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지구상에 어느 특정 문화만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언어도, 피부색도, 성격도, 생활환경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넓은 지역에 걸쳐 존재하는 이상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자유무역’을 필두로 한 세계화는 경제 분야를 넘어 문화 분야에서도 강대국 문화로의 획일화를 부추기고 있다. 서구 대자본에 밀린 약소국의 문화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때에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이하 문화다양성 협약)’이 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 총회를 통과해 문화계가 반기고 있다.
세계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문화다양성 협약은 지난달 20일 열린 제33회 총회 표결에서 찬성 148, 반대 2(미국, 이스라엘), 기권 4의 압도적인 표차로 채택된 것이다.
협약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 △소수자의 문화 표현의 권리 △언어를 비롯한 포괄적 의미에서의 문화 다양성 보장 등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각 국의 문화정책 수립 권리를 국제법으로 보장함에 따라 문화의 획일주의를 저지하고 각 국가가 자국 문화보호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일반상품과 구별되는 문화상품과 문화서비스의 특수한 성격을 인정받아 각종 다자간·양국간 통상협정에서 문화상품을 예외로 할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를 얻게 됐다. 이와 관련해 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민예총) 정책기획팀 안태호 간사는 “협약의 통과는 미국주도의 세계화가 가져온 부작용을 반증해주는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스크린쿼터 등의 활동이 정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국제적 상황으로 입증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협약이 국제법으로 효력을 발휘하려면 최소 30개국 이상이 비준해야 한다. 더욱이 비준하지 않은 나라에 대해서는 구속력을 갖지 못하는 만큼 우리나라의 국회비준 통과가 시급한 실정이다.
이에 지난 9일 국회에서는 문화관광위원회 소속 4당 의원과 세계문화기구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세문연), 스크린쿼터지키기 영화인 대책위(이하 영화인 대책위)가 참여한 가운데 ‘문화다양성 협약 국회비준 통과’를 결의하는 간담회 및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날 행사에서 이들은 모두 문화다양성협약의 국회비준 필요성에 대해 강력하게 언급하며, 2006년 2월 협약의 국회비준 실현을 촉구하는 ‘국민의 대의기관인 대한민국 국회가 문화국가의 자존심을 살리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는 문화다양성 협약의 의의와 나아가 국회 비준과 올바른 실행을 위한 △공공 문화 인프라 구축 △인력양성 및 법규와 제도 정비를 위한 노력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안태호 간사는 이번 간담회 및 기자회견과 관련해 “문화계와 각 정당의 의원이 함께 공동성명을 낸 자리인 만큼 국회 안에서도 협약의 국회비준에 대한 의지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의 통상압력을 우려해 협약에 찬성해놓고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는 우리나라 정부의 태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다. 또한 추진기관이 외교통상부라 문화부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도 있다.
이에 민예총, 영화인 대책위 등 문화예술분야 29개 단체로 구성된 세문연은 국회 비준을 위한 기자회견 등의 활동을 지속할 예정이다.
자유주의 시장경제를 표방한 미국의 대외적인 무역정책이 지나치게 자국의 이익에만 부합된다는 것은 세계적으로 계속 문제시되고 있다. 이렇듯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기보다 자본의 논리만 앞세운 ‘무지막지한 힘’에 대응해, 정부차원의 확고한 의지와 개선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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