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호 의 오류를 바로 잡습니다.8면 차현준 시인의 의 첫 문장 ‘공원에서’는 조판 과정 중 발생된 오류입니다.현재 웹 신문에 게재된 작품은 수정을 완료했으나, 종이 신문의 경우 수정되지 못한 상태로 발행하게 되었습니다.이러한 오류에 대해 차현준 시인께 사과드립니다.앞으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더욱 면밀히 살피는 동국대학원신문이 되겠습니다.
영화 의 장면 전환은 급작스럽게 이뤄진다. 시작부터 관객들은 주인공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상황을 읽어내는 것에 몰두해야 한다. 관객들이 가장 먼저 인식하게 되는 것은 매기의 계획이다. 그녀의 계획은 결혼이나 사랑 없이 아이를 만들겠다는 것인데 이는 꽤 순탄하게 진행된다. 아이의 유전자 절반을 구성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남자인 가이에게서 무사히 유전자를 받았고 적절한 환경도 마련됐다. 그러나 매기와 가이의 유전자가 만나기 직전, 상황은 뒤바뀌기 시작한다. 최근 들어 친해진 존이 그녀의 집으로 찾아와 사랑을 고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는 작가의 다른 소설과 같이 중심이 되는 내용 뿐만 아니라 곁가지의 다른 이야기들도 하나의 주제를 관통하는 작품이다. 그리고 동시에 윤리나 도덕, 인권 등의 가치에 대한 패러독스를 제시해 독자로 하여금 어느새 작품 속의 문제상황에 대한 심도 있는 사고를 하게끔 한다. 이는 작가가 채택한 작품의 소재와 상황이 참신하고 기발한 탓도 있겠지만, 그의 서술에 흡입력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나 법관을 ‘속세의 신’이라 한 표현, ‘쉬운 도덕적 방정식’, ‘건조하되 공감이 담긴 서술’과 같이 추상적으로 보이지
사람은 누구나 특별히 더 예민한 감각을 하나씩 갖고 있다. 나의 경우는 후각인데 이 감각은 결국 전염병을 피하지 못했음에도 후유증 하나 없이 견고하다. 그래서인지 자부심까지 느끼고 있다. 나의 능력은 냄새를 잘 맡는 것이다, 라는 작은 자랑거리. 무엇보다도 먹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후각은 아주 중요한 기능이다. 요즘은 후각을 통해 산책의 즐거움을 배우고 있다. 개들은 냄새 맡기 위해 산책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는데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동네를 잠깐 걸을 때에도 사방에 잠재해 있는 냄새들을 의식하며 걷는다. 당연
주말부터 나는 그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시끄러웠던 집 주변을 떠나 굳이 굳이 지하철을 타고 그 동네까지 찾아갔습니다 교통비 아깝게 뭐 하러 거기까지 가냐는 귀지는 그 건물에 들어가서 다 떨쳐냈습니다 해야할 일은 그리 어렵지도 않았고 가만히 쉴 때는 덕담이나 해주시던데요…… 내가 받을 액수를 누가 살펴본다면 덕담이란 걸 건넬까, 싶었지만 급여와 감내 간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며 키 높은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동네는 무언갈 감내해내는 표정을 짓지는 않았고 플립플롭을 신고 느리게 걷는 동네 사람들은 평일에도 화목해 보였
로맨스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해보자. 사랑하는 연인이 곁에 있고 나의 어려움과 상처는 빠르게 극복될 것이다. 일상은 가끔 요란하기도 하겠지만 대체로 평온하며 나는 연인과 평생 사랑하며 큰 탈 없이 살아가게 될 것이다.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보장된 삶. 누군가는 평생 그런 삶을 갈망하며 살겠지만 채린은 그렇지 않다. 그 까닭은 그녀가 정말 로맨스 소설 속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인 채린의 몸에 빙의된 의 주인공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달갑지 않다. 그녀가 처음부터 그랬
1920년대의 중국이라는 배경을 감안했을 때 송련은 드물게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이다. 그런 그녀도 가난이라는 현실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떠밀리듯 진씨 가문의 넷째 부인이 된 송련은 가장 먼저 하인을 배정 받고 발안마를 받는다. 머지않아 송련은 발안마가 그날 밤 진씨와 동침하기 위해 선택된 부인의 전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밤 내내 붉게 켜진 홍등과 발안마, 즉 진씨에게 선택 받았음을 증명하는 것들은 곧 권력이 되고, 가법은 집에 들어온 외부인을 천천히 구슬리며 길들인다. 얼핏 굉장한 대접을 받는 듯 송련은 결혼 후 며칠은
공원으로의 복원 공원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자갈돌을 차례로 걷어낸다 누군가는 이 작업이 복원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무엇으로의 회복인지는 알 수 없고 다만 원래대로 돌려놓는 일을 기쁘게 여기라고도 했다 모든 속셈은 밤으로 향하고 트랙을 돌던 이는 경로를 이탈한다 공원에는 토끼 한 마리 다람쥐 한 마리 한 쌍이 아닌 한 마리씩 살았고 죽으면 새로운 한 마리가 복원되었다 공원의 방명록은 양측마비의 시간을 붙잡고 밤마다 짖는 개의 울음을 기록했다 두 그루의 나무가 뿌리를 잃었지만 세 명의 사람이 와서 땅을 파고 묘목을 심고 다시 땅을 다졌다
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2012년 작이다. 영화는 가상의 장소 뉴 펜잔스 섬을 배경으로 하며 펜팔인 12살 샘과 수지가 사랑과 자유를 위해 ‘문라이즈 킹덤’으로 탈출하려는 이야기다. 탈출기를 기준으로 영화는 탈출을 시도하는 전반부와 실패로 돌아간 후반부로 나뉜다. 사춘기의 사랑과 방황 그리고 이들을 뒤쫓는 어른들 등 결코 신선하다고 볼 수 없는 소재와 뻔한 전개를 고집하는 대신, 감독은 이를 기반 삼아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들로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는 오케스트라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오케스트라는 악기별로 연주하다
프롬 퀘이사 남의 무덤이 아름답다고 느낀 적 있니. 조심스레 노크해 보면 우아하게 똑똑, 대답해줄 것만 같은 무덤들. 언젠가 나무 사이를 헤매다 모르는 당신의 무덤 위에 드러누운 적 있어. 풀 가까이 귀를 대면 작게 웅얼대는 소리가 들렸지. 내 심장 원하지 않을까? 차가운 뼈 불쑥 튀어나와 손 틈 사이 깍지를 끼워주지 않을까? 최초로, 최초로 말이야. 이미 뿌리를 타고 올라가 삼만 팔천 번째 이파리가 되었을지 모를 당신에게 머리를 가만히 맡기고 싶었어, 외로웠어. 너 우리의 혼이 어디에 있는지 알아? 우리가 다리를 벌리면 딱 그만큼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지만 보는 만큼 알아갈 때가 있다. 일례로 고전 건축 문화에 대해 문외한인 사람들도 조선왕릉의 소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우리의 왕릉이 현재 관점에서 보더라도 대단히 세련된 기억의 공간임을 눈치 챌 수 있다. 입구에 들어서며 왕릉까지 이어진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생각에 잠긴다. 고요하되 스산하지는 않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장엄하다. 그리하여 왕릉의 재실이나 봉분만이 아니라 묘역 자체에서 느껴지는 기풍은 왕릉을 다녀온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이다. 왕조 국가인 조선에서 왕릉이란 단지 죽은 왕 개
어느 날 옆집에 5살 아이가 홀로 이사 온다면 어떨까. 게다가 그 아이가 폭력과 방임 등 아동학대의 피해자라면. 무조건적 호의를 보이기에는 함부로 동정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외면하기에는 계속해서 신경이 쏠릴 것이다. 고민만 계속하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린아이일지라도 누군가의 삶에 관여하는 것은 엄청난 일이기에, 아니 어린아이라서 더욱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겁이 나서 가만히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코타로는 카리노를 만났다. 카리노는 무심하다. 그렇지만 코타로를 외면하지 않는다. 늦은 시각 홀로 집을 나서는
5호선 광화문 역이 있지만 동국대학교에서 가기엔 환승을 해야 하므로 번거롭다. 경복궁역에서 하차한 후 정부종합청사를 따라 걸으면 광화문이 보인다. 광화문 앞에는 세종대로가 넘실대고 그 가운데에는 광화문 광장이 섬처럼 놓여있다. 좌우에는 세종문화회관, 주한미국대사관 등이 나열해있다. 광화문은 오늘날 무언가를 지키는 문의 역할보다는 서울의 랜드마크이자 광장의 배경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자주 보는 것을 잘 아는 것으로 착각하곤 한다. 광화문이 그 예시 중 하나일 것이다. 광화문을 지키고 있는 이순신 동상이 언제 세워졌는지 아는가?
사람들은 삶의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포기를 배운다. 대표적 예시로 2011년도부터 사용되기 시작한 ‘삼포세대’라는 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삼포세대는 연애, 결혼, 출산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이르는 말로, 어려운 사회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포기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 세 가지를 관통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 유조와 마사코는 사랑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요일에 만난다. 패전 후 삭막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가난한 연인인 둘은 그들 나름 즐거운
2013년 9월 1일 ‘지난번 고생하며 며칠 밤 동안 칠해놓은 빨간 방이 흔적도 없이 묻혀 버리면 어쩌지?’ 우려했던 모든 걱정이 지난달에 모두 현실이 되었다. 재개발 구역은 인천 아시아 게임이라는 국가적 경사에 미관을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예상보다 일찍 모든 철거가 마무리되었다. 예상치 못한 빠른 철거로 욕심을 부려서 만들어 놓은 여러 곳의 빨간 방은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2013년 6월 6일 허망하게 사라져 버린 빨간 방의 흔적을 찾아 몇 시간 동안 철거현장을 헤매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철거되어 매몰된 빨간 방
부산에 내려갈 때마다 시간을 내서 꼭 찾는 곳이 있다. 사하구 다대동에 위치한 다대포해수욕장이다. 크고 넓은 포구라는 이름만큼 백사장이 넓게 펼쳐져 있는 곳이다. 겨울 바다를 좋아한다. 어릴 때까지는 마음을 크게 먹지 않아도 바다를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쉽지가 않다. 내가 강이나 호수가 아닌 바다를 좋아하는 건 파도 때문도 있겠지만, 어쩌면 끝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탁 트인 바다를 볼 때 개운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동시에 설명하기 힘든 막막함을 덜컥 느끼기도 하는데, 이 복잡하게 뒤섞인 느낌 때문에 계속
한낮의 연극 오와 열을 맞춰 서서 유리창 너머를 응시한다 장의사들이 있었다 극막을 올리기 전 무대장비를 고치러 온 스태프들 같았다 희고 얇은 천이 솟으면 죽음이 뒤로 가려지고 그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나는 천 바깥으로 드러난 발가락을 노려보았다 이것은 공연 준비 같으면서 취조실에 여러 명의 용의자들과 서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천장이 너무 하얗고 뜨거워서 성가대가 되어서 노래나 부르고 싶기도 했다 천이 펄럭이고 무대 뒤에서 꽃다발을 엮는다 두세 번의 헛기침 침묵의 공회전 나는 분명 신실한 관람객은 아니다 다리가 저려오고 있었다 저쪽에
우리는 넬리의 환상을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혹은 마리옹의 딸 넬리가 자신과 같은 나이인 과거의 마리옹을 만나면서 시공간이 허물어지는 영화를 보고 있는 걸까. 마리옹의 남편은 어떻게 두 사람(현재 넬리와 과거 마리옹)을 한 공간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그러나 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많은 물음을 무색하게 만든다. 미래에서 왔냐고 묻는 어린 마리옹에게 “네 뒤로 난 길을 따라왔어.”라고 말하는 넬리를 통해 알 수 있듯 영화에서 넬리가 겪는 일이 현실인지 판타지인지 구분하거나 현재와 과거를 경계 짓는 일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며칠간 비가 왔고 여름내 돌아가던 에어컨을 껐다. 창문을 여니 물기 있는 바람이 훅 들어온다. 공기가 선선하다. 계절과 계절의 사이 자연스러운 연결은 공기가 한다. 이 공기는 보이지 않지만 알 것 같은 것. 예감이다. 오후에는 모처럼 카메라를 들고 한강을 걸어보려 한다. 나는 일이나 프로젝트가 아닌 일상에서 카메라를 잘 들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어떤 날은 문득 사진이 찍고 싶어진다. 오늘처럼 카메라를 들고나가는 날이 그렇다. 무언가 찍을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준비를 마친 후 집을 나서기 직전, 거실에 앉아 새 필름을 뜯어 카메라
자유가 있는 숲길 안개 가득한 숲길에서 보았어요. 숲으로 갈수록 박자는 빨라져요 가자. 가자. 외치는 숲길. 신발을 거꾸로 신고 숲길을 뛰어다녔어요. 딛으면 딛을수록 꺼지는 땅에 서 있어요. 꺼지는 땅을 밟고 서있어요. 여기서부터 나의 땅이에요. 꺼지는 땅에 서 있는 기분을 아세요. 꺼지는 땅에 서 있어도 밟을 곳이 있다는 마음. 그걸 안심하는 마음이라고 불러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서 있어요. 지겨워도 꾹 참고 잘 왔어요.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겠어요. 여기까지 왔을 때. 이끼가 드문드문 있고 깊어갈수록 침엽수가 많아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