의 끝자락처럼 감사한 요즘이다.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고, 전 세계 의 료 시스템이 시험대에 오를 정도로 들썩 이던 2020년 봄, 그레임 맥케이(Graeme MacKay)라는 만화가의 한 그림이 트윗상 에서 유명세를 탔다. 인류 문명이 코로나의 큰 파도 앞에서 무기력하게 손씻기 밖에는 할 수 없는데, 정작 코로나보다 더 큰 경제 불황이라는 파도가 기다리고 있다는 그의 메시지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던 것이 다. 공감의 실체란 저 큰 파도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모두가 바짝 긴장해야 한다는 두 려움이었을 것이다.

 이후에 인터넷 상에는 맥케이의 그림에 제3의 파도가 추가된 ‘밈(meme)’이 등장 했다. “가장 큰 파도가 경제불황이라고? 그 럴리가! 우리에겐 기후변화라는 파도가 기 다리고 있어”라는 메시지였다. 그러자 콧방 귀라도 끼듯 다시 제4의 파도가 트윗을 휩 쓸었다. 바로 ‘생물다양성의 붕괴’가 최후 의 파도가 될 것이라는 경고였다. 맥케이는 트윗에서 오가는 밈 놀이를 수용하면서 본 인의 그림을 수정하는 과정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결국 여러 차례 수정을 거쳐서 최종 버전의 가장 마지막 파도는 ‘ 생물다양 성 붕괴’가 되었다.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의 위기

 기후위기의 종착지는 어디일까. 종착지 는 다소 무서운 표현이지만 ‘6차 대멸종’이 라는 종말론적인 정거장이다. IPCC는 기 후위기가 생물다양성 붕괴로 이어지는 과 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후위기로 인 해 뜨거워진 지구에서 폭염과 홍수, 가뭄, 화재가 빈번해진다. 이런 기후 재난은 과거 에는 건강한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가 아니 었으며, 회복 가능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 수록 생태계는 감당하기 어려운 강력한 강 도와 빈번해진 빈도의 충격에 노출된다. 충 분히 회복될 시간이 없이 닥치는 재난 속에 결국 생물다양성은 붕괴에 이르게 된다. 건 강에 빗대어 설명해보자면, 독감이 채 낫기 도 전에 계속 온갖 감기 등의 병에 걸리면서 건강이 점점 쇠약해지다가 결국 생명이 위 험해지는 상황이다.

 문제는 이미 지구적 생물다양성이 매우 취약한 상태라는 점이다. 기저질환을 가진 환자가 코로나 감염 시 사망률이 훨씬 높은 것처럼 생물다양성이 취약해져 있는 지구 생태계는 기후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재난 에 훨씬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2022 지구 생명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18년까 지 전 세계에서 생물종 개체군의 상대적 규 모가 평균 6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 별로 위협요인은 약간씩 다르지만 모든 종 을 가장 위협하는 것은 바로 서식지의 훼손 과 파괴다. 이렇듯 취약해져 있는 생물다양 성에 기후변화 요인이 본격화되면 그야말 로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은 위기적 측면 에서도 연결되어있지만, 서로의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한 해법으로도 서로 연결되어있 다. IPCC 6차 종합보고서는 기후변화 완화 옵션 중에서 잠재적 기여가 높은 수단으로 서 태양광, 자연생태계 보전, 풍력을 순서 대로 꼽고 있다. 자연 생태계는 연간 10기가 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며, 기 후재난의 위험을 완화하는 역할을 한다. 우 선순위에 두고 속도를 내야 할 과제는 명확 하다. 더 많은 재생에너지를 만들고, 더 많 은 자연을 보호하고 복원하는 일이다.

갈 길이 먼 재생에너지, 깊은 녹녹갈등의 골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를 넘어서 기 위해서는 시급히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자연을 보전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에는 유례없는 녹녹갈등으로 재생에너지 증가가 더디고, 자연보전은커녕 국립공원 에 케이블카를 허가하는 등 최후의 보루마 저도 무너지는 실정이다. 탄소중립 실적이 곧 기업 투지기준이 되는 시기에 재생에너 지 비중은 사실상 제자리걸음 수준이 되며, 해외 투자기관의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갈 길이 멀고 다급한 시기에 특히 녹녹 갈등은 안될 말이다. 더 적극적으로 해법을 찾아야만 한다. 지난 수년간 일부 보수 언론 과 정치인들의 정치적 공격을 받으며, 재생 에너지는 생태계 파괴의 주범 이미지가 굳 어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국에서 수 십 년간의 지목변화를 살펴보면, 산림과 농 경지가 가장 많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채 운 것은 도로와 택지개발 즉, 아파트 건설이 다.

 하지만 특단의 조치가 없다면 앞으로 재생에너지는 생태계 파괴의 주범이 될 가 능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전 세계적으로 재생에너지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데, 재생에너지의 특성상 넓은 면적의 토지 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른바 토지 이용의 ‘경제성’이 떨어지는 생태계와 경합하게 되 는 것이다. 녹녹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건물 옥상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에너지 전환이 가능할 것 같다고 주장하는 것은 언뜻 보면 그럴듯하지만, 실상은 건축 부문 자립에 기 여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가야 할 길이 맞지만 근본적 해법은 아니라는 의 미다.

 대규모 재생에너지 시설과 보전지역의 공간적 일치성을 분석한 결과*, 전 세계적 으로 보급된 12,658개의 대규모 신재생에 너지 시설 중 2,206개(17.4%)가 현재 중요 한 보전지역 내에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이 중 122개는 엄격하게 관리되는 보호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중요한 보존 지역 내에 있는 재생 에너지 시설의 수는 2028년까지 42% 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가까운 미래에 갈등이 심화될 것을 예고하고 있다. 한국은 본격적인 재생에너지 확대가 시작 되기도 전에 정치적인 수준의 녹녹갈등 대 전을 치렀지만, 진짜 갈등은 아직 시작도 되 지 않은 것이다.

사전 예방적 토지이용계획을 통한 네이처포지티브

 흥미로운 사실은 중요 보전지역 안에 가 장 많은 재생에너지가 위치한 국가가 독일 이라는 점이다. 1990년 당시 신ㆍ재생에너지 발전비율은 한국이 1.1%, 독일이 1.5%로 비 슷했지만, 2020년 기준 한국은 2.3%, 독일 은 16.4%로 격차가 벌어졌다. 그사이 독일 이 빠른 속도로 재생에너지를 늘리면서 생 물다양성과의 경합이 발생한 것이다.

 환경선진국으로 알려진 독일 시민들이 이 문제를 풀어간 방식은 다름 아닌 사전예 방적 토지이용계획이다. 도시 계획에서 보 전해야 할 생태계를 정량적으로 평가해서 구체적인 보전 목표를 수립하고, 개별 개발 사업이 추진될 경우 단계별 저감 방안을 적 용한다. 단계별 방안은 ▲주요한 보전지역 에 대한 회피 ▲개발 영향을 최소화하는 공법의 선택 ▲잔여 영향을 상쇄할 만한 복 원 사업의 추가 ▲상쇄가 어려운 훼손량에 대해서는 보상금 지불 등의 완화 계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일식 표현으로 ‘자연침해 조정제도’다.

 재생에너지 갈등 해소뿐만 아니라 한국 에서 추가적인 자연 손실을 막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토지이용계획을 정비해야만 한 다. 지난해 12월 캐나다에서 열린 제15차 유엔 생물다양성 당사국 총회 역시 생물다 양성 보전을 위한 이행 주류화 전략으로서 강력한 공간계획과 재정적 수단을 여러 타 겟에서 강조한 바 있다.

 자연의 손실추세를 역전시켜 지구적 회복으로 나아가기 위한 네이처포지티브 (Nature Positive) 사회ㆍ경제 체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 한 국의 환경 부문은 탄소중립 기본계획의 로 드맵 후퇴, 설악산 케이블카, 제주 제2공항, 강원자치특별법 등으로 어수선하다. 기후 변화와 생물다양성 붕괴라는 큰 파도가 다 가오고 있지만, 2030년 목표를 향해 힘을 모아 함께 뛰어야 할 시기에 주저앉은 꼴이 되어버렸다. 마음은 조급해지지만, 어쩌면 차분한 마음으로 얽힌 실타래부터 풀어봐 야 할지도 모르겠다. 실타래 속에 파도를 헤쳐 나갈 길이 있을 테니까.

*Jose A. Rehbein et al. Renewable energy development threatens many globally important biodiversity area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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