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규 동문(국문 78졸), 도서출판 해와달 대표

조석규 동문(국문 78졸)

WBC 준결승전이 열린 다저스타티움에 우리 팀이 섰을 때 나는 그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이룰 것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그건, 그들은 이미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결승전에서 이기지 못한 것이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건 이제 지나간 결과일 뿐이다.

이번 대회에서 여러 국민 영웅들이 탄생했는데, 그 중심에는 우리 대학 감독 시절 키워낸 김성한 수석 코치와 함께 노심초사하던 김인식 감독이 있었다. ‘독배’ 라고 모두 꺼리고 만류하던 자리.

그래서 당초에는 2라운드 진출도 걱정되었다. 그러나 아직 뇌경색의 후유증이 남아 있는 그는 ‘나라’ 때문에 그 자리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현역 코치진은 그 혼자뿐. 당연히 그 자리를 맡아야 했던 사람마저 궁색한 변명으로 빠져나간 다음이다.

하지만 정작 대회가 시작되자 그의 선수 기용이나 교체 타임, 야수 위치 선정 등은 상대방에게 두려움을 주었고, 추신수를 밀어부칠 때는 뚝심과 함께 신뢰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돌아오면 적이 되어 자신을 괴롭힐 김광현의 부활을 위해 애쓴 모습은 아름다웠다.

한 수 아래로 여기던 메이저들은 마이너리티, 팀 코리아에게 야구가 더 이상 미국 경기가 아님을 보여주었다고 헌사를 바쳤고, 야구정신이 퇴색한 지금 야구가 여전히 아름다운 오락임을 알려주었다고 존경을 표했다.

감동과 행복을 준 그들을 떠올리면 한편으론 부끄러움이 드는데, 그건 지금까지 내게 지속가능한 행복감을 주었던 일들이 내 개인사보다는 이런 일들이었다는 생각, 그리고 나는 남들에게 얼마나 행복감을 주고 있을까, 하는 자책 때문이다. 김 감독처럼 전 국민은 아니라도 단 한 사람이라도 내가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남으로부터 받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러기 위해 먼저 해야 하는 것은 낮추고 갖추는 일일 터. 그리고 나를 믿고 기본과 긍정의 힘을 믿으며 나아가는 것 아닐까. 김태균이나 봉중근, 빅뱅이나 원더걸스가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은 것 우리 모두 알지 않는가? 또, 연장 때 이치로를 거르지 않아 일이 터졌듯 필요하면 돌아갈 줄도 알아야 한다.

사는 건 장거리 레이스라니 조급함은 피할 일, 9회 말 투아웃에도 일어서지 않는가? 그래서 이윽고 갖추었을 때 김 감독처럼 독배를 마다하지 않을 용기와 희생을 펼칠 수 있다면, 그러면 행복한 사람 아닐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그림자이거나 유령인 이 나라에서 특히.

언덕만 가파르지 비벼볼 데는 별로 없는 학교다. 한때 동대를 위해 땀 흘렸다고 동문도 아닌 김 감독에 기대 내가 이 글을 쓰는 것처럼 학교가 당신에게 기대게 하라. 귀찮을지도 모르지만 그거 또한 제법 행복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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