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광등 불빛이 수술실에서 나와 잠에 빠진 의사의 가운처럼 창백하다. 감기는 눈을 비비며 의자에서 일어나 커피 자판기가 있는 입구로 향한다. 아까 2시까지만 해도 시끄럽던 신문사는 조용하다. 여기저기 책상 위에 엎드려 잠든 기자들. 그리고 입을 반쯤 벌린 채 그들의 머리맡을 지키고 있는 빈 컵 라면 그릇들. 입구에 있는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중앙도서관 너머로 보이는 도심의 불빛이 아름답다. 그러나 4월의 공기는 아직도 차다. 이러다가 아침에도 끝나지 않는 건 아닌지. 힘들겠지만 깨워서라도 빨리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어날 때 편집장이 나온다. 눈이 벌겋다. 벌써 이틀째 밤을 새운 탓이다. “좀 서둘러야 되지 않겠어?” “예. 그래야지요.” 맥없는 대답을 뒤로 하고 화장실로 가는 뒷모습이 파지처럼 힘들다.
편집실 유리벽에 걸려 있는 최종 교정지는 아직도 4면. 이번 호는 총 8면인데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걸 보니 지난주 특집호 때문에 너무 힘들을 쏟았던 것 같다. 눈을 감는다. 몇 분이 지나갔을까. “주간님, 5면 나왔습니다.” “그래요. 국장님도 잠시 눈 좀 붙이지.” “괜찮습니다.” 그 역시 잠을 떨쳐 내려는 듯 문을 열고 나간다. 자체 편집회의와 두 번의 정식회의를 거쳐 교내외를 1주일 내내 뛰어다니며 작성한 기사들이 교정지 위에 깨알처럼 펼쳐져 있다. 8시 30분. 이제 한 면만 더 나오면 이번 호 작업은 끝난다. 벌써 몇 잔 째 마신 커피 탓에 공복감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국장과 함께 최종 교정지 8면을 살펴본다. 눈은 황사가 들어간 듯 따끔거린다. “국장님, 이건 제목을 좀 키워야 되지 않을까.” “글쎄요. 편집장, 2단으로 나누고 좀 키우는 게 어떻겠어.” “예? 전 이게 더 강하다고 생각되는데요.” “그래? 편집장 의견이 그렇다면 그대로 갑시다.” 마침내 끝났다. “다들 수고했습니다. 부국장님. 우리 내려가서 뜨거운 해장국이라도 한 그릇들 해야지. 자. 다들 갑시다.” “아닙니다. 저흰 종례를 하고 내려가야 하니 먼저 내려가세요.” “야, 이 독한 친구들아. 이렇게 힘든데 종례까지 해?” 일요일 오전의 교정은 투명하다. 도서관에 올라오던 어느 학생이 인사를 한다. “국장님, 그럼 우리 먼저 내려갑시다.” “아닙니다. 전 집에 일이 있어서 빨리 가는 게 좋겠는데요.” “그래요. 그럼 우린 그냥 갈까?”
유달리 길었던 추위 탓인지 며칠 전에야 개나리가 겨우 꽃망울을 터뜨렸다. 그래서일까. 그날 서둘러 버스에 몸을 싣느라 보지 못했던-잇단 밤샘으로 까실까실한 입에 물을 털어놓고 겨우 수저를 들고 있었을-그들의 지친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아마 그들은 1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꽃샘추위에 파랗게 질린 동악의 밤을 지키다 쓰러져 잠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월요일, 수북히 쌓여 있는 신문 진열대 앞을 무심히 지나치는 학생들 뒤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 장을 집어들고는 강의실로 향할 것이다. 동악의 어둠과 밝음을 굽어보는 거대한 나무로 우뚝한 동대신문의 55년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동악의 역사를 만드는 그대들의 헌신과 고통은 그래서 아름답고 찬란하다. 동악의 푸른 나무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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