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폐지 논란

 
 
△자신들의 ‘몸’을 억압하는 사회를 향해 여성들은 “내 몸은 내가 결정한다(My Body My Choice)”는 저항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출 처 : R e s p e c t( Woman)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전국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 이는 지난 9월 22일 보건복지부가 현행 의료법 시행령·시행규칙에 모자보건법 14조 1항을 위반하는 인공임신중절시술을 ‘비도덕적 진료 행위’의 항목으로 포함시키고, 이를 시술한 의사는 최대 12개월까지 자격을 정지할 수 있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에 대한 응답이다. 여성들은 낙태죄 처벌 강화를 목표로 한 의료법 개정안의 통과 여부를 넘어서서, 인공임신중절을 시행하고 있는 여성을 처벌하고 있는 형법 ‘낙태죄’ 항목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시작하였다.

 이번 의료법 개정안이 촉발시킨 ‘낙태죄’ 논쟁에 다양한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참여하고, 이제까지 사회적으로 금기시 되었던 임신중단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입장들을 나누며, 임신중단의 권리는 국가나 남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임신, 출산, 임신중단의 주체인 여성에게 있다는 점을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과정이다. 하지만 동시에 ‘내 몸은 나의 것’ 혹은 ‘my body, my choice’을 넘어서는 구호와 사유가 동시에 요청되는데, 이는 재생산과 관련된 다층적인 문제들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권 문제로만 접근하기 어려운 사회구조적인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사회에서 이제까지 인공임신 중절시술이 어떻게 이루어졌으며, 어떠한 사회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인구감소를 통해서 국제적인 원조를 받고, 이를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고자 하였던 1960~1970년대에는 낙태가 피임의 한 수단으로 널리 사용되어왔다. 형법상 낙태죄는 존재하였지만, 인구 감소는 정부의 중요한 시책이었기 때문에 임신중절시술을 받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처럼 ‘낙태’가 국가에 의해서 장려되고 조장되는 상황에서 임신중절을 여성들이 ‘선택’한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나아가 질병이나 장애가 있다고 예상되는 태아 혹은 여아를 임신한 경우 더 쉽게 임신중절이 이루어져왔다. 질병이나 장애가 있는 아이에 대한 사회적 지원과 고려가 없는 상태에서 개인이 임신중단을 ‘선택’한다는 것은 또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이와는 반대로 최근 저출산이 사회적 위기로 부상함에 따라서, 정부는 다양한 출산장려정책을 내놓고 있으며 ‘낙태죄’ 처벌 강화도 이러한 출산율 증가 목표의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여전히 임신과 출산이 직접적으로 장려되는 여성은 모든 여성이 아닌 ‘이성애 정상가족’의 범주 안에 있는 장애나 질병이 없는 여성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많은 예산을 투여하여 시행하고 있는 난임부부지원사업은 법적 혼인관계에 있는 특정 연령대의 여성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인 지원은 여전히 일천한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신과 출산을 사회적으로 전혀 기대 받지 않는 여성이 임신중단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를 진정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을까?

 국가는 더 이상 개인 여성의 임신과 출산을 통제하고, 위계화해서, 범죄화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기 위해서 ‘낙태죄’ 폐지는 시급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여성의 재생산권은 단순히 법적 제재 없이 임신중단을 시행할 수 있다고 해서 저절로 확보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혼유무,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장애와 질병, 경제적 차이와 상관없이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모성을 실천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건들이 이 사회에 마련되었을 때 비로소 여성들은 임신 혹은 임신중단을 진정으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제까지 어떠한 생명이 더 가치 있다고 여겨져 왔는지, 어떠한 재생산은 왜 사회적으로 거부되어 왔는지에 대한 고민이 ‘낙태죄’ 폐지의 목소리 속에서 함께 어우러질 때, ‘낙태죄’ 폐지가 또 다른 차별이나 배제를 만들어내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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