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상황을 선택할 수는 없다”(맑스)는 말처럼 지도자들이 국익에 최선인 국가 전략을 깨닫기는 쉬우나 그런 전략을 위한 상황조성은 어렵다고 본다. 바로, 일본 지도자들이 국익에 최선인 동북아 세력판도를 찾아내기는 쉽지만 그런 세력판도를 위해 동북아 국가들을 움직이기는 쉽지 않다.
헌데, 일본이 동북아 4강의 역학구도에 변화를 추구하고자 한다면 일본은 너무나 쉽게 ‘상황’을 조성할 수가 있다. 바로,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 낙인은 현재 군사력을 증강하는 일본이 과거처럼 군국주의를 지향할 것이라는 예측을 동북아 국가들에 줄 것이며, 이는 일본이 쉽게 동북아 세력판도 변화를 위한 상황조성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일본이 국익을 위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을 위해 세력판도 변화를 추구하는 것인데, 동북아 국가들이 이런 상황을 조성해 주는 것이기에,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와 동북아 국가들의 학습된 패턴 그리고 낙인은 일본의 국력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일본이 원하는 동북아 세력판도 변화가 결과적으로 일본의 국익에 최선일지는 알 수 없으나, 현재 일본의 국력을 가지고 동북아를 좌지우지 할 수 있다는 것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100여 년 전처럼 동북아 국가들이 이런 일본에 대항하는 것이 민족주의로 고립을 자초하고 평화라는 명분으로 국제사회와 연대하려 하지 않는 것은 더욱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즉, 일본의 군국주의가 세계평화에 반하는 것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세계평화라는 명분으로 국제사회나 동북아 국가들이 연대하려 하지 않고 민족주의에 호소하며 평화에 반하는 자충수를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동북아 국가들이 국제사회에 평화라는 명분을 주장하려면 자국부터 지금껏 평화노선을 추구했어야 하는 것이기에, 사실 동북아 국가들은 평화라는 명분을 주장할 정당성은 취약한 것이다. 바로, 100여 년 전과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즉, 국제사회에 평화라는 명분으로 일본에 대처하지 않고 일본 군국주의에 희생된 전례가 있는 동북아 국가들이 정작 일본의 군국주의 성향을 낙인찍었을 뿐 자신들에게 평화라는 명분이 취약함은 낙인되어 있음을 망각하는 것이다.
일본의 군국주의보다는 동북아 국가들에게 평화라는 명분이 취약한 점은 일본으로 하여금 동북아 세력판도 변화를 좌지우지 하게 하는 것이다. 이제라도, 북핵, 북한인권 그리고 통일이 동북아 평화에 기여한다는 명분으로 우리의 전략을 추구하는 것이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처하는 최선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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