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려서부터 낙타를 기르며 자라왔어요. 사막 한가운데에서 낙타가 뜨거운 핏덩이를 쏟아내며 새끼를 낳는 모습도 보았지요. 이제 막 어미의 자궁을 뚫고 나온 새끼는 눈도 뜨기 전에 거친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아야 합니다. 갓 태어났을 때야말로 낙타의 털은 일생에서 가장 보드랍고 윤기 있는, 최고의 한때를 보내지요. 하지만 그 이후로 낙타의 털은 거친 사막의 돌개바람과 자갈, 흩날리는 모래 알갱이들에 시달려야 합니다. 신기하게도 저들의 털은 사막의 모래 빛깔과 꼭 닮아 있어요. 낙타들에게도 보호색이 필요했던 걸까요? 저들에게 위해를 끼치는 게 뭐죠? 사막인가요? 나고 자란, 그리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본연의 터전이 그러하다니. 낙타들에겐 태생, 그 자체가 위험 같아 보여요.
아주 잘 자란 튼실하고 커다란 낙타 한 마리를 푸른 눈에게 주었습니다. 끌고 나온 낙타의 뱃대끈을 넘겨주자 그는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군요. 한 쪽 손에는 자그마한 열매를 조심스럽게 그러쥐고, 다른 한 쪽 손으로는 뱃대끈을 말아쥐며 그는 내 눈을 그윽하게 바라보더군요. 잠시 후, 그는 입꼬리를 올리고 지그시 눈을 감았다 떴습니다. 그리고는 낙타 위에 올라탔어요. 때론 말보다 깊고 유용한 것들이 있기 마련이지요.
푸른 눈의 친구들은 벌써 떠날 차비를 마치고 낙타 위에 오른 상태였어요. 부락 사람들 모두가 그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저만치 낙타를 타고 가면서도 몸을 외틀어 끊임없이 인사를 하던 그들은 이내 모래바람의 뒤편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모래 장막의 반대편에서 손을 흔들던 사람들도 그들이 보이지 않자 모두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지요. 부락 근처에서 얼마 가지 못했을 텐데도 막상 눈앞에서 사라지고 나니 그들이 사막의 어느 길목, 어느 레그와 넵카를 건너고 있을지 까마득하기만 하더군요. 우리 속담에, ‘사하라에서는 언제나 자신에게 불리한 우연만 생긴다.’ 라는 말이 있어요. 여행 도중 낙타 코에 꿴 케자마 끈이 끊어져 버리거나, 밧줄에 묶은 게르바 주머니가 낙타 배 밑에서 떨어져 버린다든가 하는 일이 그들에게 생기지 않길 바랄 뿐이었죠. 내가 그들에게 빌어줄 수 있는 것은 그게 전부예요. 정작 부족 전체가 큰 이동을 해야하는 상황에 우리들도, 스스로의 행로에 바랄 수 있는 것들이라곤 그런 정도뿐이니까요.
내 또래의 아이들을 포함해 마을의 여자들은 모두 오글라에 받혀진 물을 퍼담기 위해 조금 먼 곳으로 나왔습니다. 그들이 떠나가고 얼마 후, 남자들도 서둘러 캐러밴을 꾸렸습니다. 새로이 정착해야 할 수맥지대를 탐색하러 나가는 남자들의 뒷모습은 방금 전 길을 떠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막에서 길에 오르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언제나 서로들 닮아 있습니다. 보는 이들의 눈이 닮아가는 걸까요? 만약 이번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버지의 말대로 우리 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턴가 오아시스 주변의 수맥들이 마르기 시작하더니 도처에 널려있던 낙타풀 지대도 점점 좁아졌어요. 결국 지금은 이렇게 빗물받이 웅덩이에 괸 물이나, 조금씩밖에 솟지 않는 오아시스 물을 얻기 위해 하루 종일 기다려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열두 살이 되면서부터 부족 전체가 길을 떠나야 하는 큰 이동은 없었는데. 우린 너무 오래 살았나봅니다, 한 곳에서.
처음 이곳에 터를 잡던 때가 생각나요. 전에 머물던 곳에서 이동을 위해 이곳의 수맥을 살펴보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를 비롯해 탐색을 다녀온 대다수의 남자들은 이곳이 오래 머물 곳은 아니라고 말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길어야 넉 달, 아니면 그보다도 더 빨리, 언제든 물이 다 하면 다시 이동을 하리라 생각하고 있었죠. 우리는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머무르고, 또 떠나기를 반복합니다. 영원히 샘솟는 오아시스는 없기 때문이죠. 시간의 유예만이 있을 뿐이에요.
와서 본 이곳은 생각보다 수맥이 넓게 자리잡고 있더군요. 운 좋게도 오아시스마저 스스로 깊어지고 있는 중이었고요. 사막에서의 일이 늘 그렇듯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행운과 불운은 함께 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어느 때보다 풍족하고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 둘씩 아이를 더 낳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흙담집들을 비롯해 양과 낙타, 야크를 칠 우리의 규모도 점점 늘려갔고요. 어머니는 방금 전에 이렇게 말했답니다. “우리는 한 주먹 이상의 모래를 움켜쥐고 있었던 게다.” 여기에 있는 동안 너무 많은 것을 부려놓고 살았다는 걸 말하려는 거겠죠.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게 곧 밤이 찾아올 것 같군요. 사람들도 돌아갈 차비를 하기 시작합니다. 지겨운 기다림 끝에 얻어낸 물의 양은 얼마 되지 않네요. 어머니와 나는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모래 위에서 걸음을 빨리 합니다.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내가 옆에서 물었습니다.
“글쎄다. 물이 있고 모두가 함께 살 수 있는 곳이라면야 어디든…….” 오해입니다. 어머니 당신은 나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어요. 나는 수맥지대를 탐색하러 간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의 안부를 묻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랬다면 이렇게 물었겠죠. ‘언제쯤 올까요?’
나는 다시 오지 않을 그들의 ‘어디로’ 가 궁금했던 겁니다. 나는 모래바람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던 그들의 행로가 궁금했습니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역시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지금, 방향 없이 떠나게 될 당신과 나는 살면서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겁니다.

열여섯 살이 되도록 나는 단 한 번도 푸른 눈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맨 처음, 나는 그의 크고 그렁그렁한 푸른 눈동자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커다란 물방울이 사람의 눈 안에 박혀 있는 줄 알았거든요. 일행을 데리고 우리 부락 안으로 들어온 그는 몹시 지친 기색이었습니다. 약간의 긴장과 경계 그리고 간절함이 그에게서 느껴졌습니다. 그는 아버지 앞에 서자마자 그 큰 눈을 껌벅이며 찬찬히 손동작과 발동작을 해 보였지요. 푸른 눈의 옆에 선 두 남자들 역시, 푸른 눈을 도와 그와 같은 동작을 해 보였습니다. 그들이 내뱉는 토막말이나 괴이한 몸짓들은 아버지는 물론, 그곳에서 푸른 눈 일행을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 중 누구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낯설었거든요. 하지만 아버지는 이내 “도와줘라.” 라고 짧게 말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들이 먼저 이쪽의 말을 알아들었단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서로의 어깨를 가볍게 치고 웃어 보이기도 하더군요. 아마도 그들은 그 순간, ‘살았다’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제일 먼저 살핀 건 그들의 낙타였습니다. 아주 고되고 먼 여행길이었다는 걸 가뭇없이 사라진 낙타의 혹이 말해주고 있더군요. 낙타는 오랫동안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고들 하지만 영원한 건 없어요. 고작해야 사나흘이죠. 오랜 장거리 여행으로 비축해 놓은 영양분을 다 써버리고 나면 낙타의 혹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아집니다. 그들의 낙타는 몹시 지쳐 있었어요. 우리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푹 하고 쓰러지더니 네 다리를 마구 흔들며 긴 울음을 울었습니다. 얼마나 가엾던지 나도 덜컥 울음부터 나올 뻔했습니다. 낙타가 울자 우리 안에 있던 다른 짐승들도 함께 울기 시작하더군요. 아무리 아파도 아픈 기색을 하지 않는 낙타는 죽는다, 죽는다, 단 한 번도 죽는다, 말해주지 않고 그냥 죽어버립니다. 나는 그렇게 죽어 없어진 낙타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가만히 낙타의 다리를 묶어주고 물과 먹이를 먹였지요. 그러자 몸의 떨림이 잦아들고, 조금씩 진정이 되는 것 같더군요. 다 닳아 없어진 녀석들의 발바닥에 새 천을 덧대주고, 우리를 나올 때까지도 짐승들은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음울한 울음으로 그날 밤 사막은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습니다.
다행히도 낙타는 사흘 지나 기력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나는 걱정이 많았어요. 이대로 저들의 낙타가 모두 죽어버리는 건 아닌지. 사막에서 낙타를 잃는다는 건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절대 절망입니다. 차라리 당장에 물이 떨어져 버리는 게 낫겠지요. 어차피 우리 모두가 사막에서 찾고 있는 것은 ‘물’ 이니까요. 숨겨진 오아시스가 없다면 사막의 길은 계속되지 않을 겁니다. 계속되는 그 길 위에서 낙타는 살아있는 자신 다음으로 중요한 셈이지요. 나는 아직도 갈이 멀기만 한 그 푸른 눈 일행에게, 그저 떠날 수 있을 만큼의 희망이라도 주어지길 바랐던 겁니다.
부락의 일이라면 뭐든지 잘 돕고 따르려 했던 그들은 이곳에 있는 동안 사람들과 아주 잘 어울려 지냈습니다. 아버지는 간혹 부락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들과 함께 응고시킨 양젖과 모래 속에 넣고 잘 구운 케세라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지요. 모인 사람들은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고 춤도 추었어요. 그때만큼은 누구도 새 정착지와 이동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어요. 그래서 즐거운 시간이었죠. 어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우리들은 만나기만 하면 그 푸른 눈 일행에 대해 이야기했답니다. 이 이방인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잡담 말고는 지금 우리에게는 그 어떤 일도 주어지지 않았다는 듯이. 세 명의 이방인 중 우리에게 가장 많이 이야기된 것은 단연 푸른 눈이었습니다. 덩치가 커다랗고 하얀 남자는 일을 잘했고, 피부색이 비교적 검고 날렵했던 남자는 노래를 잘 불렀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푸른 눈 사내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말도 잘 하지 않았고 나를 도와 우리 안 청소를 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일도 하지 않았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습니다. 푸른 눈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은 참으로 막연하고 맹목적인 것이었습니다. 나는 종종 아저씨나 아줌마, 그리고 친구들에게 물어봅니다. “왜 저 푸른 눈을 좋아하세요?” 내 질문에 제대로 된 답변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웃기만 하더군요. 나는 그 사내가 ‘푸른 눈’ 을 가지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를 압도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푸른 눈 사내는 나를 도와 가축들을 돌보는 일을 했어요. 함께 낙타풀을 뜯기도 하고 야크와 양들의 똥을 모아 불을 지피는 일 등을 거들었지요. 나는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인지 따위에는 별 관심이 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하나. 그는 왜 푸른 눈인지가 궁금했습니다. 그것에 관하여 나는 그에게 아무런 답변도 듣지 못할지 몰라요. 누구든지 태생의 문제 앞에서는 입이 다물어지기 마련이거든요. 하지만 나는 낙타가 왜 혹을 가지고 이 사막에 태어났는지 알고 있어요. 모래 빛깔과 사막의 비탈진 언덕을 꼭 닮은 낙타의 혹은 사막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자기 보호막인 거지요. 그에게도 묻고 싶었습니다. 당신을 위협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무엇이 당신의 눈을 이토록 푸르게 만든 거지요?

게르바 주머니에 물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알레그에서 열흘을 달려 타칸트 산맥까지 왔지만 그들은 중도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급작스런 돌개바람의 출현으로 시간을 많이 지체했다. 에일런은 지도를 통해 길의 방향을 가늠하려 했지만 거센 돌개바람이 이곳저곳에 모래기둥을 세우고, 비탈진 골짜기와 둥근 계곡 등의 지형을 바꿔놓은 탓에 그는 쉽사리 길을 찾지 못했다. 지도는 언제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미로지(紙)가 될 뿐이었다. 낙타 발바닥에 차고를 새로 갈아주고 먹이를 주는 일부터 가죽부대에 물을 채워두는 일까지, 모두 오아시스를 근방에 두고 있는 취락지대를 찾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한낮의 폭염으로 이미 그들은 몹시 지쳐 있었다. 버만은 더위와 바람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였다. 사막에서는 보통 이러다가 무기력 상태에 빠진다. 무기력 상태에 빠지면 전신이 마비되고 의식을 잃기 시작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에일런은 마땅치 않아도 지금 이곳에서 쉬어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미! 버만! 그만 멈춰 서.” 선발에 서 있던 에일런이 낙타의 고삐를 돌려 지미와 버만에게 소리쳤다.
모래와 자갈로 뒤덮여 있는 레그에 그들은 털 담요와 가죽 천을 깔고 앉아 짐을 푸르기 시작했다. 에일런과 지미가 짐을 푸르는 동안, 버만은 바위에 기대앉아 고개를 떨군 채 가쁜 숨을 몰아쉈다. 단철 접시들을 꺼내고 삼각대에 냄비를 걸었다. 마지막 남은 밀전병을 꺼내자 지미가 에일런을 힐끔 쳐다보았다. “일단 먹자.” 에일런은 짧게 말했다. 설탕과 버터로 반죽한 밀전병을 부치고, 대추야자와 땅콩 몇 개를 꺼냈다. 차를 끓일 만큼의 여유는 되지 않았다. 덩치 큰 버만은 남들보다 곱으로 먹을 정도의 왕성한 식욕을 가지고 있었으나, 사하라에 온 이후로는 갖춘 것 없는 식사에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했다. 열병에 시달리는 버만은 오히려 가장 먹지 못하고 있었다. “먹지 않으면 죽어. 그걸 몰라?” 지미는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래도 버만은 먹으려 들지 않았다. 에일런은 지금 상태의 버만을 데리고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쉬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과 식량은 하루를 버티기에도 벅차 보였다. 하루 빨리 길을 찾아내지 않으면……. 오늘 밤이 고비다, 에일런은 생각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일단 볕을 피해 텐트를 치기로 했다. 버만은 쩔쩔 끓는 몸을 자신의 일인용 텐트 안에 뉘였다. “젠장.” 지미는 버만의 상태가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나빠진다는 걸 느꼈다. “어때 좀?” “아까보다 더 심해졌어. 밥 먹기 전에는 그래도 말도 좀 하고 그랬는데. 아주 정신을 못 차려. 마비가 시작되려는지 움직이는 것도 슬슬 이상하고.” 엄지와 검지 사이로 턱을 매만지며 지미가 대답했다. “차를 끓여. 한 컵만. 난 좀 돌아보고 올게. 혹시 그게 있으면 구해오고.” 에일런은 열매 하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뭘 말하는 거지? 대체 어딜 간다는 거야?” 지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에일런은 낙타 배에 매달린 자신의 게르바 주머니를 던져주고 낙타의 고삐를 틀었다. 왔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 그는 달려갔다. 그가 사라지자 지미는 세 게르바 주머니를 한데 모았다. 보나마나 버만의 것은 비어 있을 것이다. 녀석은 셋 중에서도 가장 참을성이 없었다. 에일런의 게르바를 열었다. 반이 조금 넘는 양이 남아 있었다. 지미는 우선 에일런의 것을 따라 부었다. 자신의 게르바를 만지작거리던 지미는 모자른 양만 자신의 것에서 따라붓기로 했다. 등 뒤로 가쁜 기침을 내뱉는 버만의 앓는 소리가 칭얼대듯 지미의 귓전을 맴돌았다.
멈춰 섰다. 방향을 잡기 위해 오랫동안 사막을 살폈지만 메즈베드(흔적이 나 있는 낙타 길)는 보이지 않았다. 이 길을 지난 자가 아무도 없다는 말인가? 에일런은 일순간 자신이 혼자라는 공포를 느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지평선만 보일 뿐. 낙타가 지나간 발자국 하나, 메마른 나무 끝에 달린 열매 하나 발견할 수가 없었다. 무더운 공기가 꿈틀거릴 때마다 에일런의 눈에는 물기둥과 함수호가 비쳤다. 하지만 모든 것은 헛것이다. 내리쬐는 태양빛으로 지면의 온도가 80℃에 달하면 사막에서는 누구나 환영에 시달린다. 눈앞에 떠오르는 환영들이 다 비슷비슷한 이유는 사막에서는 모두들 같은 것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에일런은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물기둥과 함수호들이 다가가면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다. 다가가면 사라지는 것을 좇기 위해 에일런은 지금껏 너무 멀리 왔다. 지미에게 주고 온 게르바 속 물 한 모금이 머릿속에서 간절해졌다. 그 한 모금이 있었던들 눈앞에 저것들을 좇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에일런은 대답하지 않기로 했다.
알제리 령 부근에서 만난 타자칸트 족의 아랍 소녀는 낙타에게 몸을 내맡기는 법을 알려주었다. 사막을 건널 때, 여기가 끝이었으면 싶을 만큼 아득한 순간. 아무것에도 기댈 수 없는 절망적인 순간. 그런 시간이 찾아오거든 낙타 위에 몸을 숙인 채, 낙타의 목을 가만가만 쓸어주라 했다. 에일런은 도저히 이대로 사막을 건널 힘이 없었다. 소녀의 말대로 그는 낙타의 목을 쓸어주며 우어― 우어― 깊은 울음을 울었다. 보다 간절하게. 보다 구슬프게. 그러자 낙타가 부름에 대답하듯 고개를 천천히 뒤로 돌렸다. 불룩 튀어나온 커다란 눈을 끔벅였다. 우어― 우어―(제발 가죠 낙타야) 우어― 우어―(나는 더 이상 너를 몰 힘이 없단다) 그러자 정말로 낙타가 제 알아서 걷기 시작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낙타가 방향을 틀고 종종 위치를 바꾸며 사막을 걸어갔다. 에일런은 양손을 축 늘어뜨리고 낙타에게 몸을 내맡겼다.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아랍 소녀는 에일런과의 대화에서 자신의 부족 언어로 말하곤 했다. 그것은 에일런 역시 마찬가지였다. 알아듣건 못 알아듣건. 그들의 대화엔 서로를 이해시키기 위한 손짓이나 발짓 등은 사용되지 않았다. 먹이 주는 일을 마치면 둘은 우리 밖 차양 밑에 나란히 앉아 사막의 끝을 바라보며 해가 질 때까지 이야기했다. 차라리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에 마음이 놓이는 듯했다. 매번 떠나야하는 일이 못 견디게 괴롭다거나, 이런 삶을 살아야하는 내 자신이 불행하다거나,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하지만 매번 하는 이동인데도 길 위에 설 때마다 두려운 건 사실이에요. 이 길이 내 생의 마지막이거나, 내 부모의 마지막일 수도 있겠다 싶으면, 나는 차라리…… 하고 생각해버리죠. 하지만 그러다가도 다시 이를 악물어요. 쥐나 뱀이나 대충 잘라서 그냥 날로 먹는 건 정말 못하겠더라. 볕에 잘 말려뒀다가 먹는 게 그나마 나아. 지미 그 녀석은 잡아주는 족족 잘도 받아먹지? 난 부족들이 살을 발라서 줄 때도 이건 쥐다, 되새기는 걸 잊지 않지. 까딱하다간 지미처럼 내가 뜯고 있는 게 스테이큰 줄 착각한다니까. 그렇게 되는 건 정말 싫다구. 이곳에서 태어나는 것들은 모두 사막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뭐든 남들과는 다른 한 가지씩을 갖고 태어나요. 동물도 그렇고 식물도 그렇고 사람도 마찬가지죠. 나는 뭐를 갖고 태어났을지 궁금하지 않아요? 나에게는 눈이 있어요. 나는 어려서부터 낙타를 기르며 그들이 나고 죽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았어요. 이동 때마다 버티지 못하고 죽어나가는 사람들, 그리고 길을 잃어 홀로 떨어져 나가는 사람들, 모두 보았지요. 나는 그들의 죽음을 알고 있었어요, 이미. 내게는 보이거든요, 죽음이. 나는 간혹 뜻하지 않는 상황, 상대에게서 죽음을 읽어내요. 아침에 양의 젖을 짜다가도 느닷없이 마을의 한 남자에게서 죽음의 기운을 느껴요. 그가 죽어요. 그 말고도 많은 이들이 그렇게 죽었죠. 물론 사막에선 많은 이들이 우연에 죽을 수 있어요. 하지만 난 그 무수한 우연의 일치들에 몸을 떨어요.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는 막연한 이미지들이 그렇게 내 앞에서는 사람들의 얼굴 위로 겹쳐져요. 죄를 지어본 적 있니? 사막이란 곳은 도무지 죄를 질 만한 그 어떤 빌미도 제공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아무리 설명해도 너와 너희 부족들은 결코 알 수 없을 거야. 세상은 이곳과는 참 다른 곳이야. 죄를 짓지 않곤 살 수 없지. 나는 그곳에서 죄짓지 않고 사는 인간을 본 적이 없어. 이건 맹세할 수 있다구! 나도 마찬가지야. 내가 태어나 이제껏 한 것들, 본 것들, 낱낱이, 하나도 빠짐없이 알게 된다면 넌 아마 몸서리 칠 거다. 안다는 것에 대해서. 이봐요. 내가 지금 당신의 그 푸른 눈에서 무엇을 본지 알아요?
에일런을 업은 낙타가 네 다리로 터덜터덜 사막의 모랫길을 걸어왔다. “에일런!” 달려온 지미가 소리쳤다. “대체 어디까지 갔다 온 거야? 어? 혼자서 뭘 어쩌겠다고! 이봐, 에일런! 에일런! 정신차려. 고개를 들라구!” 지미의 부축을 받고 에일런은 낙타 위에서 내려왔다. “많이 지쳤을 거야. 얼른 재워…….” 에일런은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지미에게 속삭였다. 스르르 무너지며 낙타 위에서 내린 에일런은 지미의 도움으로 텐트 안으로 몸을 옮겼다. 휑하니 사라져서 뭘 하느라 이런 꼴로 나타났느냐는 지미의 다그침에도, 에일런은 한마디도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머리가 핑핑 돌고 입 안이 굳어지는 듯 혀가 자유롭게 움직이지 않았다. 에일런은 자신이 얼마 동안 사막에서 길을 헤맸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언제 어디서부터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는지, 어떻게 돌아왔는지 그의 기억 속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은 그저 낙타 위에서 잠시 잠에 들었을 뿐이고, 등짝 위로 쏟아내리는 무참한 볕의 쬐임에 뜨겁다 아프다, 느끼다가…… 지미였다.

두 마리의 낙타를 잃었습니다. 하나는 아주 어린 새끼였고 하나는 그보다는 조금 더 큰, 그래도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낙타였습니다. 이동 십사 일째에 우리는 벌써 손 안에 쥔 것들을 조금씩 잃어가기 시작합니다. 한 주먹 이상의 모래를 쥐고 있을 때에도 그것은 소리 없이 새어나가더니, 마지막 한 주먹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미세한 모래알들은 힘주어 쥐고 있으면 천천히, 느슨해진 마디 틈 사이로 유유히 빠져나갔습니다. 사막을 다 건널 때쯤 우리 손에는 얼마만큼의 모래알이 남아 있을까요?
우리 부족들이 다같이 살 수 있을 만한 너른 오아시스 지대는 찾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그곳은 쉼터에 지나지 않아요. 그곳의 물은 취락에 필요한 만큼이 되지 않거든요. 탐색을 마치고 돌아온 아버지는 부락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통보했어요. 그래도 우리들은 그곳으로 이동을 감행해야 했습니다. 물이 말라 더 이상은 남아 있을 수 없었거든요. 일단 그곳에 가 닿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살아서 간다는 것. 다른 모든 것은 차후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가 닿기도 전에 우리는 벌써부터 죽어가는 낙타들을 만난 겁니다. 돌개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었지요. 어미의 꽁무니를 따라 잘 좇아가던 어린 낙타가 갑자기 자리에서 꼬꾸라졌어요. 그리고 이내 죽었지요. 가던 길을 멈추고 우리는 죽은 낙타를 모래 언덕에 묻어주었습니다. 새끼를 잃은 낙타는 오랫동안 그 자리를 뱅뱅 맴돌더군요. 어른들이 말씀하시길, 낙타는 사막 위에서 제 새끼가 죽으면 그 장소를 죽을 때까지 기억한다고 하더군요. 사막을 건널 때 낙타가 이유 없이 슬피 울기 시작하면, 아마도 지금 녀석이 밟고 있는 이 땅이 제 자식의 무덤이겠구나…… 나는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필두로 해서 길게 늘어선 메아리스트(낙타를 몰고 가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부터 타들어가는 듯 보였습니다. 꼬리를 물고 가는 사람들의 속도가 자꾸 늦어지고 있던 거죠. 아버지는 종종 행렬의 순서를 바꾸어가며 지친 사람들을 다독였습니다. 나도 낙타 위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뱃대끈을 쥐고 있었어요. 그때 아버지가 손을 높이 들더니 크게 원을 한 번 그리고는 앞쪽으로 길게 내뻗었어요. 목적지가 눈앞에 있다는 신호예요!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은 턱 밑까지 차오른 가쁜 숨을 안도와 기쁨으로 더 깊이, 더 높게 끌어올려 길게 내뿜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남자들은 우선 수맥부터 찾았습니다. 수맥을 뚫고, 그 갱 안으로 물을 길어올리는 데 쓰는 가죽용기를 내려 물을 퍼담았습니다. 여자들은 짐을 내려 천막을 치기 시작했지요. 우리들은 분주하게 손을 모아 재빨리 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건 사람뿐만이 아니었어요. 고삐와 뱃대끈을 끌러 낙타들을 인근 수풀지대에 놓아주었습니다. 여린 잎의 풀들은 물론, 메마른 나무의 잔가지까지 두터운 혀로 감아치는 낙타들의 모습은 비로소 살아있는 것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고된 길을 달려온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천막 안에서 달콤한 휴식에 들어갔어요. 아빠가 딸아이의 가시 박힌 손등을 살펴주거나, 아내가 남편의 부서진 낙타 안장을 고쳐주고, 온 가족이 가로누워 혼곤한 잠에 빠져드는 모습들. 나는 그들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어머니가 저 멀리에서부터 나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었거든요. 나는 어머니가 얼핏 대추열매들을 본 것 같다는 언덕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어머니를 따라 간 그곳엔, 정말로 커다란 대추나무가 서 있었습니다. 몇 그루의 대추나무에 다다귀다다귀 붙어 있는 대추열매들을 보자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이 피어났습니다. 어머니와 나는 정신없이 열매를 따기 시작했지요.
“내일 식사 때에 조금 내놓고 나머지는 이동할 때 또 나눠먹자.” “대추나무가 자란다면 다른 나무 열매들도 더 있지 않을까요?” “글쎄다. 찾아봐야겠지. 하지만 혼자 가는 것은 안돼. 알고 있지?” “네에…….”
나는 순한 양처럼 대답했습니다. 혼자 떨어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혼자가 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줄을 맞춰 이동할 때에도 우리들은 수시로 자신의 뒷사람을 확인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낙오자가 생기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하나는 꼭 대열에서 소리 없이 사라지지요. 그들이 어떻게 되었으리라는 것쯤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나는 과연 이런 일들은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일지, 아니면 단지 부주의했던 탓이었을지 생각해 봅니다. 내가 만약 그때 뒤를 돌아보았더라면. 당신이 만약 그때 무언가를 알아차렸다면. 뭐가 달라졌을까요?
내가 그 사내에게서 본 것은 푸른 공포였습니다. 공포가 색을 띨 수 있다는 것은 그때 처음 알았지요. 너무 맑아서 안이 훤히 다 들여다보이는 그의 눈에는 이미 결정으로 굳어진 생의 공포들이 오도도 박혀 있었습니다. 나는 허락도 없이 그만, 그것들을 모두 읽어내 버렸습니다. 결이 거친 공포의 자흔들은 화석처럼 그가 살아온 삶을 비춰주었습니다. 그는 우리 아버지처럼 무리의 중심을 맡고 있었죠. 언제나 자신감 넘치는 행동으로 일행들을 대했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가 하는 말 역시, 그의 단단한 몸짓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나와 있을 때만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 앞에서 그는 우물거렸고, 자신 없었고, 작아졌고, 곧잘 숨죽였습니다. 그는 내 앞에서만큼은 두렵다고 소리내어 울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 이외의 것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살아있어서 공포스럽다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그때 나는 그에게 레몬 트리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 이하생략 -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