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계시나요? 나는 이 말을 가장 서두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거창한 말보다는 가장 솔직하고, 가장 진실한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안부를 묻다가 문득 내 안부가 궁금해지는 요즘의 날들처럼. 아무 생각 없이 버스 바깥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가슴이 시리던 일들처럼. 얼굴도 모르는 당신에게라면 나는 내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건 ‘칼럼’이라는 주제 아래 나의 이야기이자 당신의 이야기이고 일종의 고백이자 연대의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온 지 벌써 반년이 지났습니다. 작년 여름 끝 무렵 나는 이곳 서울로 상경해 겨울을 보냈습니다. 으레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이라면 그렇지만 의식주 개념 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발이라도 뻗고 잠을 잘 곳’, 나의 동네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대학원 입학을 결정하고 나는 당장 내가 지낼 곳을 구해야만 했습니다. 서른 곳의 집과 일곱 곳의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나는 좌절했습니다. 여태 나는 서울을 잘 알지 못했고, 그래서 서울에서 사는 일이, 서울에서 몸 하나 뉠 곳을 찾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지방의 추위와는 견줄 수 없는 서울의 추위에, 겨우 찾은 자취방 구옥 주택 수도관이 꽁꽁 얼어버린 일도 있었지요.

  처음 서울에 오며 가장 먼저 보았던 풍경이 무엇인지 아세요? 나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 있던 사람들을 가장 먼저 보았습니다. 그들이 오르고 내리는 것과 말소리와 방향과 목적지까지. 가만히 보다 보면 삶의 한가운데 슬픔과 지침과 외로움의 표정들이 있었습니다. 안쓰러웠습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고 무엇을 열중해서 보다가, 졸다가, 같이 탄 이들에 기대며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틈에 낀 나는 오래 그곳에 앉아 그것을 받아 적었습니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렇게 지하철과 버스를 사랑하게 되었고, 서울에서 쓴 나의 시편들을 마음 깊이 아끼게 되었습니다. 그건 그들과 함께임과 동시에 혼자였던 내가 한 몸으로 온전히 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였습니다.

  대학원에 입학해 첫 강의를 들으러 갔던 그때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동국대학교 정문으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며 나는 신입생이 된 듯했습니다. 강의실을 향해 부지런히 걸었고, 모르는 길을 물어물어 함께 올랐지요. 겨울이 오며 찬 바람이 불 때 나는 여전히 따뜻했습니다. 서로의 마음들이 오가는 그 순간. 그 시간. 배움의 기쁨이 세상의 여느 것과도 견줄 수 없을 때.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다시금 돌아오는 기분을 매 순간 느꼈습니다.

  오래 이 기쁨을 느끼고 싶은 내게 가끔 누군가는 나를 안타깝게 보거나, 그걸 해서 무얼 먹고 살겠냐는 질문을 던지고는 합니다. 그런 질문은 이제 익숙해서 나는 아무렇게나 웃어넘기고 맙니다. 때론 기분이 좋지 않아 이렇게 반문하고는 하지요. 내가 좋아서 한 건데 뭐가 불쌍한가요? 상대방은 당황하기 일쑤이지요. 그렇지만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나를 포함한 대학원생들의 마음 한편에는 어딘가 모를 두려움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자유가 없다는 것.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자유가 없다는 것.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믿는 사랑이 되고 싶습니다. 나의 가장 친한 친구는 내게 계속 문장을 담자고 이야기했지요. 우리가 문장을 계속해서 담는다면 믿는 사랑이 될 거라고 했지요. 자신은 분명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입니다. 지난한 시간 속에서 우리의 자리가, 우리의 배움이,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이 세상의 사랑이 된다고 믿고 싶습니다. 나는 당신의 슬픔과 지침과 외로움을 사랑합니다. 부디 가장 간곡한 마음으로, 잘 지내세요. 나는 이 말을 가장 결미에 남기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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