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지금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개인의 가짜학위 문제로 출발한 신정아 사건은 불교종단 내부의 뿌리 깊은 반목 구조, 청와대와 언론의 적대적 갈등 관계, 대통령 선거를 앞둔 상황 등이 서로 상승효과를 만들면서 우리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사건의 내적 외적 환경이 이렇다 보니 학교는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식으로 피해를 입고 있다.

이런 와중에 종단, 재단이사회, 학교 집행부와 교수회 등 학교 구성원들 사이의 불신과 갈등이 이어지고 있어 동국가족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교수회는 이사진 전원 및 총장 퇴진을 요구하고, 퇴진 요구를 받은 쪽은 교수회를 비판하고 있으니 불난 집에서 부부싸움 하는 형국이다.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을 때인가. 사학 3대 명문 운운하던 대학이 종합순위 28위로 떨어져 있다. 남 탓하기 전에 내 탓 먼저 하는 게 당연한 수순이며, 위기와 한계에 직면해서는 전통과 원형으로 돌아가고자 발심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오늘 고려시대 지눌스님이 밝힌 정혜결사문의 정신이 새삼 그립다. 이 결사문은 지눌스님이 고려 말기 불교계의 타락상을 바로잡기 위해 제시한 치유책으로서 올바른 선정과 지혜를 닦아 승려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기를 강력하게 독려하는 글이다.

그 첫 구절이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이다. 마음의 본성이 흐려지고 쇠락함에 따라 일어난 일은 다른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오직 흐려진 그 마음을 다시 바로 잡음으로써 가능하다는 뜻이다.

정혜결사문의 현대적 의의는 그것이 꼭 승단 내부의 문제 해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땅이 있기 때문에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려면 역시 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뜻은 보편적인 이야기 구조이다. 땅은 우리 모두가 발붙이고 살아야 하는 근본이자 토대이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땅은 바로 학교이고 불교이며 우리의 마음이다. 이 셋은 함께 넘어져 있지만 일어서는 것도 함께 힘을 합해야만 가능하다. 힘을 합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학교의 주요 구성원들이 이제 광장으로 나와 진솔한 대화를 통해 학교발전의 장애 요인들을 제거해야 하며, 구성원들은 각자의 본분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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