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신호등이 버릇처럼 켜지고
중년 남자와 발뒤꿈치 망가진 여자는
서둘지 않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남자 어깨에 매달린 여자 숄더백에는
점이 지워진 마릴린먼로가 쌀밥처럼 웃는다

중년 남자의 집에는 오래된 여자가,
밥통 취사단추를 버릇처럼 누르고
용달차를 불러 세워 사다 놓은
열무 두 단을 신출나게 다듬는다

오래된 여자의 다리 사이에는
땅에 묻고 잊어버린 장독보다도
오래된 동굴이 있다
남들이 들르지도,
아이가 자라지도,
달마다 흐르지도 않는 옛 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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