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을 판매하는 자영업자

 
 
 
  △ 사진출처 : ClipartKorea
 

   사람들은 나를 작가, 지식인 등으로 부르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자영업자다. 누군가는 김밥을 팔고 누군가는 옷을 팔 때, 나는 그저 ‘지식’을 팔 뿐이다. 그 알량한 것을 대략 15,000원짜리 책(이라는 물질)에 담는다. 내 몫의 인세가 10%니 1권 팔리면 1,500원 번다. 그렇다. 1,500원짜리 장사를 하는 인간 다이소가 바로 나다. 다행히 김밥이나 옷처럼 누군가에게는 쓸모가 있다고 여겨져 어떻게든 팔리고 있으니, 그저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좀 많이 팔리면 좋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사회과학 책 써서 근근이 생계가 유지되는 것 자체가 기적 아닌가.   당신은 판매한다는 행위의 의미를 진정 아는가? 안 팔리는 책을 어떻게든 한 권이라도 더 팔아보겠다고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제삼자인척 책 홍보 글을 올렸다가, ‘임승수 씨, 저자가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죠’라는 조롱과 조소를 띤 댓글을 만나는 것이다(아마도 내 계정의 이메일 주소를 통해 나라는 것을 파악한 것 같았다). 이듬해에 또 다른 신간이 나와서 이번에는 당당히 저자임을 밝히고 책을 홍보하니,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다’는 댓글을 만나는 것이다. 팟캐스트 방송에 나와서 너절해질 정도로 책 홍보를 하니, 성냥팔이 소녀 이후 가장 불쌍한 책팔이 소년이라는 핀잔이 들린다. 그렇다. 무언가를 판매한다는 것은 얼굴에 뱉어진 침을 웃으며 핥아먹는 것이다, 팔기 위해. 그래서 살기 위해.   내 주력 상품은 마르크스주의(『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원숭이도 이해하는 마르크스 철학』, 『원숭이도 이해하는 공산당 선언』)인데, 시장은 매우 협소하지만 파는 물건(지식)이 그나마 반응이 괜찮고 꾸준히 새로운 상품을 내놓으니 어느 정도의 신뢰를 얻어 다행히 전보다는 상황이 좋아졌다. 단골도 생겨 동네에서 어느 정도 터를 일군 구멍가게가 된 것이다. 아무도 밥벌이 수단으로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다보니, 이런 무無경쟁 환경을 통해 생존 가능한 블루오션 생태계가 조성된 것 같다. 나처럼 목적의식(?)을 갖고 사회과학 대중서적을 집필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니, 노동조합이나 사회단체 등에서 마르크스의 사상이나 진보적인 내용의 학습을 할 때 이래저래 내가 쓴 책을 활용하고 내 강의를 듣는다.   그런데 막상 마르크스와 엥겔스 공저의 『공산당 선언』에 보면 나 같은 자영업자(소시민층)는 갈수록 어려운 상황에 처할 운명이라며 다음처럼 단언한다.   “현대 문명이 발전한 나라들에서는 새로운 소시민층이 형성되었다. 이들은 프롤레타리아 계급과 부르주아 계급 사이를 떠돌면서 부르주아 사회의 보충물로서 끊임없이 새로 형성된다. 그러나 소시민층의 구성원들은 경쟁을 통해 계속 프롤레타리아 계급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거대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자신들이 현대 사회의 독자적인 부분으로는 완전히 소멸되고 상업, 제조업, 농업에서 노동 감독과 고용인들로 교체될 시점이 가까이 닥쳐오는 것을 제 눈으로 보게 된다.”   마르크스 선생님, 제가 선생님의 사상을 팔고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저는 좀 예외로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자본주의 발전 법칙에 예외는 없나보다. 책은 갈수록 안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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