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상 20세기는 그야말로 치욕으로 점철된 파란만장의 시기였다. 개항을 계기로 제국주의 열강의 외압이 가중되는 가운데 국민적 통합을 이룩하지 못해 결국 일제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해방과 동시에 민족과 국토가 분단되는 비극을 겪었다. 이로 말미암아 현재에도 식민 잔재의 청산이 사회 문제로 거론되고 있으며, 남북 간에 극단적인 이념과 체제의 대립이 야기되면서 발전을 제약하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아직까지 우리는 20세기의 구조적 문제점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채 21세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때마침 올해는 러일전쟁이 발발한 지 꼭 100년이 된다. 20세기 벽두에 발생한 러일전쟁이 우리 근현대사의 방향을 왜곡·굴절시킨 실마리가 되었던 만큼, 향후 100년의 운명을 좌우할지도 모를 21세기 초를 맞이해 러일전쟁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매우 각별하다. 과거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미래로 나아가려는 발목을 잡기도 하지만, 과거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비판없이 올바른 미래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러일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것

러일전쟁은 영국과 러시아의 대립을 배경으로 일본이 영·미 양국의 후원 아래 일으킨 제국주의전쟁이다. 실제로 러일전쟁에서 사용되었던 전비 17억 엔 가운데 4할은 영국과 미국에서 모집한 외채로 마련됐으며, 전쟁을 마무리하는 포츠머스강화조약을 적극 중재했던 나라도 미국이었다. 아울러 강화조약이 체결되기도 전에 이미 태프트·가쓰라밀약과 영일동맹이 개정됨으로써 한국의 운명은 스스로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열강들의 이해관계로 결정되고 말았다.
이처럼 러일전쟁은 실질적으로 한국의 지배권을 둘러싼 전쟁이었기 때문에 교전국도 아니었던 한국은 전쟁의 격전장으로 변해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를 입었으며,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되는 최대의 희생양이 되었다.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될 점은 전쟁 중 한국이 전쟁상대국의 피점령지도 아니었으며, 엄연한 독립주권국이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전쟁을 계기로 한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동시에 전국에 군대를 주둔시켜 저항하는 한국인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다. 이런 의미에서 러일전쟁은 일본의 침략전쟁이기도 하다.

집권층 무능·의병과 민중 저항

한편 러일전쟁 당시 집권층은 기껏 아관파천의 경험을 되살려 외국공사관으로 피신하거나 중립화노선을 추진하다가 실패하자 일본의 압력에 굴복해 각종 편의를 제공했고, 심지어 반일 의병을 효유·진압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국권과 민권이 아닌 황실의 보존에만 골몰했던 나머지 전쟁의 본질을 정확하게 깨닫지 못한 채 외세의존적·반민중적 태도로 일관한 집권층에게 전쟁의 타개책을 기대하기는 곤란하였다.
또한 지식인들은 전쟁의 본질이 한국에 대한 지배권쟁탈에 있음을 갈파하고 일차적인 원인이 고종과 집권층의 부패·압제에 있다고 인식했지만, 한국에 대한 일본의 내정개혁과 침략을 유기적으로 파악하지 못함으로써 열강 간의 상호 견제에 의해 독립 보장을 낙관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반면 의병과 민중은 국제정세의 흐름에서 전쟁의 전반적인 상황을 꿰뚫치는 못했지만, 국지적으로나마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해 직접적·비타협적으로 투쟁해 나갔던 것이다.

과거의 치욕 반성해야 할때

오늘날 북한 핵·일본의 우경화에서 과거사를 둘러싼 ‘역사전쟁’에 이르기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러일전쟁 발발 100주년을 맞이해 과연 우리는 자신의 운명을 강대국에게 내맡겼던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부할 정도로 대외적 자주와 국민적 통합을 이룩하고 있는지 곰곰이 되씹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와 동시에 러일전쟁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약소국을 침략했던 행위가 자국에게도 불행을 안겨준다는 역사적 교훈을 세계 모든 국가들에게 던져주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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