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장미희 편집장
△ 일러스트= 장미희 편집장

미중 전략경쟁의 본격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이스라엘-하마스전쟁 발발, 가치사슬과 공급망의 교란, 북한의 지속적인 핵·미사일 고도화, 인플레이션과 금융 위기 등 지금은 이른바 복합위기의 시대이다. 무엇보다 현재 진행 중인 2개의 전쟁은 진영충돌, 종교충돌로 비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중전략 경쟁의 본격화와 진행중인 2개의 전쟁 등으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부각되지 않고 있지만, 군사충돌의  가능성이 높은 곳이 대만해협과 한반도이다.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면서 중국의 ‘일대일로’에  맞선 ‘인도-태평양 전략 구상’을 지역전략으로 내세우며 지정학적 대립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인도-태평양 지역에는 ‘규칙기반질서 (Rules-Based Order: RBO)’를 강조하는 미국과 함께 하려는 나라들과, 국익을 내세우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이익균형을 찾으려는  나라들까지 다양한 역내 국가들이 존재한다.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 세계가 자본주의로  통합됨에 따라 이념과 가치에 기초한 진영 나누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미국과 동맹국들은  규칙기반질서를 내세우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 약화시키기’ 연대(QUAD,  AUKUS, Five Eyes 등)를 모색하고 있다. 이에 맞선 중국은 러시아와의 전통적 유대를 공고히 하면서, 일대일로를 통한 영향력 확장을 지속하고 있다. 러시아와 서방이 격돌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와 인도 태평양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전략경쟁으로 다시 지정학의 중요성이 부각하고 있다.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화하고 북한 핵능력이 고도화함에 따라 우리나라의 정책적 자율성이 제한받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세계질서 재편이라는 대전환의 시기에 미국과 ‘글로벌 협력동반자 관계’를 강화하고, 미국 주도의 규칙기반질서와 인도-태평양 중시에 편승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핵위협에  맞서 ‘가치외교’와 ‘전략적 명확성’을 내세우고 한미동맹 강화와 한미일 연대강화로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을 잡으려 한다.  

북중러와 한미일 사이의 ‘신냉전’ 기류가 나타남에 따라 한미동맹의 지정학적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사실상 미중의 국제전으로 비화됐던 한국전쟁을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한반도가 다시 미중 전략경쟁 (패권경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들어감으로써 선택을 강요받는 등 난관에 봉착했다.

한때 한국은 전략적 모호성을 내세우고  ‘균형적 실용외교’를 펼치면서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안미경중(安美經中)’의 실리를 챙겼지만, 이제는 전략적 명확성을 내세우고 규칙기반질서에 편승하려고 한다.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경제적 실리를 다소 희생하더라도 가치연대를 통한 ‘공동안보’ 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정상회담을 통해서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복원하고, 워싱턴선언과 캠프 데이비드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서 한미동맹과 한미일 3자 협의를 강화함으로써 가치에 기반을 둔 한미일 협력관계는 돈독해진 반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는 공급망의 재편 등으로 조정국면에 접어들었다.

북한은 2022년 12월에 열린 당중앙위원회  8기 6차 전원회의에서 “국제관계구도가 ‘신냉전’체계로 명백히 전환되고 다극화의 흐름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신냉전과 다극화를 말하는 것은 규칙기반 질서에서 정상적인 국가활동이 어렵기 때문에 중국, 러시아와 냉전적 연대를 강화하면서 생존을 모색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적 이익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적인 세계질서가 미중 전략경쟁,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해 규범과 가치를 내세운 새로운 질서와 충돌하고 있다. 현 세계 질서를 보는 관점과 필요에 따라 ‘신냉전’ 의 용어를 사용하지만 아직 합의를 이룬 개념은 아니다. 지금의 세계에서도 ‘복합적 상호의존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전략 구상을 본격화 하면서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지만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을 하고, 미중관계에서 디커플링(de-coupling)을 추구하지 않고 디리스킹(de-risking)하려고 한다.

상부구조에서 자유, 가치, 규범에 기반한 질서를 모색하지만, 인공지능(AI), 가상화폐 등 비인간 행위자(사물 행위자) 의 비중이 늘어나는 등 인간-비인간의 행위자 네트워크가 증대됨으로써 하부구조의 복합적 상호의존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복합위기는 복합적 상호의존성 속에서 해결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지난 수년간 역내 국가들 사이의 고위급 대화가 많은 제약을 받았다. 소통의 부재와 단절에 따른 불안정  에너지가 농축되면 한반도와 양안(兩岸) 지역 등 약한 고리에서 군사적 충돌로 비화할지도 모른다. 한국전쟁이 그러했듯이 동북아지역에서의 군사충돌은 국지전으로 끝나지 않고 미중 간의 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갈등과 위기는 구조적 갈등 (structural conflict)과 위기로 어느 한 나라의 노력으로 해소할 수 없다. 유엔(UN)의 영향력도 크지 않다. 동북아 지역은 세계적 수준의 미중 전략경쟁, 일본과 역내 국가들 사이의 과거청산을 둘러싼 갈등, 북미 갈등과 남북 갈등 등 중첩된 갈등이 상호작용하는 복합 위기의 치열한 대치점(flash point)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은 역내 국가들이 각국의 ‘근본 이익’을 침해하지 않는 ‘이익의 조화점’을 찾아 평화와 공동번영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인류 전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기후위기 등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노력이 시급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의 장기화, 이스라엘-하마스전쟁 격화, 북-러 군사협력 가속화 등 안보환경이 급변하면서 우리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9·19 남북군사 합의를 파기하고 ‘힘에 의한 평화’를 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분출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영토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는 헌법 3조를 내세우고 흡수통일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2018년 ‘한반도의 봄’ 흐름을 타고 남과 북은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군사충돌을 막기 위한 긴장완화 조치로 전방초소를 철거하고 합의지역에서의 군사훈련과 위협행위를 하지 않기로 하는 등 ‘무력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한다’는 9·19 군사합의를 이끌어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남북관계가 단절되면서 4·27 판문점선 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을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9·19 군사합의를 이행하면서 북미, 남북대화 재개를 모색하지만,  북한은 한반도 2개 국가론을 펴면서 핵· 미사일 고도화와 인공위성 발사를 준비하는 등 위기조성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하마스의 기습공격을 거론하며 군사합의 효력정지를 강하게 주장하는 쪽도 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장사정포 등에 대 한 대응전략은 하마스식 기습공격에 대한 대응전략과 같을 수 없다. ‘힘을 통한  평화’도 중요하지만 대화를 통한 위협감소, 평화유지 노력도 병행해 나가야 한다.

북한은 ‘유핵 공존’을 고집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비핵 평화 번영’을 추구하고 있어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보더라도 경제지원을 유인으로 한 비핵화를 다시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북한이 ‘근본문제’라고 생각하는 체제안전보장과 관련한 문제들(한미연합군사연습문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북미관계정상화 등)을 포함하여 비핵-평화 교환 프로세스를 마련하고 북한을 설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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