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반드시 도서관처럼 생겼을 것이라는 보르헤스의 말을 생각한다. 그의 작품 「바벨의 도서관」에서 도서관을 묘사하는 데 가장 많이 사용된 말은 ‘무한’이다. 어째서일까? 그에게 도서관은 우주의 이름이자 무한한 곳, 끝없는 곳, ‘영원히’ 존속되는 곳이다. 천국이라니. 우주라니. 어쩐지 앞으로 도서관을 상상하는 일의 규모가 조금 커질 것만 같다. 

   도서관을 떠올리면 언제나 책들이 꽂혀 있는 빼곡한 책장, 쌓여 있는 책들, 책장을 넘겨 가며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먼저 그려지곤 했다. 책등을 만져가며 책을 고르는 일이 좋았고 손에 잡히는 책의 물성이 좋았다. 책을 빌리고 다시 돌려주는 행위가 좋았다. 내 것이 아닌 것을 잠시 넘겨받았다가 잘 읽었습니다, 하고 다시 건네는 행위의 정중함이. 내가 지금 빌린 이 책이 서로 다른 사람의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펼쳐지고 덮이기를 반복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모르는 사람들과 동일한 이야기로 연결된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방학이 끝나고 개강을 맞이하여 내가 가장 먼저 간 곳은 학교 도서관이었다. 1층에서부터 지하 2층까지 계단을 내려가며 새삼스레 ‘이렇게 많은 책들이라니….’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평생을 바쳐도 다 못 읽을 양의 책이 꽂혀 있는 서가 사이를 지나가며 무한성과 유한성의 감각을 동시에 느꼈다. 그런 감각은 책장과 책장에 꽂혀 있는 책들의 존재, 다시 말해 도서관이라는 장소를 구성하고 있는 사물의 존재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사물, 책장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책등의 이미지가 내게 셀 수 있음의 감각과 그렇지 않음의 감각을 동시에 가져다준 것이다. 

   책장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책등의 이미지. 나는 그런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 어떤 도서관을 떠올린다. 전자 도서관이다. 올해 2월 발표된 대학도서관 분석 결과에 의하면 ‘재학생 1인당 대출 책 수’가 21년 2.3권에서 22년 2.5권으로 상승했고 이와 같은 상승 추이에 영향을 미친 것이 ‘비대면 상황에서 이용 가능한 전자책 도입’의 확대라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도서관 이용이 어려웠던 상황이 녹아든 결과로 보인다.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도 전자책 도서관을 운영 중이다. 현재(3월 5일 기준) 문학 도서의 경우 15,977종, 경제/비즈니스의 경우 9,799종, 인문 및 사회 도서는 각 6,066종, 3,427종이 구비되어 있다. 

   도서관을 장소로 기능하게 만드는 어떤 사물―감각 할 수 있는―이 없는 곳. 그러나 도서관인 곳. 레코드판으로 음악을 듣던 시대를 떠올린다. 이 문장은 익숙하고. 종이책으로 책을 읽던 시대를 떠올린다. 이 문장은 생소하다.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 상상하기 어렵다. 종이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나로서는 앞으로도 계속 생소할 것만 같다. 그저 책장의 형태가 달라진 것 아닐까. 

   천국이 있다면 그곳은 반드시 도서관처럼 생겼을 거라던 보르헤스의 말을 다시 상기시켜본다. 그가 상상한 것은 아마도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육각형의 진열실들로 구성되어 무한한 층을 이루고 있는 끝없는 도서관이겠지만 나는 그의 상상 속에 만질 수 없는, 그러나 읽을 수 있는 책들을 감히 끼워 넣어보고 싶은 것이다. 

   다시, 도서관에 간다. 지금 내 손에는 한 권의 책이 있고 나는 그것을 넘겨본다. 손끝에서 책장이 넘어간다. 이 문장에서의 ‘책’에 물성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 내게는 여전히 낯설게 다가온다. 그러나 손끝에 닿는 것이 무엇이든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책장은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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