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김태현 정책실장
최근 잡 셰어링(job sharing)이라는 명분하에 대졸초임 임금 삭감 등이 재계, 공공부문 할 것 없이 전면화되고 있다. 보수언론과 정부는 앞장서서 “잡셰어링, 대한민국의 또 다른 경제브랜드”라고 소리 높여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판 잡 셰어링은 세계어디에도 없는 사기극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서 노동자들의 임금삭감과 인력감축, 구조조정이 전면화되고 청년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불안정한 일회용 일자리와 대량실업에 얽매이게 될 것이다. 

노동자 목소리는 어디로…

한국판 잡 셰어링, 그 시작은 민주노총을 제외하고 한국노총과 경총, 정부와 뉴라이트 계열 시민단체가 주축이 된 2월 23일의 노사 민정합의였다. 이 합의는 “노동자의 임금 삭감이라는 고통전가와 기업의 고용유지라는 어음”을 교환하였고 이에 대해 보수언론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위대한 결단인양 칭찬하기 바빴다.

그러나 이 합의는 노동자는 임금삭감이라는 즉각적 희생을 주는데 비해 과연 기업이 고용유지라는 어음을 실제로 줄 것인지 라는 의문에 직면했다. 한편 민주노총과 비정규직 노동자, 실업자, 진보적 시민단체를 제외한 데서 보듯이 대표성이 없다는 문제 제기를 받았다.

과연, 합의서가 마르기도 전 재벌기업들의 연합단체인 전경련은 즉각적으로 이 임금삭감을 구체화하기로 하였다. 전경련에서는 2월 25일 30대 그룹 채용 담당 임원들이 모여 대졸 신입사원 연봉을 최고 28퍼센트까지 삭감하기로 하고, 기존 직원의 임금조정(삭감)을 통해 만들어진 자금으로 신규직원이나 인턴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정부는 속도전의 명수답게 전경련에 뒤이어 더욱 구체적으로 공공부문의 임금 삭감, 자진반납대열을 새마을 운동식으로 전개하였다. 장차관급 정무직이 10% 봉급 반납을 결의하면서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서울시, 부산시 등 전체 공무원에게 반강제적으로 임금 동결에 이어서 실질적 삭감이 이어지고 있다.

각 부처들은 자율이라는 명분하에 각 부처와 지자체별로 1~5%의 임금을 자진반납, 기부라는 미명하에 삭감당하였다. 행정안전부 홈페이지에 보면 “일부에서는 반강제적인 임금삭감으로 인한 강제적인 정책이라는 불만과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며 그러나 지금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단결과 협동을 통한 ‘나눔’이 아닐까” 라고 강변하고 있다.

짝퉁 일자리 나누기

이렇게 진행되는 한국판 잡셰어링은 왜 허구적인가? 우선 잡셰어링이란 기본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서 일자리를 나누는 것, 즉 일자리 나누기를 가르키는 말이다. 프랑스의 주35시간 법제, 독일의 폭스바겐의 주28시간제 등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땅 한국에서는 일자리 나누기가 아니라 임금삭감이 마치 일자리 나누기의 핵심인양 소개되고 있으니 허구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특히 대졸초임의 삭감은 일자리 나누기와 관계없이 신규취업자에게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불합리한 정책이다.

두 번째로는 임금삭감이 일자리 증가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감소와 같이 진행되는 허구성이다. 통계청의 고용통계를 보면, 지난 2월 총취업자 수는 지난해 2월보다 14만2천 명 감소했다.

더구나 잡셰어링에 압장선다는 한국의 재벌, 1000인 이상 대기업들은 96년에서 2006년사이에 무려 66만개가 넘는 일자리를 파괴시켰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인 셈이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들에게 원래 3년간 달성하기로 했던 공공부문 선진화 13,000명 인력감축 목표를 올해에 달성할 것을 촉구하였다. 한편에서는 잡 셰어링이라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안정된 일자리를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파괴된 일자리에 대체되는 것은 6개월짜리 저임금 일자리인 ‘인턴’사원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일자리주문에 따라 삼성 2천 명, SK 1800명, 현대·기아차 1천 명 등 대기업에서 밝힌 인턴 채용 규모만 1만 명에 이른다.

한 취업포탈에서 상장기업 635개사를 대상으로 신규 채용계획을 조사한 결과는 지난해 정규직 채용규모가 21,961명에서 올해는 13,8430명으로 대폭 줄고 인턴사원은 3,629명에서 올해는 13,472명으로 대폭 늘었다. 전체 채용 규모는 비슷하지만, 정규직 채용감소와 인턴 채용증가로 결국 지난 1년 사이에 괜찮은 정규직 일자리가 1만명 이상 줄어든 것이다.

전 영역에서 ‘인턴’만 호황이며 청년들은 인스턴트 일회용 인턴사원에 만족하라는 것이다. 이 인턴사원제도는 지난 김대중정부 시절에도 정규적 일자리로 전환되지 않는 한시적 불안정 일자리라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명박 정부하에서 ‘화려한 부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기업 배불리기 정책

이에 비해 기업들의 이윤은 여전히 장기호황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10대 그룹의 이익잉여금이 145조 5천억 원에 달하며 2008년 국내 10대 기업의 사내유보금은 17조2천억 원, 현금성 자산은 47조 6천억 원에 달한다.

기업들은 죽는다면서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고 저임금 인턴을 채용하면서 자신들의 배는 불리고 있으니 가히 악어의 눈물의 극치라 하겠다. 기업들은 막대한 재벌곳간의 10% 정도만이라도 정규직 채용확대에 써야 할 것이다.

노동자와 청년의 희생과 고통만 강요하는 엉터리 잡 셰어링 정책을 즉각 중단할 것을 주장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잡 셰어링은 본래의 뜻 그대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일자리 나누기여야 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사회적 제도 마련, 대기업 잉여금의 고용안정기금화를 강력히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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