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의 연대를 통한 ‘갑을관계’ 뒤집기의 기회로

 
 
  △ 사진출처 : 인터넷 커뮤니티  

   최근에는 조국 법무장관 후보의 논란에 묻혀버리는 느낌이지만, 일본상품 불매운동은 지속되고 있다. 이 문제는 조국 논란보다 더 중요하며, ‘냄비언론’의 단순한 현상 중계식 반응보다 훨씬 더 깊게 짚어 봐야할 대목이 많다.

   불매운동의 배경인 한일 갈등은 물론 대법원 판결이라는 비정치적 사건에서 촉발되었으나, 곧바로 매우 정치적인 현안이 되었다. 특히 남-북, 북-미 정상회담 등에서 상징적으로 확인되듯이,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동북아의 오랜 블록대립 체제가 심각하게 동요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갈등은 증폭되었다. 그런 만큼 앞으로도 상당기간 유지될 것이며, 그 결과는 동북아의 미래에도 큰 변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흐름에서 대중이 할 수 있는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헌법적 ‘호명’에도 불구하고, 대의정치제도 속에서 우리는 선거 때를 제외하고는 늘 객체에 불과한 것처럼 취급되기 쉬운 것이다.

   그런데 시민들이 자발적인 불매운동을 시작하면서 사정은 바뀌었다. 구조적으로는 허울 좋은 권력만 있던 다중이, 개인주체로서 자각하고 스스로 행동함으로써 주권자로서의 자리를 되찾을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런 뜻에서 이번 불매운동이, 많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깨고 꽤 오랫동안 강력하게 지속되고 있음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대중의 힘이란 권력과 자본에 의해 이용당하기도 쉽다. 그런 점에서 몇 가지를 함께 생각해보고 싶다.

   첫째, 국가간 조약을 통해 과거사 문제는 매듭되었다는 아베의 주장에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일까? 물론 국제법상 무리가 많지만, 한국의 과거 정권이 그 빌미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다. 박정희·박근혜 정권은 식민지배를 통해 참혹한 피해를 입었던 분들의 배상 청구권을 거의 모두 포기하는 조약을 체결하였다. 그렇다면 아베에 대한 비판과 함께 빌미를 제공했음에 대한 자기반성 또한 철저해야 마땅하다. 개인의 권리를 마치 전적으로 위임받은 듯 행세했던 비민주적 정권이 다시는 들어설 수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아베의 과거사 부정을 우리는 비판만 하면 충분할까? 나치를 철저하게 반성하는 독일을 본받아야 하는 것은 아베 뿐만 아니다. 한국은 기나긴 역사 속에서 외국민에게 상처를 준 경험이 거의 없지만, 베트남 참전은 예외였다. 진정으로 사과함으로써 일본과는 다른, 국가의 품위를 보여주어야 한다. 아베가 일본의 국격을 떨어뜨린다면 우리는 국격을 올려보자.

   셋째, 한국의 불매운동은 아베에 대해서만 성공적이면 충분할까? 사실 불매운동이란 특정 국가보다는 특정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기업의 악덕성이 고발될 때라면 그 기업의 국적성과는 상관없이 소비자들은 연대해야 마땅하다. ‘을’들끼리 경쟁이 아니라 연대를 통해 서로를 지켜 나갈 수 있는 길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주장대로 현대국가란 단순히 ‘네이션 스테이트’라기보다는 ‘자본-민족-국가’의 삼각연합 체제라면, 불매운동은 더욱 중요해진다. 자칫 이번 사태가 삼성 등 비판받아 마땅한 자본에게만 좋은 일이 되어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음을 경계하자.

   노동자는 임금노동을 할 때는 ‘을’에 불과하지만, 소비자의 위치에 설 때는 자본에 대해서 오히려 ‘갑’이 될 수 있다. 불매운동은 소비자(노동자)-시민-주권자로서 정당한 권리이며, 자기 믿음을 표현하고 이익을 관철할 수 있는 유력하고 손쉬운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법체계의 영업방해죄 등은 이같은 ‘연대를 통해 갑을 관계를 뒤집을 가능성’을 부당하게 제한하고 있으니 그 개정이 시급하다.

   이번 불매운동이 단지 다른 나라에 대한 경고와 압박수단으로만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일본보다 민주적이고 평등하며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진정한 극일’에 이를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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