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개발을 위한 한 가지 방법

 
 
  △ 거대 도시 분포도 (2018년 기준, 사진출처 : Wikipedia Commons)  

위기의 시대이다. 1백년 이래 최악의 감염병으로 모두가 고통 받고 있는 가운데, 기후 변화는 날로 심대해져 기상은 날이 갈수록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기상학계는 지구 전체의 기후 시스템 차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누구도 자신할 수 없다는 경고를 이미 20년째 보내고 있다. 행성 차원의 위기가 겹겹으로 인류를 덮쳐오고 있다.

   이 위기의 원인은, 삶을 개선하려는 인류의 활동이다. 인류는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생태계를 궤멸시키며 그 속에 숨어 있던 병원체를 풀어 놓았고, 대기 중 탄소 농도를 높여 대류권의 열적 평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러한 결과를 부른 인류의 활동에는 ‘개발’이라는 이름이 어울린다. ‘개발’을 통속적 방식대로 물질적 확장으로 이해하든, 세련된 방식대로 인간 역량의 강화로 이해하든, 개발을 위해 달려온 인류는 바로 그 결과 자신이 추구하던 목표를 위협에 빠뜨리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역설을 해결하지 못하면 인류의 미래는 없다. 부를 축적하고 지성을 계발하며 이상을 구현하려는 활동은 물론, 일상의 자그마한 행복조차 지킬 수 없을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은 기상을 예측할 수 있어 대지와 바다를 우리의 의도대로 생산과 교류에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기후 변화는 우리의 의도에 맞게 대지와 바다를 활용할 수 있을 가능성 자체를 약화시키고 있다. 이는 재난에 대처할 능력이 취약한 개도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세계에는 약 43개의 거대 도시가 존재하는데, 이 가운데 뉴욕, 런던, 도쿄, 상하이를 포함하는 25개의 거대 도시가 바닷가에 있다. 해양의 변화 앞에 세계에서 가장 발전되고 거대한 도시들조차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서울 역시 직간접적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하지만 개발을 통해 추구해 온 가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에 속한 인간의 역량을 확대하고, 인간의 잠재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드는 제약 조건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사회와 문명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저소득국의 인민들은 여전히 개발의 혜택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개발은 계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개발은 턱 밑까지 차오른 기후 위기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져야만 한다.

   이른바 ‘지속가능한 개발’이 만족해야 하는 조건은 비교적 명확하다. 탄소 배출량을 즉각, 그리고 30~40년 이내에 0이 되도록 감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비화석 에너지원의 비율을 높이고, 에너지 소비량 자체를 줄여 탈탄소 이행 과정을 도와야 한다. 인류를 위협하는 감염병의 위협을 줄이기 위해 인간이 활용하는 토지를 줄여 미지의 병원체와 거리를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동과 생산, 거주에 필요한 토지를 더욱 집약적으로 활용해야만 한다. 다행히 도시화는 인간의 사회적 역량을 강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므로, 에너지와 토지 효율이 높은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개발이라는 목적과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한 인류 문명 차원의 위기를 극복하는 목적을 함께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거대도시 서울 철도』라는 저술을 통해 철도야말로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도시의 물리적 구조를 만들어 내는 데, 그리고 그 속의 시민들이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데 교통보다 중대한 영역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철도는 다른 수단에 비해 인구가 많고 인간 활동의 밀도가 높은 도시에 적합한 수단이다. 토지를 조금 쓰고도 도로에 비해, 아니 다른 모든 수단에 비해 더 많은 승객을 실어 나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높은 수송력으로 인해, 철도는 에너지 효율과 탄소 효율 면에서 압도적이다. 세계적으로 철도는 승용차에 비해 같은 여객 수송량(인킬로)를 수송하는 데 에너지 효율이 10배, 탄소 효율은 5배에 달하며 한국 철도의 효율은 이보다 조금 더 높은 것 같다. 도시가 커질수록 늘어나는 취약 계층에게 이동력을 공평하게 제공하는 대중교통의 주축이라는 사실 역시 철도의 가치를 높여준다.

   물론, 기후위기를 완화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실현하려면 모든 가능한 수단을 종합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나는 철도, 특히 중·저소득국의 철도는 다른 수단보다 특별한 조명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개발이 고소득국의 소득 증가시기에 있었던 ‘자동차화’, 즉 승용차가 지배하는 교통망의 건설로 이어질 경우, 에너지 소비와 탄소 배출은 폭발적으로 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자동차화를 억제하기 위한 국제 협력은 결국 중·저소득국 철도의 발전 없이는 달성할 수 없는 과제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철도는 인류 문명 차원의 위기를 완화함과 동시에 저개발의 멍에 또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계약의 주인공이 될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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