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2년, 조 교수가 석사학위를, 여동생 조소영 동문이 학사학위를 받은 기념으로 함께 찍은 가족사진.


자라고, 배우고, 이제는 가르치는 곳. 너무나 일상적이기 때문에 특별하지 않은 곳.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이곳에 있었기에, 존재가 너무나 당연해 마치 ‘중력’과 같은 곳. 조준형(식물생명공학) 교수에게 우리학교는 그런 곳이다.
학교는 언제나 그에게 그 자체로서 마음이 편한 곳이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집안을 지탱했던 원천적인 힘도 우리학교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더욱 고맙기도 하고…”
조 교수의 아버지인 조병찬 동문은 우리학교 농학과를 졸업하고 생명자원산업유통학과의 교수를 지내 지난 2004년 퇴임한 명예교수이다. 또한 어머니 이미자 동문도 우리학교 국문학과를 1967년 졸업했다. 조 교수의 동생들인 조소영 동문과 조제형 동문 역시 각각 우리학교 동양화학과 88학번, 불교미술학과 91학번이다. 조 교수의 네 가족이 모두 우리학교 출신인 것이다.
조 교수의 부모님은 우리학교 재학 중 만나 좋은 만남을 갖게 됐다. “코흘리개 때부터 학교에 왔다갔다해서 그런지, 학교가 ‘우리집’ 같았다”고 한다. “여름에는 동생들과 장충수영장에서 살다시피 했다”며 즐거웠던 그 때를 떠올리는 조 교수. 대입 때도 ‘내 집 간다’는 생각으로 부모님, 선생님과 별 실랑이 없이 우리학교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 점에서는 동생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고.
그러나 부모님과 한울타리에서 지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제약이 많은 일이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학교에 어떤 일이 있을 때 아버지의 이름을 봐서 내 자신을 낮춰야 할 때가 많다”고 한다. 조 교수는 “학창시절, 정치집회를 구경하거나 쉬는 시간에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할 때, 아버지와 마주쳐서 난감할 때가 많았다”며 쑥스러운 듯 웃는다. 집에서도 아버지와 아들로서보다, 교수와 학생으로서 다투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학교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아버지에게 푸닥거리했다”며 “새벽까지도 의견대립이 계속돼 어머니께서 피곤할 때가 많았을 것”이라고.
하지만 조 교수는 오히려 이런 부딪침으로 서로에 대한 이해가 쉬워진 것 같다고 한다. “사제간이나 선후배간이나 서로에 대한 애정만 있다면, 갈등이 있어도 극복할 수 있다”며 “윗사람에게 얘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조 교수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다른 일을 하다가 7년 만에 학교에 돌아왔다고 한다. “학교의 울타리를 떠나 생활해 보니, 동국의 존재가 정말 크더라”라고 말하는 조 교수. 졸업을 했다고 학교와의 인연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연어의 회귀본능같은 것이 강하게 작용하는 듯하다고. “동문들의 연계가 단단해지도록 학교가 힘써주기를 바란다”고 한다. 우리도 그처럼 ‘동국가족’이라는 마음으로 학교의 존재감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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