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여성가족패널조사(8차)에 따르면, 20대 여성은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질문에 23%만이 찬성했다. 30대 여성도 별로 차이가 없어 36%만이 찬성했다. 적어도 미래는 비혼의 경향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화될 것 같다. 그런데 저출산과 관련해서는 좀 다행인(?) 결과도 있다. ‘자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질문에 20대 여성은 30.2%, 30대 여성은 51.2%가 찬성했다. 그러니까 20대 여성 중 7% 정도는 결혼과 무관하게 아이는 갖고 싶다고 말하는 셈이다. 

  꽤 알려져 있듯이, 프랑스의 저출산 탈출 비결은 혼외 출생한 아이도 사회제도의 테두리 내로 포함하는 법적 제도적 개혁이었으며(그런데 최근 반론도 나오고 있다), 프랑스의 혼외출산 비중은 2022년 기준 무려 63%(한국은 2020년 OECD 추산 2.5%)이며 출산율도 1.8%나 된다(한국 0.78명(2022년 기준)). 프랑스뿐만 아니라 OECD 평균 혼외출산 비율은 42%에 달한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혼외출산의 제도화를 조심스럽게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중국, 일본 같은 유교권 동아시아 나라들에서는 혼외 자녀를 갖는 것이 거의 금기시되고 있다. 중국의 혼외출산율은 1% 이하로 알려져 있고, 일본의 경우 2020년 기준 2.4%로 한국과 비슷하다. 동아시아 사회에서 현재 혼외출산 제도화를 통한 저출산 문제 해결은 규범적 반발이 너무 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혼외출산이라는 대안도 없는 한국, 중국, 일본은 그래서인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출산율이 떨어지는 국가가 되었다. 

  필자는 중국이 한국과 유사한 듯하지만, 차이점도 많다는 점에 주목하여, 한국과 중국의 보육제도를 역사적으로 비교하는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 시기를 거쳐 개혁개방 시장화로 이행하였는데, 사회주의 실험을 거쳤다는 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재 한국이 겪는 문제에 대해 시사점이 많다. 중국은 1949년 건국 이후 산업화가 충분히 되지 않은 상태에서 생산력을 늘릴 뿐 아니라 혁명 이념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국가가 주도하여 ‘여성의 노동자 정체성’을 만들기 시작했다. 사회주의의 노동중시 이데올로기에 따라 전업주부는 심한 경우 놀고먹는 기생충으로 여겨지기도 할 정도였다. 이처럼 여성을 일하는 노동자로 만들면서, 중국은 기업(단위)뿐 아니라 도시와 농촌 곳곳에 여성노동자가 일을 할 수 있도록 공공탁아소를 설치하였고, ‘여성노동자 보호’ 법들을 만들어 여성의 출산과 양육을 기업이 지원하도록 만들었다. 보육의 부담은 어쨌든 상대적으로 줄어들었고, 1980년대에 한자녀정책이 나오기 전까지 출산율은 꾸준히 높았다. 다만 아이 키우는 일차적 책임은 여전히 엄마에게 강제되는 ‘이중부담’을 야기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많은 연구와 자료들에서 개혁개방 이후 중국 여성의 출산과 양육 여건이 이전 사회주의 시기보다도 좋지 않다는 진술이 나온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여성은 집으로 돌아가라는 ‘부녀회가(婦女回家)’ 담론이 폭발한 바 있다. 사회주의 시기 여성이 사회적 여건에 맞지 않게 일을 하게 되어 일/가사의 ‘이중부담’에 시달리고 있으니, 여성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이 낫다는 주장들이 나왔다. 하지만 많은 중국 여성들이 이러한 백래시를 거부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공공탁아소가 개혁개방 이후 거의 사라지자, 조부모 보육이 여성들을 노동자로 버틸 수 있게 해주었고 여전히 중국은 여성의 경력단절 비율이 꽤 낮은 편이다. 21세기 들어 글로벌 신자유주의의 흐름이 중국 여성들에게도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조부모의 도움을 얻어서라도 일과 아이를 다 잡으려 했던 중국 여성들은 그 와중에도 ‘과학육아’처럼 “아이를 키우는 일차적 책임자는 엄마”라는 모성 이데올로기의 압력에 시달리게 되었다. 주로 서구의 육아지식을 수입한 과학육아 문화는, 개인의 자아실현과 그에 대한 개인 책임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문화와 맞물려, ‘고강도 마더링(intensive mothering)’ 관행을 야기했다. 중국의 일하는 엄마들은 사회주의 시절의 영향으로 직장을 고수하는 워킹맘이 많은데, 이들은 과학육아 담론의 영향 하에 이중부담을 감내하면서 지내지만 그 강도가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사교육 왕국의 선두 주자인 한국과 유사해 보인다.  

  그동안 중국의 청년 여성들이 보아온 기성세대 여성 또는 자신의 엄마들은 일도 하고 아이도 그럭저럭 잘 키운 존재였다. 그래서 아직까지 중국 청년 여성들의 비혼 의사는 한국만큼 높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처럼 이중부담과 결합된 고강도 마더링은 이미 중국의 급격히 추락하는 저출산율에 반영되는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최근 중국청년 실업률도 급격히 늘고 있다. 아마 비혼 의지도 앞으로 점점 높아질 것이다.

  한국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미 청년여성들의 비혼 의사가 매우 높다. 한국 여성들은 주로 ‘전업주부’ 엄마를 보고 자랐을 것이고, 일부는 90년대부터 서서히 증가한 ‘일하는 엄마’를 보고 자랐을 수도 있다. 전업주부든 일하는 엄마든, 좋아 보이지 않았을지 모른다. 전업주부의 길은 이미 여성이 대학에 남성보다 더 많이 진학하는 딸들의 삶과 너무 다른 것이다. 일하는 엄마로 지내기는 지금보다 과거에는 더 힘들었을 테니 더욱 좋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결혼은 내 노력과 자아실현의 걸림돌로 인식되고 결혼이 아니라 비혼을 지향하는 것이 여성 개인들의 합리적 선택이 된 듯하다. 

  유교문화권인 동아시아 나라에서 소위 정상가족 외부의 대안을 당장 추구하기 쉽지 않은 현실을 감안한다면, 대안은 어쩔 수 없이 여성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과거 중국의 ‘여성노동’ 보호를 위한 조치들은 주목된다. 기업 내에 만 4세 이하의 자녀를 가진 여직원이 20명을 초과하면 탁아소를 반드시 설치해야 했으며, 모유수유가 필요한 영아가 5명만 초과해도 ‘반드시’ 기업 내 수유실을 설치하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조치가 남성을 돌봄 주체에서 제외하는 한계는 있지만 20세기 중후반이라는 시대적 조건을 감안해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결국 회사에 남성뿐만 아니라 유자녀 기혼여성 노동자마저 종속되는 지금의 장시간 불안정 노동시스템이 저출산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대놓고는 차별을 안 한다지만, 가사와 육아로 바쁜 여성을 ‘배려’해 주는 척 중요한 일을 맡기지 않고 회식에도 부르지 않고 서서히 배척하는 기업문화가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모성보호가 아니라 ‘여성노동’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노동문화와 기업문화를 바꿀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직장에서의 차별적 문화가 사라질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남녀 모두의 ‘강제 육아휴직’이 대안으로 나오고 있고, 이는 남녀청년 모두 가장 선호하는 대안이다. 현재의 육아휴직이 마치 여성에 대한 배려처럼 인식되고 남성도 사실상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만 쓸 수 있는 현실이라면, 남성과 여성 모두 육아휴직을 쓰도록 해서, 여성을 채용하는 것이나 남성을 채용하는 것이나 똑같게 하는 방안이 답이 될 수 있다(물론 육아휴직 급여가 너무 낮은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럴 경우 혹시 기업들은 자녀가 없거나 결혼을 하지 않을 직원을 채용할 것인가? 이때도 대안이 있다. 누구도 눈치 보지 않고 똑같이 휴직을 쓰게 하면 된다. 육아휴직에 준하는 돌봄휴직이나 자기돌봄휴직을 정해놓고 강제하면 된다. 연가보상비처럼 안 쓰면 돈으로 보상해 주는 식이 아니라, 유효기간이 있는 포인트나 쿠폰처럼 안 쓰면 사라지는 휴직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결혼과 출산이 여성 생애경로의 방해물이 아니라고 인식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지금 한국은 역사적 기로에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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