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에 들어가 불상(佛像)을 바라보는 상상을 해보자. 떠올려 본 부처님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가 연상하는 부처님의 생김새는 일반적으로 번쩍이는 황금빛의 금동불일 것이다. 하지만 불상의 재료는 금동 이외에도 돌, 흙, 나무, 직물류 등으로 다양하다. 불교에서 불상을 만들기 시작한 후, 경전에서는 불상의 조성과 공덕을 언급하면서도 불상을 만드는 재료에 대해서는 특별한 제약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7세기 말 당(唐)의 제운반야(提雲般若)가 번역한 대승 조상공덕경(大乘造像功德經)도 부처님의 형상을 만들 때 보는 이로 하여금 불상이 부처님의 상호임을 알게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할 뿐 재료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권보경은 고대국가의 중요한 자원 중 하나인 ‘철’ 이 불상의 재료로 사용됐음에 주목하며 신라 하대와 고려의 문화를 복원한다. 저자는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50여 구의 철불 중 중형(10kg) 이상이며 완형인 49구를 연구해 불상 조성에 철이 사용된 원인과 시기를 밝힌다. 그는 철불 조성이 9세기에 시작돼 고려 전기에 수량이 증가한 뒤 고려 전기를 지나며 점차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한반도에서 불교를 처음 수용한 국가는 고구려로, 소수림왕 2년(372년) 전진(前秦)의 승려 순도(順道)로부터 불상과 불경을 받았다. 삼국시대 불교를 수용한 이래로 금속 불상은 대체로 동합금으로 제작했으며 이런 현상은 통일신라까지 지속한다. 동 계통의 불 상이 꾸준히 조성되는 한편 신라 하대에 접어들자 불상의 재료로 철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철의 용융점은 1,500℃ 이상으로 동보다 높고 강도가 강해 섬세한 작업을 하기가 힘들다. 다시 말해 철을 불상 조성에 적합한 재료로 보기 어렵다는 것인데, 저자는 그런데도 철불이 조성되기 시작한 원인에 관심을 둔다. 그는 당대의 정치, 사회, 경제적 배경을 추적해 철불의 발생 원인, 양식과 경향을 파악함으로써 통일신라와 고려의 문화를 재구성한다.

권보경은 신라 하대가 정치적으로 혼란했고 왕위와 권력을 두고 진골의 분쟁이 지속됐던 시기였으며 사상적으로는 새로운 불교 사유 체제인 선종(禪宗)이 유입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철불 조성의 가장 직접적 원인이 주석 수급 문제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주석은 청동을 만들 때 꼭 필요한 금속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산출되지 않았고, 신라는 청동불 조성 시 비용 절감을 위해 주석이 함유된 당의 동전을 수입했던 것이다. 한편 선종이 지방에서 사세를 확장하자 왕실도 선종에 관심을 가졌고 지방에 대형 불상을 조성함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자 했다. 신라 하대 제철 기술은 주조 과정에서 외형틀 분할선이 거의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섬세하게 발달했고, 철은 청동에 비해 제작 비용이 저렴해 대규모 조성에 유리했다. 게다가 철은 수호와 호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어 혼란이 극심한 신라 말기 사회에서 ‘철불이 사역을 수호한다’는 개념을 불러일으켰다. 비용 절감, 제철 기술의 발달, 선종의 유행과 왕실의 지방 대불 조성, 철이 갖는 이미지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신라 하대 철불 조성이 시작될 수 있던 것이다.

신라 하대에 이어 고려 전기에도 다수의 철불이 조성됐다. 초기에는 촉지인(觸地印) 석가모니 불상이 유행했는데, 특히 신라 문화의 전성기인 8세기 통일신라 석굴암 본존상을 모본으로 한 편단우견(偏袒右肩)의 철불이 많다. 저자는 고려 전기에 신라 전성기 양식이 유행한 이유를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로부터 정권을 위임받아 정당성을 내세우고 통일을 기념하는 불상을 조성하는 데 관심을 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통견(通肩)이나 편단우견 안에 내의가 보이는 복식의 촉지인 상은 주로 11세기 이후에 나타난다. 고려 중기 이후에는 외침과 원의 철 공납 요구 등으로 철불 조성이 어려워져 그 수가 감소했다. 고려 후기에는 오히려 동불 조성이 증가한다. 12세기 중엽 이후 중국에서 지폐 발행이 증가하자 동전을 수출했고, 고려는 안정적으로 동전에 함유된 주석을 수급할 수 있었던 덕분에 동불 조성이 확대된 것이다. 한편 고려 후기 유학자는 금속, 특히 실생활에 가장 밀접한 자원인 철로 불상을 만드는 일이 낭비라고 생각했고 실용주의적 태도는 조선까지 이어져 조선 시대에 조성된 철불을 보기 어렵다.

철불에 관한 자료는 많지 않으나 권보경은 다양한 사료와 일제강점기 문건을 활용해 기존과 다른 관점에서 철불을 파악하고자 했다. 특히 문화유산의 과학적 조사 결과를 활용해 당대 제철 기술과 산업 구조를 재구성해 신라 하대와 고려 철불 조성 과정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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