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인디밴드 ‘카우치’ 멤버들이 음악프로 생방송 중에 성기를 들어내는 돌발적인 행위로 세상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이 행위에 대한 반응도 다양하여, 세태를 반영한 것이라는 자조와 더불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내버려둔 건 우리 잘못이라는 기성세대의 자책하는 소리도 있었다. 반면에 자기가 좋아서 벗은 것이고, 그것도 충동적 행동이었을 뿐인데 뭐 그리 비난을 하느냐는 반응도 적게는 있었다. 그러나 일반적인 정서로는 용인받기 어려웠고 결국 위법으로 결론이 났다.
개성 표출이 무한정이라 할 만큼 자유로운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에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으며, 표현의 자유라는 것을 얼마나 왜곡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 해프닝이었다.
타자와의 차별화를 통하여 자신을 부각시켜보려는 것은 자유이고 당연한지 모른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나 만의’ ‘더욱 두드러지게’라는, 쉽게 말하자면 ‘튀어야’라는 풍조가 특히 젊은 세대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카우치’의 행위를 차별화 수단의 하나 일 뿐 이라 인식한다면 ‘그게 무슨 잘못인데?’ 라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듯 타자와의 차별화를 지나치게 외적 요인에만 의존하는 경향이 짙다. 성형, 명품, 따라하기 등등, 속된말로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거나 찢어진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잡보장경’이란 경전에는 “태산과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라는 말이 있다. 자신감이 있다면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두려울 것이 없으니 겸손 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빈 깡통이 소리가 크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가을의 문턱에 있는 캠퍼스에서 나마 나는 몸을 어느 만큼이나 낮출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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