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전 1년간 끌어온 쌀 개방 협상이 마무리됐다. 협상의 결론은 국내 쌀 시장 완전개방을 다시 10년간 늦추는 대신 내년부터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물량을 매년 2만 톤씩 늘려 10년 뒤인 2014년에는 올해 수입량(20만 5천톤)의 2배인 41만 톤의 외국쌀을 사들이도록 한 것이다.
또한 올해에는 수입쌀의 10%(2만 2천500톤)를 할인점이나 동네 소매점 등에서 포장한 상태로 팔고, 2010년까지 그 비율을 30%로 높이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쌀 협상 카드

우리가 얻어낸 상기의 협상이 이상적이고 합리적인지 게임이론을 통해 검증해보자. 먼저 게임이론이란 경쟁 주체가 상대편의 대처행동을 고려하면서 자기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행동을 분석하는 이론이다. 즉, 불확실성이 높을 때는 위험과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자기 자신이 최대한의 이익을 얻도록 행동하기 위한 원칙이다.
먼저, 우리에게 주어졌던 카드를 분석해보면 첫째, 쌀에 대한 관세화이다. 쌀 시장을 개방한다는 의미이다. 높은 관세를 매겨 수입한 쌀을 소비자들이 소매점에서 사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작년기준으로 5%의 낮은 관세를 매겨 중국·미국 등에서 국내 소비량의 4%에 해당하는 물량을 들여오지만 모두 가공용이다.
관세화를 통해 쌀 시장을 개방하면 국내산의 3~4분의 1에 불과한 외국쌀을 국내외 가격차이보다 약간 밑도는 수준의 관세를 매겨 수입하게 된다. 쌀 시장의 문호는 개방하되, 외국산에 비해 훨씬 비싼 국내 쌀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다.
그러나 관세화의 단점은 쌀 시장 개방 초기에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지만 매년 단계적으로 낮추도록 돼있어 장기적으로는 수입 쌀 값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둘째, 쌀에 대한 관세화 유예이다. 시장개방을 다시 미루는 대신 낮은 관세율을 적용해 의무적으로 들여와야 하는 수입쌀의 규모는 지금보다 늘려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3년 UR(우루과이 라운드)협상에서 쌀 시장 개방을 유예하는 대신 10년간 국내소비량의 1~4%를 수입해야 하는 조치를 받았기 때문에 10년간 누린 혜택을 고스란히 연장시키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관세화 유예의 단점은 국내 쌀 생산량이나 재고가 증가해도 정해진 물량을 무조건 수입해야 하는 점이 부담이다.
마지막 카드는 협상의 결렬이다. 이 경우 무조건 다음연도부터 쌀시장을 자동 개방해야 하므로 논의의 실익은 없다.

왜 관세화 유예안이었나

상기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로 하여금 쌀에 대한 관세화 유예를 선택하게 만든 소지한 카드를 분석해보면 먼저 쌀에 대한 관세화는 WTO의 기본 취지가 시장개방인데다 우리나라는 UR농업협상에서 관세화 유예라는 특례조치를 받은 조건으로 국내 농업의 구조조정을 약속했지만 지난10년 동안 추곡수매가를 26%나 올리는 등 WTO의 취지에 맞지 않는 조치를 취해왔다. 즉, 이는 시장개방에 대비한 경쟁력강화에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쌀의 관세가 앞으로 얼마나 낮아질지는 도하개발어젠더 농업협상에서 결정하게 돼있지만 아직도 지지부진해 관세감축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 것도 합의된 바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쌀을 관세화 할 경우 협상 상대국이 우리나라에 쌀을 얼마나 수출할 수 있을지는 예상하기 쉽지 않다. 우리나라도 관세화시 예상되는 수입량 전망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쌀을 관세화한다면 우리나라는 쌀 시장의 개방정도를 놓고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협상에 임하는 것은 게임이론에 위배되므로 적합하지 않다.
마지막 남은 카드인 관세화 유예라는 카드는 먼저, 도하개발어젠더 협상에서 관세감축 폭이 예상외로 작게 결정될 경우 일본처럼 중간에 관세화로 전환하면 될 것이고, 관세감축 폭이 커진다면 이미 결정된 관세화 유예를 그대로 유지하면 된다. 이와 같이 언제든 관세화로 전환할 수 있는 우리의 권리는 협상대상국에 비해 유리한 입지에 서게 한다.
또한, 수입쌀의 관리가 보다 용이해 쌀 시장 개방에 의한 충격을 완화하고 쌀 산업을 연착륙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수출국들은 관세화 유예 조건의 하나로 수입쌀의 30%를 자유롭게 시판토록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관세화를 하면 수입쌀의 50% 이상이 민간에 의해 시판될 것이므로 수급조절과 가격안정에 더 큰 한계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불확실성이 높을 때는 위험과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협상하는 게임이론에 입각해 현 상황을 분석해보면 정부가 선택한 관세화 유예안이 최선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10년 뒤를 대비해야

이제 쌀 협상은 끝났다. 모두 협상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앞으로 10년 후에 있을 일을 논의해야 한다.
농민단체도 농가에 실익이 있는 쟁점에 역량을 집중하고 또한 우리 쌀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확보할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수입쌀과 우리쌀이 나란히 시장에 나왔을 때 소비자가 결국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가 우리 쌀 농업의 미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앞으로 쌀 가격이 매년 소폭 하락해 수급균형이 이뤄지고 국제가격과의 차이가 줄어 궁극적으로 관세화 할 때를 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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